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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디자인과 현장의 콜라보레이션-권기웅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누군가는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것, 누군가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처럼 디자인의 명확한 정의를 내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필자는 디자인이라는 단어 자체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Design  “기호를 해체한다”라는 어원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지금까지 해왔던 사회적 약속을 새로운 방향으로 제시하고, 고쳐나간다는 의미일 것이다. 모든 디자이너는 이러한 의미를 토대로 활동한다. 하지만 새로운 생각과 방향성도 현실화되지 못한다면 아무 의미 없는 일이 될 것이다. 이점에서 디자이너에게 도움을 주는 곳이 바로 현장이라는 이름의 공간이다. 대체로 현장은 단순히 강도 높은 육체노동으로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구현해 주는 공간으로 인식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현장이란 무수히 많은 일들이 동시적으로 일어나며, 그 과정에서 무한한 가능성이 파생될 수 있는 공간이다.

이 글에서는 필자가 한 달 동안 현장에서 근무하며 겪은 일들과, 현장의 특징, 현장과 디자인의 관계에 대하여 이야기해 볼 것이다.

6월 중순 종강을 맞으며 학기 중 계획했던 제주 판포리 건설현장에서 근무하기 위해 비행기에 탑승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꽤나 오래 디자인을 하며 새로운 것을 구상하고, 그려보는 것에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지만, 직접 공간을 짓고, 가구를 만들며 생생한 분위기를 느끼기 위해 현장에서 근무해 보는 것을 선택했다. 처음 도착한 현장은 공사가 생각보다 많이 진행되어 있었다. 외부는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고, 내부시공, 가구제작 및 설치, 조경 등의 단계가 남은 상황이었다. 외적으로는 많이 정리되어 있다고 생각했지만 현장은 생각보다 분주했으며, 건설현장인 만큼 인테리어, 전기, 수도, 목조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함께 다양한 일을 진행하고 있었다. 천천히 현장을 둘러보고 현장소장님께 앞으로 한 달간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한 설명을 듣게 되었다. 나는 전체적인 현장정리와, 가구디자인, 내부시공, 자재운반등 다양한 일을 맡았고, 도착한 첫날부터 바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첫 일주일간은 가구를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평소에도 관심이 있었던 분야였기에 재미있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실재 작업은 상상과 많이 달랐다. 작업은 가구가 들어설 공간을 측량하고, 가구를 디자인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설계가 끝나고 18T 자작나무 합판을 이용해서 만들기 시작하였는데, 처음 자작나무 합판을 옮기는 것부터가 고된 일이었다. 18T 자작나무합판 한 장의 무게는 50kg, 사용해야 하는 합판 80장을 내가 직접 옮겨야 했기 때문이다. 전신이 땀으로 젖어갈 때쯤 합판을 모두 옮기고, 난생처음 보는 다양한 공구 들로 설계도면에 따라 합판을 재단하기 시작했다. 기관지는 나무 톱밥으로 막혀가고, 손에는 본드가 묻어 감각도 안 느껴질 때 가구 하나가 완성되었고, 이것을 일주일 동안 반복하여 같은 테이블과 서랍장을 5개씩 완성하였다.

