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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 노동자 Apr 16. 2024

미국 직장 의료보험

용어 정리 중심으로

주로 직장인 보험 중심의 이야기이다. 자영업자나 프리랜서 등의 경우도 정부의 공공 보험이 아니면 수치는 달라고 구조는 비슷할 것 같다.


미국도 공공 보험이 있고 국가 재정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크지만 보통 내 이야기는 아니다. 대부분은 사보험인데, 비슷한 수준의 사보험을 직장 통해 구하는 게 개인이 알아서 구하는 것보다 훨씬 싸다. 회사가 대규모 계약을 맺어서 싸게 가져오는 건지, 회사에서 보험료 상당 부분을 내주니까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이직자든 신입이든 보통 처음에 하는 일은 Open Enrollment라고 해서 그 해 남은 기간 동안 적용될 온갖 베네핏을 고르는 것인데 의료 보험 등도 포함된다. 보통 조금씩 다른 걸 여러 가지 주니까 뭘 골라야 할지 확실치가 않다.


사보험이란 것 자체를 제외하고 미국 보험엔 있지만 한국 보험엔 잘 없는 개념은 in-network/out-of-network 같다. 한국은 당연지정제가 있어 의료기관이 국가의 의료보험을 거부할 수 없도록 되어 있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다. 의료 공급자와 보험사 사이의 상호 계약에 따라 해당 보험을 받기도 하고 안 받기도 한다. 또한 주로 보험 상품의 타입에 따라서도, 같은 의료 공급자와 보험사 조합이라도 받는 것이 있고 안 받는 게 있다.

안 받으면 무슨 일이 벌어지느냐면, 그것도 보험의 타입에 따라 다르다. 최악의 경우엔 보험사가 하나도 커버를 해주지 않고 병원과 직접 협상을 해서 내어야 한다 (응급 상황은 예외다). 좀더 나은 경우는 보험사가 환자가 받은 치료 목록을 보고 그 지역의 시세를 판단해서 (좋은 보험의 경우) 한 70% 정도를 보조해 주는 것이다. 한데 종종 in-network이 아닌 병원은 말도 안 되는 가격을 청구한다. 내 경우 CT를 찍었고 보험사는 이 지역 시세를 300백 달러인가 그 안쪽 어디로 봤던 것 같은데, 병원은 5천 달러를 청구한 적이 있다. 보험사가 보조를 해봤자 거의 전액을 내는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in-network을 간다.


보험 "타입"이라고 대충 말했는데, 크게 PPO, EPO, HMO 등이 있다. PPO는 한국 보험과 비슷하다면 비슷하다. 의사와 보험사 사이에 계약을 해서, 의사가 청구서를 보험사로 보내면 보험사가 심사하고 지불하기로 동의하는 한, 그 보험사의 PPO 플랜 환자는 대부분 그 의사를 보고 보험 처리를 받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PPO를 받아주는 의사 집합이 크다. 또 그 의사가 in-network이 아니라도 위에서 기술한 것처럼 보험사가 그 지역의 그 치료에 대한 시세를 판단해서 상당 부분 보전해 준다.


EPO나 HMO는 정말 한정된 집합의 의사들만 볼 수 있다. out-of-network은 보험 처리가 안 된다. 오직 응급일 경우에 PPO와 비슷하게 되는 것 같다. (이 부분은 정확치 않을 수 있다.) 이를테면 Kaiser EPO는 카이저라는 병원 체인에 속한 의사들만 볼 수 있다. HMO와 EPO가 다른 건, EPO는 그 네트웤 안에서는 그래도 좀 자유롭게 의사를 볼 수 있지만, HMO는 주치의가 있고 다른 의사를 보려면 referral을 받아야 한다.


COVID-19로 인한 입원율이 높아 병동이 남아나지 않았을 무렵, 그래도 베이 지역은 사정이 좀 나았다. 백신 접종률부터 훨씬 높았고 아마 베드도 좀더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실시간 정보를 보면 보통 공립 병원들 (메디캐어, 메디케이드를 받는)이나 카이저 같은 EPO 병원들부터 차곤 했다. 우리 가족은 병원을 자주 가게 되다 보니 늘 PPO를 선택했다.(그래서 EPO나 HMO에 대한 정보는 부정확할 수 있다.)


