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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모개구리 Mar 08. 2024

나이먹고 공부하기

왜케 안되노 그치만 계속 해야지 우짜겠노 여까지 왔는데  

언제 마지막으로 공부해 보셨어요? 라고 물으면 대부분은 고등학교 졸업이나 대학교 졸업이라고 얘기할 것 같습니다. 취업 자격조건이 필요하다든가, 교수님과의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든가, 연구가 적성인 줄 알았다거나, 혹은 내가 앞으로 뭘 해야 할지 고민만 하던 우유부단한 사람들 일부는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이어가기도 했습니다.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특정 직업이 되기 위한 시험을 준비하면서 공부를 더 하기도 합니다. 최근에는(이라고 하기엔 20년 전에도 그랬지만 점점 더) 수능 한 방으로 평생직장 의사 면허 취득이 대세이고 메타인 듯하더군요.


아무튼 대부분은 여기쯤에서 공부를 멈추고 이제 일상을 즐기거나, 버텨내거나, 시간을 보내면서 살아가죠. 평생교육이란 말도 있기는 합니다만 그런 교육은 예전에 못 한 공부를 뒤늦게 하고 싶거나, 혹은 살아가면서 항상 능력을 계속 키워나가고 싶은 향상심이 있는 분들을 위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어렸을 때에는 공부하는 데에 특별한 비용이 들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혹은 많은 비용을 들였지만 그건 내가 잘 모르겠고 엄마아빠가 내주셨을 수도 있죠. 누군가로부터 장학금을 받아서 걱정 없이 공부했을 수도 있고, 아르바이트나 과외 등을 해 가면서 등록금을 충당하고, 비용이 마련되지 않아 휴학을 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어떤 공부를 어떤 조건에서 하느냐에 따라 비용이 달라지기도 하겠죠. 중요한 건 내가 내든 남이 내주든, 얼마를 어떻게 내든 관계없이 공부를 하는 데는 돈이 필요하고 누군가 그걸 지불한다는 겁니다.


한편으로, 공부하는 데에는 시간이 들기도 합니다. 고등학생에게 '내가 해야 하는 일' 리스트를 써 보라고 하면 대부분은 '공부' 외에 다른 걸 적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면 리스트에 다른 항목들이 추가됩니다. 대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시는 분도 계실 것이고, 다른 직업을 가지게 되신 분들도 있으실 겁니다. 어떤 길을 가든 일반적으로는 고등학생 때보다는 공부에 들이는 시간은 줄어들 것 같습니다. 20대 중후반을 대학교, 군대, 아르바이트, 직업활동, 아기 만들기 활동 등을 하면서 보내고 30대로 접어들면 이제 점점 '해야 하는 일'이 더 많아지고, 더 많은 시간을 나의 생활을 위해 쓰거나, 혹은 나 말고 남에게 써야 합니다. 예전에는 나만 챙기면 됐었는데 이제는 제비새끼처럼 입을 벌리고 혼자 뭘 하지 못하는 아기라든가 몸이 아프신 부모님도 챙겨야 하고, 회사 상사나 고객들은 점점 이상한 소리를 해 가며 내 시간을 잠식해 갑니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던 시간들은 점점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는 데 쓰이게 되고, 그렇게 쪼그라든 시간을 쪼개가며 다른 사람과 만나고, 운동도 하고, 나쁜 놈들은 바람도 피우고 하다 보면 다른 일을 할 시간이 거의 남지 않습니다.


다행히 저는 만남, 운동, 이쨔이쨔 같은 것들에는 관심이 없고 집에서 게임이나 하면 즐겁게 지낼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기타도라, 로스트아크, 발더스 게이트, 스트리트 파이터.. 적은 돈으로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게임이 최고입니다.


2023년 최고의 게임 발더스 게이트 3. 여러분도 츄라이 츄라이


그런데 어쩌다 보니 이제 좋은 기회를 얻게 되어 일반적으로 공부하지 않을 것 같은 나이 - 혹은 다닐만한 끝자락의 나이에 학교에 다시 다니게 되어 2년간 공부하고 졸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냥 졸업만 하면 조금 섭섭하니까, 이렇게 얻은 학위를 활용해서 모종의 시험을 치를 준비도 하고 있습니다.


