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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미 Oct 09. 2024

화장실의 역사

깁자기.



어렸을 때 우리 집 화장실은 밖에 있었고 재래식이었다. 밖에 있는 것까진 괜찮았지만 재래식은 아무리 사용해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태흥리 할머니 댁은 통시였는데 볼일을 보다 아래를 보면 똥돼지와 눈이 마주친 기억도 있다. 이 구멍 아래로 빠진다면.. 저 똥들과 나를 빤히 바라보는 똥돼지와 한데 뒤엉켜 난리가 날 테지. 생각해 보면 5살도 안된 어린아이가 한 번도 구멍으로 빠지지 않고 볼일을 본 것도 대단하다.


 시장 할머니네 골목 구석에 공동화장실도 재래식이었다. 그곳은 다행히 똥돼지는 없었지만 무서운 건 매한가지였다. 적나라하게 그 밑이 보이지 않아도 컴컴한 구멍으로 떨어지면 죽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큰언니가 시장할머니네 화장실 구멍으로 빠진 적이 있다고 했다. 구멍에 빠졌을 때 살아남기 위해서는 순간적으로 옆으로 나란히를 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들었는데, 언니가 옆으로 나란히를 했는지 아예 빠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본인도 어릴 때라 기억이 안 날 거 같다.


 서귀포집은 우리가 다 크고 대학 졸업할 때까지 재래식을 유지했다. 몇 번 수세식으로 바꾸기 위해 고민도 했었는데, 살고 있는 집 화장실은 함부로 바꾸면 안 된다고 하여 계속 그 상태로 유지했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재래식 화장실이 그렇게 나를 키웠다.


 요즘은 비데에 보온까지 되니 이 얼마나 발전된 세상인가. 우리 집에 비데는 없다. 설치하려고 고민만 하다가 아직은 설치 전이다. 예전에는 어떻게 살았나 싶어도, 그 시절엔 다 그렇게 살았으니 크게 불평하거나 불편하진 않았다. 그렇다 해도 재래식을 너무 오래 사용하기는 했다.


 우리 집 화장실이 그다지 청결한 것도 아니고, 어린 시절을 재래식과 함께 했음에도 나는 화장실에 조금 민감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청결한 화장실을 원하겠지만 말이다.

 

나는 오늘 어쩌다가 화장실에 꽂힌 걸까.

 내일은 화장실 청소를 좀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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