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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크로드 Sep 24. 2024

초록 벨벳 위를 스침

렌즈로 기록한 투명 네이처. 투명 형식. 투명 리듬. 투명 운동.






초록 벨벳 위


평화와 초록의 무성함, 먼지와 바람의 간지럼으로 충만했던 장소. 우리는 그 길을 지나갔지만, 그곳은 비명 한번 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마치 시간과 공간이 잠시 멈춘 듯 말이다. 실제로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건지, 멈추어 있는 있는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나는 멀리서 손가락을 터치해 보았다. 

이 길은 캠핑을 마치고 덴버로 돌아오면서 일평생 단 한번 스쳐 지나갔던 길이다. 다시는 찾아갈 수도 없는 곳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짧은 스침이 나에게는 오래도록 남아있다. 



렌즈로 기록한 투명 네이처. 투명 형식. 투명 리듬. 투명 운동.  


나의 시선은 바람이 나무를 감싸듯이 그 주변에 휘감았다. 나는 그 순간, 아니 지금 글을 작성하는 이 순간에도, 지휘자가 된 듯하다. 지난날, 부지런한 음악가가 되어 나의 렌즈 속에 투명 네이처. 투명 형식, 투명 리듬, 투명 운동을 기록하고야 만 것이다. 오늘날, 조금 더 생동감 있는 음악가가 되어 글자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계절의 리듬


그러했다. 그날은 함께 하는 이들과 대화 보다는, 자연의 리듬 속에 녹아들고 싶은 날이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 모든 계절의 숨결이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신선하고 온화한 봄의 기운, 차갑고 장엄한 겨울왕국의 얼음, 적막하나 독특한 색채를 소유한 가을의 풍경, 태양빛에 반사되어 빛나는 타오르는 여름의 숨결까지. 모든 것이 스며들어 있었다. 

그냥 달리는데 자꾸 마음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드는 풍경들이었다. 


차창 너머의 웅얼


이 날의 나무, 기찻길, 리듬, 멜로디, 숨결, 사인, 초록 벨벳의 모든 것은 달리는 차 안에서 촬영한 덕에 약간 물을 많이 덧댄 수채화처럼 부드럽고 흐릿한 느낌도 있었다. 차창 너머의 웅얼거림이랄까?


힘찬 충격


잠시 후, 갈라지는 기찻길을 지나면서 우리는 힘찬 충격을 몸으로 느꼈다. 자동차 바퀴가 철로를 넘어가는 그 순간, 우리 모두는 저절로 몸에 긴장을 주었다. 마치 두꺼운 주사 바늘을 팔뚝에 맞을 때의 그 느낌이랄까. 갈라지는 기찻길은 마치 우리의 시간을 넘어서는 어떠한 Moment처럼, 과거와 현재를, 그리고 미래를 연결하려는 듯했다. 


초원 위의 집 


저 푸르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산다는 노래가 떠오른다. 지금의 나는 과연 그곳에 오랜 시간 머물 수 있을까? 나는 여전히 자연을 그리워하고 있고 풍경을 사랑하지만 그것만을 추구하며 살기에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변해있다. 어쩌면 가장 크게 변한 것은 내 마음일지도 모른다. 


한때는 반가운 초록 벨벳 위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재잘거리곤 하였다. 그토록 친근했던 한강공원도 지금은 많이 변해, 발길이 잘 닿지 않는다. 아마 더 넓은 세상 속 자연 공간을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지금은 그 자리에 대신 스마트폰이나 먹거리들이 자리 잡았다. 나의 시선은 하늘이 아닌 손 안의 화면으로 자주 향한다. 어지러운 세상의 이야기들 속으로 말이다. 마음은 자꾸만 부드럽고 꾸덕한 아이스크림, 입에서 녹아버리는 빵을 전시한 베이커리, 또는 편의점으로 이끌린다. 자연에 오래 머무르고 싶은데 마음을 잡아끄는 요소들이 너무 다양해진 것이다. 


단조롭게 산다는 것은

자연 속에 풍덩 빠져 산다는 것은

과연 무엇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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