어느 플랜이든 병원 방문 여부와 무관하게 매달 내는 보험료가 있다. 그걸 "premium"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직장을 통해 보험을 구하면, 보험사가 받는 premium보다 한참 낮은 가격만 직원이 내고 나머지는 고용주가 낸다.내 경우엔 한달 3인 가족 기준 4 ~ 5백 달러를 냈다. 나중에 보니 같은 보험을 고용주 없이 유지하려면 거의 3천 달러 근처를 내어야 했다. 유학 와서 좋은 직장 잡고 취직한 분들은 미국 보험이나 한국 의료보험이나 별 비용 차이가 없다고 하는데, 한국은 고용주가 기껏 비슷한 금액을 내주지만 미국은 보통 몇 배를 내주는 것 같다.


그렇게나 많이 내는데 병원 가서 치료를 받을 때 무료 아니냐고 생각하시는 게 자연스럽겠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우선 소액의 copay가 있을 수 있다. 20, 30달러 정도 갈 때마다 내는 돈이다. 한국은 노인분들 본인 부담금이 없다시피 하니까 가야할 이상으로 병원에 오는 게 문제라는데, copay의 이유가 뭐든 결과적으론 그런 현상을 방지하기도 한다.


이 copay를 제외한 금액은 보통 나중에 청구된다. 다만 환자가 가진 보험에 따라 병원이나 의원이 알아서 deposit, 그러니까 보증금을 미리 받아두기도 한다. 이건 나중에 치료비가 deposit보다 더 적으면 돌려받을 수는 있는데, 귀찮게도 이걸 곧장 안 돌려주고 credit으로 쌓아놓는 곳이 많다. 그래서 늘 전화해서 돌려달라고 해야 한다.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신용카드로 돌려주고, 수표를 우편으로 보내달라고 하면 보내도 준다.


청구서를 열어 보면 일단 plan discount라는 부분이 있다. 이건 in-network인 경우에만 있는 걸로 보인다. 병원은 금액을 자기 마음대로 청구할 수 있는데 (한국은 보험 커버가 될 경우 심평원이 결정한다), 보험사와 PPO라도 계약이 되어 있으면 각각의 치료에 대해 보험사의 가이드라인에 따라야 하는 것 같다. 이건 보험사와 의사 사이의 협약 같고. 그래서 그 차액이 청구서 안에 plan discount로 표현된다. 어떨 땐 70, 80%가 깎이기도 한다.


이 남은 금액 중에 소위 deductible만큼은 보험사가 환자에게 내도록 할 수 있다. deductible은 매년 정해진 금액이다. 그 금액까지는 보험사가 커버하지 않고 환자가 낸다. 예컨대 deductible이 $500인데, 병원이 청구한 금액이 플랜 디스카운트 후에 $700이라면, 보험사는 $500은 환자에게 내라고 하고 나머지 $200에 대해 보험을 적용한다.


$700 정도면 뒤에 설명하겠지만 미국 기준으로 나쁘지 않다. 한데, 3천 달러, 5천 달러 이런 보험들도 직장 밖에는 흔하다. 그러니까 그 금액까진 개인이 낸다. deductible이 높을수록 매달 내는 premium은 낮다. 그래서 병원을 절대로 안 갈 분들이, 법적으로 보험 가입은 해야 하니까 premium이 낮고 deductible이 높은 플랜을 고른다. 대개 직장에서 나오는 보험 지원이 시원치 않거나 없는 경우, 혹은 자영업을 하시거나 프리랜서인 경우 등에 해당된다. 병원비가 너무나도 비싸 감기 몸살 정도로 병원을 가서 외래를 봐도 수백 달러씩 나올 수 있는데 이런 플랜을 갖고 계신 경우엔 그냥 자기 주머니에서 내는 경우도 많다. 우습게도 이런 보험조차도 premium이 낮아야 수백 달러, 보통은 네 자리 수 매달 낸다. 고용주가 내주질 않기 때문이다.


