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시카고> - 극 작품의 사회적 가치
뮤지컬 <시카고>가 돌아왔다. 무려 17번째 시즌이다.
1975년 브로드웨이 초연 이후 꾸준히 전 세계 관객들에게 사랑받아 온 <시카고>는 화려한 재즈 음악과 퍼포먼스 속에서 언론의 부조리와 사회의 위선을 고발하는 블랙코미디 뮤지컬이다. 금주령이 내려진 1920년대의 시카고를 배경으로, 두 명의 여성 범죄자 록시 하트와 벨마 켈리를 통해 범죄와 스캔들이 어떻게 언론과 결합되어 대중의 인식을 조작하는지 통렬하게 풍자한다.
록시 하트와 벨마 켈리는 각각의 살인 사건으로 쿡 카운티 교도소에 수감된 범죄자이다.
가난한 정비공의 아내였던 록시는 부패한 간수 마마 모튼과 돈밖에 모르는 속물 변호사 빌리 플린의 도움을 받고, 빌리는 록시의 예쁜 외모와 꾸며낸 사연으로 언론을 교묘하게 조종하며 그녀를 스타로 만든다. 록시 이전에 ‘스타 범죄자'였던 벨마는 자신의 위치를 빼앗길까 전전긍긍하며 대중의 주목을 지속적으로 받기 위해 노력한다.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하는 뮤지컬 <시카고>는 이들이 언론의 영향력을 이용해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대중의 감정을 조작함으로써 최종적으로 특정 인물, 심지어 범죄자들을 당대의 ‘스타'로 만들어내는 과정을 아이러니하고도 유머러스하게 풀어냈다.
록시와 벨마의 모티브가 된 벨바 게르트너와 뷸라 아난은 내연남을 살해한 죄목으로 수감되었지만, 오로지 예쁘다는 이유로 이들에게 ‘감옥 속 미녀', ‘가장 스타일리시한 살인자'와 같은 타이틀을 붙이며 자극적인 기사를 양산한 언론에 힘 입어 큰 인기를 끌었고, 결국 모두 무죄를 선고받은 바 있다.
저널리즘의 본질은 사회적 감시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데에 있다. 그러나 뮤지컬 <시카고>의 언론은 사회적 감시자로서 진실을 전달하기보다는 더 많은 판매량을 위해 자극과 이슈만을 좇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진실은 왜곡되고, 정의는 흐려진다.
1920년대를 그려내는 뮤지컬 <시카고>가 지적하는 언론의 문제는 100년 전과 다를 바 없이 오늘날의 현대 사회에서도 꾸준히 반복되고 있다. 오히려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면서 정보의 속도가 더욱 빨라졌고, 이에 따라 진실과 거짓의 경계도 더욱 모호해졌다. 인공지능을 비롯한 기술의 발달로 그럴듯한 가짜 정보와 이미지를 생산하는 것이 쉬워진 데 반해 정보의 신뢰성과 진실성을 판별하는 것은 매우 어려워졌다.
오늘날의 우리 사회는 <시카고> 속에 드러난 사회 일면과 얼마나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오늘날의 언론은 사회적 감시자의 역할을 충분히 잘 해내고 있을까?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뮤지컬 <시카고>는 무게감 있고 신나는 재즈 음악과 화려한 쇼, 블랙코미디의 정수를 품은 플롯까지,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를 가득 담은 쇼 뮤지컬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현대 저널리즘에 대한 심오한 질문을 던지며, 관객들로 하여금 아이러니 속에서 이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언론이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창구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인 책임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오늘날 더욱 큰 중요성을 가진다.
<시카고>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강력한 매체로서 예술의 역할을 확인할 수 있다. 단순하게 일차원적으로 즐기는 것에서 끝나는 엔터테인먼트가 아닌,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질문하고, 변화를 요구할 수 있게 하는 시대의 거울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것이다.
오랜 시간에도 변함없이 수많은 관객에게 사랑 받는 <시카고>의 비밀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아트인사이트 기고글 원문]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