나이 먹고 다니는 학교라는 게 아무래도 기존에 다니던 학교들과는 느낌이 조금 다르긴 했습니다. 고등학생 때는 내신과 수능의 압박이 있었고, 대학생 때는 취업을 위해, 그리고 장학금 유지를 위해 학점관리 비슷한 걸 할 생각은 했던 것 같고, 대학원에서 첫 석사과정을 밟을 때에는 등록금 걱정은 없었으나 과제하고 졸업논문 쓴다고 낑낑 똥 싸는 소리 해 가며 스트레스 받아가며 다녔던 것 같은데, 이번 학교 생활은 그런 부담은 없었습니다. 회사에 다니면서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수업을 듣는다는 시간 압박이 있기는 했으나 그 정도는 감내할만했던 것 같고, 무엇보다 어쩌다 보니 남의 돈으로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기 때문에.. 시간과 비용 둘 중에 하나가 해결되었다는 것이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공부하는 데에 도움이 되더라구요.


물론 내 돈 태워가며 했다면 더 열심히 할 수 있었겠지만, 특정 목적을 가지고 다니는 대학원이라는 게 그 정도까지 열심히 해야 할 필요가 있냐고 물으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반면에 학교에 다닐 때까지는 삶이 풍요로웠던 것 같은데, 오히려 학교 생활을 마치고 이제 시험을 준비하려고 하니 갑자기 여태까지 겪어보지 못한 골치 아픈 일들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 암기 시험 대비: 제가 어릴 때부터 암기 같은 것들은 잘 하지 않고 지식을 겉핥기로 이해한 뒤 머릿속에 대충 꾸겨넣어서 그걸 가지고 문제를 요래요래 푸는 스타일이었는데, 그렇다고 백 퍼센트 남들에게 설명해 줄 정도로 이해한 것도 아니고 그냥 문제를 풀 수만 있는 수준까지만 한 다음 남는 시간은 게임에 투자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려고 하는 이 시험은 이런 스타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에세이 시험이 포함되어 있어서 이제 단어와 문장들을 외워야 하는데 어렸을 때에도 해 본 적 없는 걸 나이 먹고 하려고 하니 예전보다 머리에 영 들어오지도 않고 그렇게 외우는 방법도 딱 떠오르지 않네요.


- 영어 시험 대비: 제가 어릴 때부터 영어를 참 싫어해 왔는데, 문제는 지금 보려고 하는 이 시험은 영어로 치르는 시험이고 위에 말한 에세이도 영어로 써야 합니다. 머릿속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개념도 글로 정확히 풀어내기란 쉽지 않은데, 그냥 한국어로 풀어내는 것도 아니고 영어로 써야 하는 거죠. 양은 또 오지게 많아서 싹 다 외워야 하는데 영어로 ㅎㅎ ㅋㅋ


적당한 짤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이 그냥 생성하면 되는 시대를 살아가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AI님 충성충성


여러 모로 힘든 길을 잘못 택한 게 아닌가, 시험을 보지 말 걸 그랬나 싶기도 합니다만, 어쨌든 많은 시간을 투자한 것이니만큼 이 시험을 잘 보고 뭔가 더 얻어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한편으로는 가족들도 회사 사람들도 저놈이 시험을 준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 툭- 하고 떨어지면 좀 창피할 것 같다는 생각도 없잖아 있기도 하고, 다른 쪽에서는 어차피 학위는 얻었는데 시험 좀 더 잘 본다고 특별히 얻는 것도 없으니 쉬엄쉬엄하라는 유혹을 보내기도 합니다. 제 돈으로 하고 있는 공부가 아니니 조금 나태해지는 점도 있습니다만,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시작을 했으니 마무리도 해야 한다며 질질 끌려가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고민들을 하면서 아무튼 오늘의 시험공부도 끝내고 늦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러 갑니다. 모쪼록 빠른 시일 내에 이런 공부는 때려치우고 다시는 하지 않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제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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