이 deductible을 제외한 금액에 대해 보험사가 보험 처리를 해준다. 그 비용 전체가 커버된다고 보험사가 판단한 경우에도 coinsurance라고 해서 일정 비율을 여전히 환자가 부담한다. 좋은 보험이고 in-network이면 10, 20% 정도 된다. 보험사가 커버가 안 되는 치료라고 판단하는 경우에는 보통 그 금액은 일부 또는 전액 환자가 부담한다.


위에 CT 한 장 찍었다가 5천 달러 청구 당한 일화도 적었지만, 입원을 한다거나 수술을 한다거나 하면 비용이 상상을 넘어선다. 그래서 10%, 20% 내는 게 아무 것도 아닐 것 같지만, 플랜 디스카운트 후에 5만 달러만 찍혀도 그 20%는 1만 달러가 된다. 플랜 디스카운트가 얼마나 됐는지 모르겠지만, 중환자실에 15일쯤 계셨던 분은 1백만 달러 짜리 청구서를 받았다고 한다. 30만 달러만 남았다 해도 10%면 3만 달러, 근 4천만원이다. 보험 적용 후에 본인 부담금만.

그나마 다행인 건 오바마 캐어 이후로 연방 정부가 보험사에게 소위 out of pocket maximum 상한을 강제한다. out of pocket maximum이란 보험이 커버되는 치료에 대해 (일단 설명을 쉽게 하기 위해 in-network이라고 가정하자) 환자가 지출하는 자기 부담금의 그 해 상한이다. 개인의 경우 법정 $9100였고 가족 플랜의 경우 그 두 배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니까 본인 부담금 3만 달러가 나왔고 가족 플랜이었다면, out of pocket maximum 만큼만 내면 된다. 나머지는 보험사가 병원과 해결해야 한다. 법정 최대치의 out of pocket maximum이었다면 아마 12,000 달러 정도는 보험사가 냈을 것이다. 하지만 대개 좋은 보험은 그 out of pocket maximum도 법정 상한보다 훨씬 낮다.


그러니까 제아무리 deductible이 높고 copay, coinsurance가 높은데다 다른 나라 보험 대비 사실 premium까지 높다 해도 이 out of pocket maximum 때문에 최소한의 안전 장치로서의 기능은 한다.


이처럼 청구 금액 - plan discount 한 다음에 deductible과 coinsurance를 고려하여 본인 부담금이 결정되면, 이건 환자가 out of pocket maximum 내인 한은 부담해야 한다.

이 부담을 좀 덜어줄 목적인지 세금 혜택을 주는 특수한 계좌가 몇 가지 있다. HSA, (Health Care) FSA, LPFSA 같은 것들이다.


어떤 계좌를 만들 수 있는지는 보험이 high deductible plan인지 아닌지에 따라 결정이 된다. High Deductible의 기준은 2024년의 경우 개인 1600달러, 가족 플랜 3200달러로 나온다. high deductible plan인 경우는 HSA와 LPFSA에 가입 가능하다. 아닌 경우는 보통 HCFSA를 열 수 있다.
 
LPFSA든 HCFSA든, FSA는 보통 대부분을 당해에 소진해야 한다. 연중 일정 금액씩 납입하지만 쓸 때는 납입이 안 되었더라도 그 해 한도까지 당겨 쓸 수 있다. 다 소진하지 않으면 다음해로 넘어가지 않기도 하고 일부만 넘어가기도 한다. 한 번 설정한 한도 금액은 특별한 이벤트 (결혼을 했다거나 이직을 하거나 배우자가 이민 신분을 받아 미국 입국하거나 자녀를 입양 또는 출산하거나 등)가 생기지 않는 한 변경할 수 없다. LPFSA와 HCFSA의 차이는 용처인데, HCFSA는 의료 뿐만 아니라 치과, 안과 치료 (도수 있는 안경 등도 포함) 등에 사용할 수 있다. Deductible이 차기 이전에 deductible을 낼 용도로도 사용 가능하다. LPFSA는 deductible을 채우기 이전에는 치과나 안과 등 medical에 안 들어가는 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 deductible을 채우면 의료비로도 사용할 수 있다. HCFSA는 HSA와 같이 열지 못하기 때문에 말하자면 주가 되고 LPFSA는 HSA를 보조하는 성격이다. 흥미로운 건, 이를테면, LPFSA를 연중 소진하고 이직을 해도 그 차액을 받지 않는 회사들도 있다. 예컨대, LPFSA 한도를 2400달러로 정하고 1월까지 200달러만 납부한 상태로, 1월에 2400달러를 다 써버린 뒤, 1월 31일에 회사를 떠나면, 2200달러는 당겨쓴 꼴이 된다. 하지만 그 금액을 납부하지 않아도 그냥 보내주는 회사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다들 그러는지는 모르겠다.) 이직한 회사도 LPFSA나 HCFSA가 있다면, 그 회사는 그 LPFSA/HCFSA를 새롭게 열어준다. 즉, 그 해가 가기 전에도 거의 다 써야 하지만 이직 전에도 이런 경우는 쓰고 나가는 게 도움이 된다.

