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의지로 빚어낸 천재 화가
몸은 비록 부서졌으나, 영혼은 누구보다 강인했던 화가
‘ 프리다 칼로.’
1907년 멕시코 코요아칸에서 태어난 그녀를 나는 우연히 그림을 통해 처음 만났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 접했을 때는 생소하고 다소 불편하기까지 했다.
낯설고 기괴하게만 보였던 그림들이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며 어느 순간 눈 녹듯 사라졌다.
대학 시절, 버스와 전차의 충돌 사고는 그녀의 몸과 꿈을 산산조각 냈다. 척추와 골반, 다리까지 30여 곳이 골절되고, 이어지는 32번의 수술과 세 번의 유산. 더불어 벽화화가 남편 디에고 리베라의 문란한 사생활과 여동생과의 불륜. 그녀의 삶은 끝없는 절망과 외로움으로 점철되었다.
마침내 다리 절단의 위기까지 겪으면서도, 그녀는 놀라운 의지로 예술적 열정을 불태웠다.
그녀의 그림 속 자화상 55점은 가식 없는 고백이자 거침없는 외침이었다. 찢긴 마음과 고통, 벗어나고픈 몸부림이 표정 하나하나에 서려 있다. 그림은 그녀가 분노와 아픔을 견디게 한 유일한 탈출구가 아니였을까?
오른쪽 다리를 절단해야 했던 순간에도, 그녀는 “나는 날 수 있는 날개가 있는데, 다리가 왜 필요하겠는가”라고 말했다.
그 말은 차라리 절규에 가까웠으나, 동시에 삶을 향한 마지막 의지이기도 했다. “나는 아픈 것이 아니라, 부서진 것이다.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있음은 내가 살아 있음을 뜻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인생이여 영원하라(Viva la vida)”를 외쳤다.
그녀가 남긴 대표작 「헨리 포드 병원」, 「두 명의 프리다」
「단지 몇 번 찔렀을 뿐」, 「부러진 척추」 그 잔혹하고 끔찍한 장면 속에는 그녀가 견딘 고통과 동시에 꺼지지 않는 생의 의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삶의 끝을 예감한 그녀를 위해 디에고와 친구들이 열어준 전시회. 침대에 실린 채 누운 모습으로 마지막 축제를 즐기던 그녀는, 결국 1954년 마흔일곱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프리다 칼로의 삶을 보면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키며 살아낸 그 자체가 최고의 예술 작품이 아닐까?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자주 혼자였기 때문에 많은 자화상을 그렸다. 인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견뎌낼 수 있다. 삶이 무너졌다고 느낄 때, 당신을 숨 쉬게 하는 무언가를 붙잡아라.”
“그림만 그릴 수 있다면 저는 살아 있는 것이 행복해요.”
이 고백처럼, 신체의 한계조차 그녀의 영혼을 가두진 못했다.
프리다 칼로. 혹독한 운명 앞에서도 삶을 향한 열망을 저버리지 않았던 그녀. 오늘 나는 특히 그녀의 「헨리 포드 병원」그림 앞에서 아기에 대한 소망과 간절함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또한 위대한 그녀의 생을 요약된 몇 줄의 언어로 설명할 수 없음에 부끄럽고 또한 안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살고 싶다”는 그녀의 절규는 여전히 우리에게 뭔가를 사유하게 한다
우리는 무심코 “죽고 싶다”, “살기 싫다”라며 농담처럼 던지는 말들이 얼마나 사치인가를, 그녀의 삶은 우리에게
뼈아프게 일깨워 준다.
2024.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