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웨이 <Maybe Happy Ending(어쩌면 해피엔딩)>
얼마 전 미국 토니 어워즈에서 한국 뮤지컬 이 6관왕을 차지했다. 특히 ‘Best Musical(최우수 작품상)’, ‘Best Book of a Musical(최우수 극본상)’, ‘Best Original Score Written for the Theatre(최우수 오리지널 작곡상)’을 비롯해 주요 부문을 싹쓸이하는 기록적인 성과를 세우며 한국 뮤지컬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토니어워즈 직후 직접 뉴욕에 방문해 브로드웨이 버전의 <어쩌면 해피엔딩>, 'Maybe Happy Ending'을 만나보았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은 근미래 서울 메트로폴리탄을 배경으로, 버려진 헬퍼봇 ‘올리버’와 ‘클레어’가 사랑을 발견하는 여정을 따라 간다. 인간의 감정과 상처, 사랑의 본질을 로봇의 시선에서 탐구하는 이 작품은 ‘왜 우리는 상처받을 걸 알면서도 사랑을 선택하는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브로드웨이 프로덕션은 원작의 감수성과 독창성을 지키면서도, 더욱 고도화된 무대와 연출, 풍부한 음악, 영상을 비롯한 다양한 방면에서 한층 더 과감하고 세련된 변화를 시도했다.
특히, 무대 공간을 분리해 장면별로 관객에게 다른 모습의 공간을 보여주는 연출이 인상적이다. 조리개를 연상시키는 무대장치와 조명을 통해 각 인물의 방과 헬퍼봇 아파트, 과거 올리버의 기억 속 제임스의 집 등 다양한 공간이 입체적으로 드러나고, 스토리를 보다 복합적으로 표현해낸다. 뿐만 아니라 LED 스크린, 얇은 막을 활용한 홀로그램 효과 등의 무대 기술은 공상과학 영화같은 미래적인 분위기를 극대화한다.
이렇듯 다양한 무대 세트와 연출이 결합되어, 관객은 ‘21세기 후반 서울’이라는 낯설고 신선한 세계로 단숨에 진입할 수 있다. 이러한 연출은 후반부로 갈수록 두 로봇의 러브스토리의 감성과 일면 대비를 이루며, 극 전반에 깔린 특유의 감수성과 서정성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연출에 있어서는 영화적 감각이 두드러진다. ‘올리버’와 ‘클레어’, 그리고 그들의 과거 주인들에 관련된 서사를 위해 추가된 여러 과거 회상 장면에서는 스크리닝 기법이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인물의 내면과 기억이 영상과 조명, 음악이라는 여러 요소와 함께 교차된다.
스토리텔링 차원의 변화 또한 인상적이다. 한국 프로덕션에서 올리버와 클레어의 관계에 보다 주목했다면, 브로드웨이 에서는 두 로봇이 살아온 과거에 대한 서사를 강화했다. 이를 위해 올리버의 전 주인 제임스와 그의 아들 준서, 그리고 클레어의 전 주인이었던 지연과 수한 등 다양한 인물의 이야기가 꽤 비중 있게 다루어진다. 이를 통해 사랑에 회의적인 클레어의 태도부터 진심으로 올리버를 아꼈지만 그를 버릴 수밖에 없던 제임스의 고뇌까지, 각 인물들의 내면에 더욱 공감할 수 있다.
브로드웨이라는 지역문화적 특징을 반영한 변화도 있다. 대표적으로 극중 올리버가 가상의 재즈 가수 ‘길 브랜틀리’의 음악을 사랑한다는 설정에 따라, 한국 프로덕션에는 없던 재즈풍 넘버들이 새롭게 추가되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이로써 작품에 미국적인 문화코드가 자연스럽게 녹아들며, 브로드웨이 관객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특히, 올리버가 ‘서울재즈페스티벌 2038’ 공식 굿즈 가방을 들고 다니는 것은 한국의 재즈 문화를 이해한다면 더욱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숨은 디테일이다!)
한국 프로덕션의 일부 넘버(‘Driving’, ‘First Time in Love’ 등)이 삭제된 점은 원작 팬들에게 아쉬움을 남기기도 하지만, 스토리라인의 변화와 문화적 특성을 반영한 넘버 추가는 기존 서사를 더욱 촘촘하게 만들고, 성공적인 현지화를 이끌어냈다.
<어쩌면 해피엔딩>의 브로드웨이 프로덕션은 한국의 창작뮤지컬이 어떻게 세계 무대에서 다각도로 진화해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곧 한국에서 10주년 공연을 앞두고 있는 <어쩌면 해피엔딩>이, 언젠가 브로드웨이 버전으로도 국내 무대에 오를 날을 기대해본다.
[아트인사이트 기고글 원문]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63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