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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희곡의 가장 트렌디한 변주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는 순간 - 뮤지컬 <& Juliet>

by 소영

수많은 문학, 영화, 공연 등 다양한 예술 장르에서 재해석되어 온 가장 유명한 비극적 사랑 이야기, <로미오와 줄리엣>. 원수 지간인 두 가문에서 태어난 로미오와 줄리엣은 서로 사랑에 빠지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줄리엣이 죽었다고 오해한 로미오가 자살하고, 줄리엣 역시 뒤따라 목숨을 끊는 비극적 결말로 끝맺는다.



하지만 만약 줄리엣이 로미오를 따라 죽음을 택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로미오의 죽음 이후 깨어난 줄리엣이 자신의 삶을 이어가기로 결심했다면?


뮤지컬 <& Juliet>은 셰익스피어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마지막 장면에서 이 질문을 던지며, ‘줄리엣’의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한다.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 초연을 앞둔 어느 날, 셰익스피어의 아내 앤이 연극의 비극적 결말을 바꿔보자고 제안하며, 셰익스피어와 앤의 ‘<로미오와 줄리엣> 다시 쓰기’가 시작된다. 자살 대신 삶을 택한 줄리엣은 로미오의 장례식에서 그가 사실 여러 사람과 연애를 했던 바람둥이였음을 알게 되고, 논바이너리 친구 메이, 유모 안젤리크, 그리고 앤이 자신을 극에 투영해 만든 에이프릴과 함께 파리로 떠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파리에서 줄리엣과 친구들은 안젤리크의 옛 연인 란스와 그의 아들 프랑수아를 만나게 된다. 프랑수아는 아버지의 결혼 압박에 시달리며 줄리엣과 가까워지고,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던 메이 역시 프랑수아와 서로에게 끌리게 된다. 이 과정에서 줄리엣, 프랑수아, 메이 사이에는 미묘한 삼각관계가 형성된다. 한편, 안젤리크와 란스는 오랜만에 재회해 옛 사랑을 되살린다.


이때 셰익스피어는 극적 반전을 위해 로미오를 부활시키고, 로미오가 줄리엣에게 다시 사랑을 고백한다. 혼란을 겪던 중 결국 프랑수아와 줄리엣의 결혼식에서 줄리엣과 로미오, 메이와 프랑수아 네 사람의 진심이 드러나게 된다. 프랑수아와 메이는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줄리엣은 여전히 로미오를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면서도 남이 정해준 운명이 아닌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기로 결심한다. 이후 안젤리크와 란스는 결혼하고, 프랑수아와 메이는 서로의 관계를 인정받으며, 줄리엣과 로미오는 첫 데이트를 약속하며 그들의 새로운 관계를 다시 시작한다.




뮤지컬은 새로운 결말을 쓰는 앤과 셰익스피어의 희곡 밖 이야기와 그로 인해 펼쳐지는 희곡 속 줄리엣의 이야기가 극중극 형식으로 병치되며 진행된다. 좀처럼 집에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며 아이들을 돌보던 외로운 삶을 살아온 앤은, 타인의 결정에 따라 살아온 줄리엣에게 자신을 투영한다. 앤은 줄리엣이 온전히 자신의 선택으로 삶을 꾸려나가는 ‘진짜 해피엔딩’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셰익스피어와의 갈등과 화해를 거치며 결국 줄리엣이 주체적으로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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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uliet>은 주체적인 삶에 대한 이야기이자,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중년인 안젤리크와 란스, 퀴어인 프랑수아와 메이, 그리고 가문과 전통을 벗어난 줄리엣과 로미오까지, 각기 다른 인물들이 자신만의 서사와 선택을 통해 만들어가는 ‘스스로가 주인공인 삶’을 다양한 형태로 보여준다.


신선한 소재와 빠른 전개, 위트 넘치는 대사와 장면 곳곳에 숨은 디테일 덕분에 여러 개의 서브플롯과 극중극 형식임에도 관객들은 지루할 틈 없이 인물들의 여정을 따라가게 된다. 로미오의 장례식에서 그의 연인 중 한 명으로 로잘린(원작에서 줄리엣을 만나기 전 로미오가 사랑했던 인물)이 등장하거나, 극 중 16살과 13살인 로미오와 줄리엣이 책가방을 메고 등장하는 등 원작을 재치 있게 비튼 유머도 곳곳에 숨어 있다. 셰익스피어의 아내 ‘앤 해서웨이’와 동명의 배우 ‘앤 해서웨이’에 관한 농담도 감초처럼 등장한다.


넘버로 사용된 팝 작곡가 맥스 마틴의 히트송들은 극에 트렌디함을 더한다. 백스트리트 보이즈, 데미 로바토, 케이티 페리, 브리트니 스피어스 등 전설적인 팝 가수들의 익숙한 노래들이 뮤지컬 속에서 새롭게 재해석되어 신선한 스토리라인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특히 극 말미, 각성한 줄리엣이 케이티 페리의 ‘Roar’를 부르며 주체적인 삶을 선언하는 장면은 줄리엣이 한 명의 빛나는 팝 스타처럼 보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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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 Juliet>은 고전의 틀을 깨고,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 ‘내 삶의 주인공은 나’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안젤리크와 란스, 프랑수아, 메이, 줄리엣과 로미오, 그리고 앤과 셰익스피어까지 - 결말에 이르러 모든 인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기 자신과 사랑을 찾아가며 한 단계 성장한다. 이들은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목소리를 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자신의 선택으로 직접 미래를 만들어간다.


결말에서 시작된 이들의 이야기는 그렇게, 완결된 ‘엔딩’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을 향해 열린다.



[아트인사이트 기고글 원문]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6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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