HSA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납입한 금액을 소진할 필요가 없고, 소진하지 않으면 다음 해로 넘어간다. 매년 상한이 있고 납입금은 나중에 세금 신고할 때 소득세를 면제받을 수 있다. HSA는 사용하지 않은 잔고를 index fund에 투자할 수도 있다. 그 투자로 인한 이윤에도 세금을 면제받는다. 다만 그렇게 면제받기 위해서는 의료비 (치과, 안과 등 포함)로 지출을 해야 한다. 한데 이 지출은 HSA를 납입한 해에 발생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과거에 발생했던 의료비 지출도 자료를 잘 모아놨다가 나중에 해도 괜찮다.


이를테면, 2010년에 HSA에 가입해서 5천 달러를 넣어놨다가, 2011년과 그 이후로는 HSA 대상이 아니었다고 해보자. 그래도 2020년에 병원 가서 진료 보고 그 금액을 2010년에 개설한 HSA에서 면세로 꺼내올 수 있다. 뿐만 아니라 2013년쯤 병원 가서 진료 보고 따로 신용카드로 미리 계산한 뒤, itemized receipt 등 자료를 잘 모아놨다가 그 금액을 2024년에 HSA에서 꺼내도 되는 걸로 알고 있다.


401k나 IRA도 그렇지만, 이게 복지라기보다는 고소득층에게 주는 세제 혜택에 더 가까운 느낌이 든다. HSA를 최대로 활용하는 이들은 매년 상한 (작년엔 7천 달러 정도였던 것 같다)까지 납부를 하고 펀드에 투자해서 면세로 운용을 한다. 의료비가 생기면 HSA를 쓰지 않고 LPFSA를 쓰거나 따로 낸다. 따로 낸 경우는 영수증 등 서류를 모아둔다. 그러다가 은퇴를 하거나 소득이 적어지는 시점이 와서 돈이 필요하면, 모아놨던 증빙 자료를 이용해서 HSA에 reimbursement를 청구해서 쓴다.


HSA는 deductible이 높은 플랜이어야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HSA를 쓰기 위해 부러 high deductible plan을 선택해서 가입도 하고, 좋은 회사들도 일부러 high deductible로 간주될 수 있는 최저 deductible을 갖는 plan을 제공한다. 올해는 가족 플랜이 3200달러인 걸로 아는데, "좋은 플랜"의 디덕터블은 일반적으로 낮고 대충 8백 달러나 1천 달러, 이런 수준일 테지만 일부러 디덕터블 3200달러짜리 보험도 선택할 수 있게 넣어둔다. 베이 지역의 (초)고소득자들은 이런 플랜을 선택해서 HSA와 LPFSA에 가입한다. HSA는 건드리지 않고 의료비는 out of pocket으로 해결한다.


어떤 회사는 한 발 더 나간다. High deductible plan을 선택하고 HSA를 열면 회사가 거기에 2천 달러 정도 일시불로 넣어준다. 직원은 병원을 종종 가면 그냥 low deductible plan인데 HSA와 LPFSA를 열고 쓰는 거고, 병원을 안 가면 HSA + LPFSA에 회사가 준 보너스 2천이 들어온다. 아직 이것보다 나은 플랜을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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