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수필반,마음에 남긴 문장들

by 김세은


수필이라는 말의 매력에 이끌려 글을 배우기 시작한 지 어느덧 다섯 달.

그 시간이 이렇게 빠르게 흘러가 버릴 줄은 미처 몰랐다.

벌써 종강이라니, 마음 한켠이 허전하다.


어젯밤, 맥락 없는 생각들로 뒤척이다 결국 잠을 놓쳤다.

새벽녘, 그 동안 모아두었던 수필반 선생님들의 글을 꺼내 식탁 위에 펼쳐본다.

이름 별로 차곡차곡 정리해보니, 제법 두께가 있다.

족히 책 한 권은 될 만한 분량이다.

낯선 음식을 처음 맛보듯, 한 장 한 장 넘기며 마음으로 다시 읽는다.

처음 읽었을 때와는 사뭇 다른 감흥이 밀려온다.

문득 가슴에 와 닿는 문장들을 동그라미 치며, 키보드를 두드린다.



“양심도 정의도 없이 권력 싸움만 지겹게 하는 어두운 시간이 되지 않기를

순국선열에게 간구한다.”

“글쓰기 시간의 부담스러움이 기다림으로 바뀌어 있다니, 가히 혁명적이다.”

강직하지만 감성 어린 마음을 지닌 선생님의 문장은 언제나 묵직하다.


“나의 삶의 경험지식 대부분은 인공지능의 영역으로 깊숙이 잠겨버렸다.”

“각 개인의 경험이 천천히 무너져 가는 세상, 어찌할까?”

절규에 가까운 외침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삶의 온도를 느낀다.


또 다른 선생님은 여행을 즐기며 문화를 누리고, 삶의 열정을 글로 담아내신다.

그분의 문장은 늘 생기 있고 멋지다.


“건건록”을 읽고,

“정치를 국민을 위해 잘하려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이기려는 싸움으로 본다.”

나라를 걱정하는 애끓는 마음이 행간마다 묻어난다.


벚꽃잎이 가지마다 얌전히 붙어 있다가 무르익어 자리를 뜨는 모습에서

소확행의 눈물을 느끼는 감성의 시인 같은 선생님.

또, 절룩거리던 고양이를 걱정하며 건강한 삶을 나누는 따뜻한 선생님도 있다.


이름 모를 들꽃을 바라보며 꽃처럼 순수해지고 싶다는 마음,

병과 동행하던 친구가 멀리 떠났다는 담담한 고백 속에서

자연과 벗하며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선생님의 뒷모습이 오래 남는다.


가시나무를 통해 내 안의 가시를 돌아보게 하고,

“달님이 가져다준 선물은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이다”라 표현하신

시 같은 문장들 또한 아름답다.


젊은 날 자식에게 헌신하고,

이제는 자신을 위해 누릴 줄 아는 삶을 이야기하신 선생님.

그분의 글 속 ‘내려놓음’은 진한 우정과 함께 묵직한 울림을 준다.


“수필반의 인연은 눈 속을 헤치고 피어난 동백꽃 같다.”

그 시구 같은 문장을 읽을 때면,

서로의 마음을 시로 읽고 노래하는 듯하다.


“겨울은 봄에 밀려 떠나고 있다.”

“눈꽃은 녹았지만 나무는 새싹을 틔울 준비를 하고 있다.”

이 얼마나 맑고 고운 시선인가.


신앙의 힘으로 상처를 치유하며 용서와 감사로 평안을 찾아가는 선생님,

전철 안에서 낯선 이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그분의 모습이 그려진다.


후지산 정상을 오르겠다고 도전장을 내민

열정 가득한 선생님의 이야기에는 미소가 번진다.

“대충 우유와 빵으로 끼니를 때우지 마시라”는 교수님의 농담도 정겹다.


“큰 강물이 꾸준히 흘러가는 힘은 깊은 곳의 조용한 물결에서 비롯된다.”

그 문장을 읽을 때마다,

보이지 않는 마음의 깊이가 진정한 힘임을 깨닫게 된다.


박경리 선생의 말처럼,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안 하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얼마나 좋은가.

박완서 선생의 고백처럼,

“대체로 좋은 인생이지만 다시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다.”

그 문장들처럼, 우리 수필반의 글에는 각자의 인생이 진솔하게 담겨 있다.


“사소한 역할은 없다.”

“행복은 오는 것이 아니라 찾는 것이다.”

그 깨달음을 마음에 새기며, 오늘도 나는 글 앞에 선다.


92세 할머니의 도전 이야기,

포은 아트홀에서 되살아난 청춘의 감동,

끊임없는 열정으로 삶을 연주하는 교수님의 모습은

우리 모두에게 살아 있는 교과서였다.


글쓰기는 마음속의 상처를 꺼내어 다독이는 일이다.

보이지 않는 상처를 싸매고 어루만져 주는 일,

그래서 글은 삶을 치유하는 의사와 같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5개월의 시간.

좋은 분들과 함께 웃고 배우며

또 다른 차원의 삶을 그려갈 수 있었던 소중한 나날이었다.


수필반 학우들의 열정과 도전이 멈추지 않기를,

그들의 삶이 언제나 글처럼 아름답게 채워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뜻하지 않게 얻은 여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