두 번째, 세 번째 주는 내부 시공과, 외부 시공을 진행했다. 누군가 살아갈 집을 시공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무언가 잘못되면 건물전체에 무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모든 일을 진행하기에 앞서 검수를 받아야 했고, 가구의 10 배정도 되는 자재를 옮기고 재단해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외부시공을 나가는 순간, 햇빛과, 습도로 인해 많이 일을 하지 않아도, 금방 지치고, 집중력이 떨어져 다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시공을 하던 중 가장 놀란 일은 현장에 필요한 모든 것을 그 장소에서 직접 만든다는 것이었다. 선반이 필요하면 부자재를 사용하여 선반을 만들고, 각도기가 필요하면 남는 나무자재로 일정한 각도를 그려주는 각도기를 만드는 것이다. 이미 많은 공구가 존재하는 현장에서 더 쉬운 길을 모색하기 위해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마지막주는 비교적 편안하게 외부의 조경을 마무리하고, 가구배치, 청소, 배관 연결과, 조명설치등의 부수적인 일을 하였다. 지금까지 해왔던 일의 흔적을 지우고, 앞으로 이곳에 입주하여 살아갈 사람들을 위한 마지막 정리하고 생각하니 지금까지 해왔던 한 달간의 생활이 조금 더 의미 있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일을 하는 도중에는 너무 힘들어 생각해보지 못했지만 일이 끝나고 돌아보니 현장이라는 공간은 디자인과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으면서도 다른 점이 정말 많다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근본적인 공통점이 존재하지만, 상상을 기반으로 구상하는 것과 실제로 만들어낸다는 것 간의 차이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먼저 현장이라는 곳은 디자인보다 집단성이 우선시 되는 공간이다. 내가 근무한 건설현장이라는 공간에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일을 한다. 이 모든 분야는 안전과 효율 등을 이유로 항상 2인 1조로 작업을 진행하며 특별한 경우 모든 분야가 함께 일을 진행하기도 한다. 또한 현장에서는 특정기간 동안 매일 작업을 진행하기에 함께하는 시간이 많고, 원래 지내던 지역이 아니기에 현장 사람들과 일 외적으로도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도 집단성이 강화되는 이유가 되는 것 같다.

두 번째는 엄격한 규칙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현장은 언제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는 위험한 공간이기 때문에 일정한 규칙을 따라 기계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근무해야 하는 시간도 아침 6:30~5:00까지로 고정되어 있고, 근무 시 반드시 목장갑, 안전모 등을 착용하고 일을 해야 한다. 이렇게 잘 알려진 것뿐만 아니라, 가구제작이나 시공의 단계에서 각기 다른 외형을 만들더라도 항상 따라야 하는 단계와 규칙이 형성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현실과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어떤 건축물, 제품, 가구 등을 만들기 위해서는 현재의 기술력과, 물리적인 특징을 고려하여 일정한 원리에 따라 제작해야 한다. 이 때문에 디자이너가 제시한 설계를 완벽하게 구련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며 이러한 경향은 디자인이 독특할수록 심해진다. 또한 우리가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자재와 공구의 규격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누군가 설계에서 규격 이외의 자재를 사용한다면 그것은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재료의 특성상 구부릴 수 없다거나, 일정 부분 연결할 수 있는 면적이 나와 야하기 때문에 원래 디자인대로 구현할 수 없어지는 경우가 많아진다. 이처럼 실제로 구현해야 하는 디자인의 경우 현장에서 그 형태나 구조가 바뀔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현장의 마지막 특징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필요로 하거나 무언가 잘못될 경우 일꾼들이 바로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실현한다는 의미이다. 주변의 변화나 필요성에 의해 즉각적으로 바꾸고, 만들어낸다. 앞서 말했듯 현장에서는 선반이 필요하다면 남는 자재로 선반을 만들고, 각도기가 필요하다면 각도기를 만든다. 무언가를 빠르게 만들고 해체할 수 있는 충분한 공구가 존재하고, 그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만들어 낸 것이 디자인된 물품만큼 품질이 좋고 조형적인 것은 아니지만 디자인의 필요에 의한 문제해결이라는 원리에는 무엇보다 잘 들어맞는 경우 라고 생각한다.

현장에서는 디자이너의 요구를 실현시켜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기술적 한계, 비용적 한계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로 그 결과물이 바뀔 수 있다. 필자는 디자인이란 기존의 약속을 해체하고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자신의 디자인을 실현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도 유연하게 대처해야 하고, 이것을 위해서는 현장의 상황과, 내가 사용하려는 소재, 그 소재를 다룰 수 있는 현재의 기술력에 대해 파악해야 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디자이너와 현장의 관계는 계획을 세우는 디자이너와 그것을 실현시켜 주는 현장이라는 일방적인 관계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둘은 계속해서 소통하며 여러 가지 문제점과 더 나은 실현방안을 함께 모색해야 하는 협력관계이다. 서로 분리되어 다른 역할을 맡고 있다는 생각이 아닌 같이 나아가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면 우리는 더 나은 디자인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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