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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랄아블라 Feb 26. 2024

우리는 전세금을 모두 코인에 투자하기로 했다.

덜덜덜

"자기 부모님 언제 한 번 인사드릴까?"

거창한 프로포즈는 없었다. 이 한마디로 우리는 결혼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2013년에 만나 연애만 벌써 10년지만 평생을 함께 어떻게 살건지에 대한 로맨틱한 상상을 나누어 본적도 없고, 심지어 서로의 월급이 얼마인지도 사실 서로 잘 모르고 있었다. 


둘다 비혼주의자는 아니었기 때문에, 사귀는 동안에 언젠가 결혼에 대한 얘기가 나왔던 적은 있다. 가령 주변의 친구가 결혼식을 올린다던가, 신혼부부 대상으로 끝내주는 조건의 대출 상품이 출시되었던가 했던 날들이었다. 우리는 여느날처럼 술을 마시며 장난스레 (하지만 진심을 담아) 서로의 결혼관을 나누어보려 했지만 끝내 실패했던건 둘다 사실 결혼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만 한가지, 나는 결혼식을 하기 싫어했고 남자친구는 웨딩홀에서 최대한 평범하게 결혼식을 하고 싶어했다. 끔찍했다. 속으로 생각만 한게 아니라 말로 내뱉었고, 이후에 우리는 결혼에 대한 얘기를 서로 일절 꺼내지 않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엄마는 하루에도 세번씩 울었다. 엉엉 울었다기보다는, 말하다가 갑자기 울컥해서 울먹거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나는 어떠한 말로 위로를 해야할 지 잘 모르는 서투른 큰딸이었다. 그냥 정말 어느날 엄마랑 밥을 먹다가 대뜸 말했다. "엄마 남자친구랑 같이 밥 한번 먹을래?" 나름대로 엄마의 허한 마음을 어떻게든 환기를 시켜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성공했다. 엄마는 마치 내일이라도 결혼하겠다는 말을 들은듯이 기뻐했다. 


10년이나 연애를 하고 각자의 부모님을 처음으로 만나는 자리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고, 우리는 둘다 왜 우리가 10년이나 연애를 할 수 있었는지 깨달았다. 가정환경이, 부모님 두분의 분위기가 너무 서로의 집과 닮아있었다. 두 번의 식사자리 후에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이제 무언가 다음에 할 게 기다리고 있는것만 같았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네이버 부동산을 함께 구경했고, 전세 가격을 확인하며 서로의 가진 돈을 오픈했다. 그냥 새로운 데이트 루틴같아서 마냥 재미있었다. 서울의 전세 가격에 놀랐고, 주말에는 부동산에 연락해서 집을 보러다녔다. 당장 계약할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그냥 임장 다니는 것처럼 새로운 데이트코스였다. 


결혼식장은 1년 전에 예약해야 된대.

남자친구는 항상 뜬금없이 말을 던진다. 의사를 물어보지도 않고, 그냥 정보를 알려주는 챗봇같은 사람. 그렇구나, 하고 말았는데 이후부터 계속 결혼식장 사진을 보낸다. 영화관 데이트에 지친 나는 주말에 데이트겸 상담 다녀볼자고 제안했고, 우리는 어느새 우리지역의 예식장을 전부 방문하고 있었다. 모든 예식장이 가격 할인을 제시하며 당일 계약을 하라고 했지만, 남자친구 특유의 능구렁이 같은 말빨로 1개월 견적 홀딩을 받아냈다. 이렇게 된거 그냥 1년 뒤에 결혼을 해버릴까 싶었다. 뭐 어려운 거라고. 갈 때도 됐지 뭐.


식장을 보는 취향도 비슷했다. 결국 우리는 10월 어느날로 식장을 하나 계약했고, 양가의 부모님께 통보했다. 도움을 받지 않고 둘이 알아서 시작하겠다고 말씀드렸고, 부모님들 모두 매우 기뻐하셨다. 두 집 모두 결혼을 재촉한 적은 없지만, 내심 기다리셨던 모양이다. 언제는 결혼하지 말고 평생 같이 살자고 해놓고. 


이제 남은 건 신혼집을 구하는 일이다. 각자의 경제사정에 대해서는 일절 얘기한 적도 터치한 적도 없었지만, 결혼 후 서로 재산을 합치고 돈관리는 공동으로 해야한다는 의견은 둘 다 같았다. 옛날 사람인 우리에게 각자 돈관리를 하고 생활비를 각출하는 것은 룸메이트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렇다. 누가 돈을 더 벌던, 더 쓰건 함께 감당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돈을 다 모아보니 대출을 받으면 최대 6억짜리 전세를 구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각자의 대출을 상환하고, 현금을 더 모으는 기간이 약 6개월 정도가 필요하다. 결혼식이 10월이니 시간은 충분해보였다. 그렇게 차곡차곡 재무적인 것들을 각자 처리했다. 팔지 못해 들고있던 주식도 손절하고, 가지고 있던 예적금도 정리하고, 현금을 최대로 끌어서 대출금액을 최대한 줄여볼 작정이었다. 


비트코인 ETF가 승인나면서, 수익률이 단기간에 솟아올랐다. 

남자친구는 전세 계약 전까지 최대한 수익을 내고 싶어 했고, 우리는 코인에 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 와중에 전세사기 대란과 고금리 장기화의 영향으로 전세 가격이 우리가 알아보던 시점보다 5천만원씩 올랐다. 고작 6개월 차이로 5천만 원을 더 빌려야 하다니, 억울했다. 다 끌어모아도 6억 이상은 조금 무리였기 때문에 우리는 반전세를 택하기로 결정했다. 그 와중에 비트코인 수익률은 더 올라갔다. 몇년 전에 사두었던 가격이라 지금 팔기도 아까웠다. 


우리 전세금으로 쓰려고 생각했던 현금을 전부 투자하고, 월세로 가는 건 어때? 

요는 이렇다. 우리가 들고 있는 목돈은 전세금 대신 코인에 투자하고, 대신 월급으로 월세, 전세대출 이자와 생활비를 감당하는 것이다. 6억 전세 대신 3억에 120만원의 반전세로 가자는 것. 그렇게 하면 생활비를 아주 아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월세에, 이자까지 고정비만 월 200만원이 넘는 돈을 내고나면 쓸 돈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6억 전세를 가도 월 150정도는 이자를 내야한다. 적은 돈은 아니지만 월 50만원 정도는 둘의 수입으로 메꿀 수 있다. 투자에 성공한다면 2년 후에는 월세와 대출 이자를 줄일 수 있다. 물론 투자에 실패해도, 2년 후에는 손절하고 무조건 전세금으로 넣자는 약속을 함께 했다. 지켜질 지는 모르겠다. 투자는 중독적이다. 그래도 월 200만원씩 고정비로 나가다보면 힘들어서라도 손절을 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우리는 전세금을 모두 코인에 투자하기로 했다. 

2년 동안은 육아 계획이 없고, 둘다 경제활동을 하기 때문에 투자금을 전부 잃는다 해도 어떻게든 살아갈 수는 있을 것이다. 투자에 성공한다면 더 좋고. 결혼 생활을 이렇게 시작할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앞으로 우리, 잘 살아갈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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