ㅡ 언니, 진짜 혼자 마음이 너무 힘들고 심리상담받고 있는데도 출퇴근길 버스에서 울고 회사에서 일 잘하다 울고 집 가서 혼자 울고
난 이제 아무런 문제도 없는데, 객관적으로 내 상황은 다 해결이 되었는데 근데도 여전히 이러고 있는 거. 이거 진짜 정신병 맞는 거 같아.
내가 평생 미뤄온 것에 대한 값을 치르고 있다는 건 알겠어. 시간이 약이고 때가 되면 끝난다는 것도 알겠어. 근데 그때가 도대체 언젠데.
하소연 앞에 그냥 대책도 없이 충동적으로 불쑥,
산아, 봄이 되면 끝나 있을 거야.
봄이 오면 괜찮아질 거야.
책임지지도 못할 말을 해버렸다.
왜 봄이었을까.
그냥 그 정도의 예보라도 있으면 좀 더 견딜만했던 것도 같아서였을까.
봄이 와도 네가 괜찮지 않으면 난 어떻게 해야 할까.
늘 빗나가는 예보처럼, 다시 새로운 거짓말로 둘러대야 할까.
10월엔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어울리며 보냈다.
내 삶에 의미를 두는 것들이 무엇인지 기억하겠다고, 일부러 SNS에 좋았던 날들에 관한 기록을 부지런히 남기기도 했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내 피드는 하루하루 행복하고 충만한 삶으로 채워졌다.
그게 딱히 거짓도 아니고.
하지만 나는 여전히 운다.
그것에 의미를 두진 않는다.
어차피 금방 울고 금방 그친다. 달래줄 사람도 없는데 뭘.
그럼에도 잘 자지 못하고, 잘 먹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지고 살은 계속 빠지고 있다.
그래서 이제 인정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끼던 아이의 죽음이 여전히 내 속을 계속 갉아먹어가고 있다는 것.
그 사실은 내게 조금 죄책감을 불러일으킨다.
내 잘못이 아니지.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면서도.
매일 사람들 속에 행복을 누리는 것도 나고,
몰래 울고 한 줌 먹은 것조차 소화시키지 못하는 것도 나.
그 둘은 충분히 병존할 수 있는 것임에도,
공공연히 전시되는 전자의 삶과 그렇지 못한 후자 사이의 괴리감이 슬픔을 더 심화시키는 것 같다.
그러니 나는 용기를 내어,
내가 아직 괜찮지 않다고 말해야 한다.
누구라도 붙잡고.
나도 봄이 오면 괜찮아질까.
그걸 바라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다.
결국 이 모든 게 지나갈 과정이겠지만
종국적으로는 좋은 열매로만 남게 되길 바라.
너는 곧 나의 영광, 나의 면류관, 온전한 축복이었다는 고백대로.
그러려면 내가 좀 더 노력해야겠지.
이때를 잘 보낼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