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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모개구리 Mar 09. 2024

청개구리 힙스터 이야기

이제 난 두려워 반대만을 위한 반대. O 정반합 저도 참 좋아합니다 

어렸을 때에는 남들이 안 하는 것, 남들이 별로 관심갖지 않는 것들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리듬게임을 해도 남들이 안 하는 노래를 더 좋아하고, 식당을 찾아다닐 때에도 가장 유명한 곳보다는 뭔가 숨겨져있고 남들이 잘 모를법한 곳을 뒤지고, 여행지를 고를 때에도 남들이 안 가는 곳에 가고 싶어했고, 맥주를 마셔도 하이트나 카스 같은 국맥보다는 역시 에일이 최고야 크- 하며 혼자 취하곤 했고, 휴대폰을 살 때도 애니콜 대신 블랙잭폰, 아이폰 대신 블랙베리, 이후에는 소니 레노버 파나소닉 샤프 같은 똥제품을 사고, 심지어 대부분은 이름도 들어본 적 없을 것 같은 전자잉크가 달린 러시아산 요타폰 같은 것도 쓰곤 했었습니다. 뭔가 남들이 못 챙겨먹는 체리피킹도 해보고 흥 느집엔 이거없지 얘 공짜항공표가 맛있단다 하고 으쓱으쓱 하기도 하고요. 사실 누가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자기만족에 충실했으니 그 점은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안드로이드 휴대폰 DMC-CM1. 10년 전 제품이고 수리가 안 돼서 방치중입니다
다시보니 진짜 개똥같은 것들만 골라 썼네요 대조군인 아이폰아 미안해!


그 때는 잘 몰랐지만 이제 머리가 크고 인터넷이 발달하고 여러 가지 잡지식을 금방 찾을 수 있게 된 후 이제 세상에는 저와 같은 청개구리맨들이 생각보다 많고 얘들을 싸잡아서 부르는 단어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힙스터" 뭔가 멸칭 같으면서도 듣는 본인들은 스스로 그렇다고도 생각할 수도 있을법한 단어. 마치 오따끄와도 같은 미묘한 감성. 원래 서양권의 의미는 따로 있었지만 국내에서는 그런 건 없고 그냥 남들이 안 하는 거면 다 좋아한다는 홍대병으로 통하는 그것들. 


그때부터였을까요 저의 깨달음은. 아니면 예전에 사들였던 똥같은 제품들이 더이상 중고로도 팔리지 않을 때, 고장났을 때 고칠 방법이 없을 때, 상폐된 주식과 같이 가지고 있지만 가지고 있지 않은듯한, 마치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를 물건 하나로 볼 수 있는듯한 그런 모습을 보고 깨닫게 된 것일까요. 아 역시 주류는 주류인 이유가 있다. 집단지성이란 말을 들어보았는가? 남들이 많이 선택하는 제품들은 다아 이유가 있는 것이다. 깝치지 말고 나대지 말고 다수의 선택에 순응하도록 해라. 갤럭시도 써보니 좋지 않느냐 테라맥주를 봐라 발전이 눈부시지 않은가 앤쏘온. 


그렇게 주류의 선택에 몸을 의탁한 후 평화로운 시간이 지나고 아무일없이 사는 듯 했습니다만, 아니나 다를까, 혹시나가 역시나, 숨겨왔던 나의, 사실은 숨겨오지도 않고 그냥 눌러왔던, 말 안듣는 애새끼 본능이 다시 꾸물꾸물 머리를 디밀고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좀 다르다 나의 선택은 이제 더 이상 남들의 선택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거야. 남들이 어쩌고저쩌고는 이제 저의 선택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까지는 아닌 것 같기는 한데 아무튼. 


비주류에 한 스텝 메이저에 한 스텝을 얹어본 뒤 결국 자기 취향은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걸 잘 하는 사람들이 남들의 선택과 남들의 취향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것을 만들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갈 수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됐습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알아야 이걸 할지말지 정할 수도 있고, 어떤 걸 더 많이 먹을지, 어디에 찾아갈지, 한정된 내 돈과 시간을 어디에 써야 할지 정할 수도 있겠죠. 취향이 안 만들어졌다면 남들 뒷꽁무니만 따라가다가 재미없는 삶을 살게 되거나, 아니면 남들이 안 하는 것만 주워먹다가 배탈날 확률이 높거든요. 다수의 선택은 대부분 이유가 있기는 하지만, 그 중에 내가 찾아먹을 만한 것들만 쏙쏙 잘 빼먹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쏟아지는 오염된 바이럴 광고 쓰나미 위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직 안 해본 취미를 새로 가질 때에도, 남들이 밟아놓은 길을 같이 밟아보고 익숙해지면 나중에 샛길을 개척하는 것이 성공 확률을 높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은 일단 이것저것 해 보고 여러 가지 실패를 겪어봐야 찾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결국 또 시간과 노력과 비용이 들어가는 일이군요. 


인터넷 정보의 홍수 속에서 희귀템을 파밍하는 저의 모습


저는 실패를 싫어하는 편도 아니고 안 해본 걸 기피하는 편도 아니기 때문에 이것저것 망한 경험을 쌓아가며 저의 취향을 빠르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마치 컴플릿-완성된 정반합의 표본샘플과도 같은 스페샬아웃컴. 하지만 이렇게 할 수 있게 되는 데에 시간을 너무 소모해버린 나머지 이제 돈은 있지만 시간이 없는 시점에서 취향이 완성되어버렸다는 것이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기껏 완성시킨 내 취향을 이제 즐길 시간이 없어져버렸어 어떡해 망했어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어릴 때부터 이것저것 해보시고 취향 잘 찾아서 빨리빨리 놀고 즐기세요 돈과 시간이 같이 있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런 분들 일부를 제외하면 나이들면 시간을 쪼개쪼개서 즐겨야 하기 때문에 영 쉽지 않아진다는 씁쓸한 결론. 


나중에 알게 된 재미난 점은, 힙스터들이 너무 많아진 시점에서 이 힙스터들은 점점 더 비주류로 파고들다가 비주류의 비주류 즉 메인스트림으로 복귀해서 메인-힙스터가 된 경우도 있었다는군요. 헉! 역시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더니 남일같지는 않군요 


누가 진짜 힙스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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