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작가도 무명 시절은 배고프고 서러웠다.
이번에 소개해드릴 에세이는 작가를 꿈꾸는 분들이 한 번쯤 읽어보시면 좋을 만한 에세이 《빵 굽는 타자기》입니다. 저자인 폴 오스터는 《스퀴즈 플레이》로 데뷔하여,《뉴욕 삼부작》《달의 궁전》소설 및 여러 에세이와 영화/시나리오 등을 쓴 작가입니다.
책에 적힌 저자의 설명을 좀 더 들려드리자면, 오스터는 모톤 다우웬 자블상, 펜포크너상, 메디치상, 오스트리아 왕자상 등 수많은 상을 수상했으며, 2006년에는 미국 문예 아카데미의 회원으로 선출되었다고 하네요.
도회적이고 감성적인 언어와 기발한 아이디어로 독자의 상상력을 기분 좋게 자극하는, <우연의 미학>이라는 독창적인 문학 세계를 구축한 탁월한 이야기꾼이라고 책의 첫 부분에서 소개가 됩니다.
이렇게 칭송받는 작가는 처음부터 글을 술술 잘 써 내려가고 모든 일이 잘 풀렸을까요? 물론, 그런 작가도 일부 존재하기는 하지만 폴 오스터의 경우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있어 작가의 삶은 거부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아서, 모든 정열을 바치기 위해 전업 작가의 길을 걷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작가들에게 있어 고질적인 삶의 문제인 돈 문제를 피해 갈 수 없었습니다.
돈 때문에 힘들었던 삶의 흔적과 고뇌, 사투들이《빵 굽는 타자기》에서 전반적으로 나타납니다. 솔직하면서도 약간은 거칠고 당당하게 자신의 얘기를 적어나간 내용들은 시대가 약간 다를지언정, 오늘날의 전업작가를 꿈꾸는 이들에게도 많은 공감과 위로가 될 것 같습니다.
그 내용의 일부를 간략하게 소개해드리고 싶네요.
글 쓰는 것 말고는 어떤 일도 자기한테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평생 동안 멀고도 험한 길을 걸어갈 각오를 해야 한다.
작가들은 대부분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 생계에 필요한 돈은 본업으로 벌고, 남는 시간을 최대한 쪼개어 글을 쓴다. 이른 아침이나 밤늦게, 주이나 휴가 때. 윌리엄 칼러스 윌리엄스와 루이 페르디낭 셀린은 의사였다. 윌리스 스티븐스는 보험회사에 다녔다. T.S. 엘리엇*은 한 때 은행원이었고, 나중에는 출판업에 종사했다.
* 시 [황무지]로 유명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전 어렸을 때부터 독서를 좋아했지만, 글쓰기를 좋아하진 않았습니다.
독서도 중, 고등학교 때 학업을 하기 싫어서 한 도피행위였을 뿐, 성인이 되고 나서는 꾸준히 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일을 시작하면서 다시 독서를 시작하였고 우연찮게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글쓰기만큼 나에게 어울리는 취미활동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요.
친구들과 놀면서 술 마시는 것도 좋아하지만, 궁극적으로 제 마음을 충족시켜 주는 것은 독서와 글쓰기였습니다. 특히나, 제 이름으로 된 책 한 권은 언젠가 꼭 내고 싶다는 꿈마저 생겨났습니다.
결국, 저는 일평생 독서와 글쓰기를 해나가야 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30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간의 삶은 이를 깨닫기 위한 여정이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공자가 30이라는 나이는 이립(而立)이라 하여, 마음이 확고하게 도덕 위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 나이라 했는데, 저는 도덕은 아니더라도 제 삶의 길이 확고해진 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어쨌든, 새로운 꿈과 평생 동안 걸어가야 할 길이 생겼지만 이 길은 정말 험난합니다.
글쓰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사회생활조차도 초년생 시절이기에 저는 당연히 이중생활을 해야 합니다. 직장을 다니면서 퇴근하고 글쓰기를 하는 것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지치고 고된 길이었습니다.
게다가, 저는 아직 계약직이라 정규직이 되기 위한 필기공부와 몇몇 자격증 준비도 해야 합니다.
또, 일이 몰리는 시기엔 야근도 해야 하니 퇴근하고 나면 집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그저 잠만 자야 하죠.
궁색한 변명이지만, 내 꿈을 위한 글쓰기는 일주일에 단지 몇 시간만 낼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 글을 써 내려갈 수 있는 것은 이 길이 나에게 맞고, 힘들지만 즐거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런 저의 상황이 겹쳐서 그런 것일까요? 저는 책의 첫 도입부에서 나타나는 저 문장을 보고 《빵 굽는 타자기》를 단숨에 읽게 되었습니다.
INTRO에서 말씀드렸듯이, 이 책은 작가 폴 오스터의 자전적인 에세이입니다.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에 나는 손대는 일마다 실패하는 참담한 시기를 겪었다. 결혼은 이혼으로 끝났고, 글 쓰는 일은 수렁에 빠졌으며, 특히 돈 문제에 짓눌려 허덕였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면서, 학창 시절부터 자신이 만나왔던 사람과 겪은 환경을 재밌게 써 내려갑니다.
폴 오스터에게 중요했던 시기는 제가 생각하기에 컬럼비아 대학 3학년때였던 것 같습니다. 이 시기에 그는 파리 연수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책 속에 2년 동안 파묻혀 지내면서 완전히 환골탈태하게 되었으니까요.
"2년 동안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내 머릿속으로 쏟아져 들어왔고, 인생을 바꾸어 놓는 새로운 피가 수혈되어 혈액의 성분까지 달라졌다."라고 서술할 정도로 많은 책을 읽고 자신의 근본적인 상상력과 문학, 철학의 토대를 만들어냅니다.
근본적인 토대를 바탕으로, 그는 자신의 작품을 써 내려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합니다. 하지만, 생계도 유지해야 했기에 유조선의 선원으로 일을 하기도 하고 파리에서 익힌 프랑스어 실력으로 번역을 하기도 합니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자신의 글까지 써 내려가는 일은 힘들고 고된 여정이었겠지만, 그는 묵묵히 해냅니다.
하지만, 폴 오스터가 하는 일은 우리가 생각하는 정규직 같은 일들은 아니었습니다. 조직생활은 그에게 잘 맞지 않았기에(맞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간단한 소일거리나 계약직의 신분을 유지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돈은 항상 그에게 있어서 큰 골칫덩이였습니다.
어쩌면 작품의 제목이 《빵 굽는 타자기》인 것은 자신의 꿈을 위해 타자기를 두드리는 그 순간이 자신의 빵을 구워내는 순간이기를 원해서 지은게 아닌가 싶습니다.
책에서는 그가 전업작가로 변하게 된 순간과 성공의 순간까지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소설가로 성공한 순간부터 폴 오스터는 자신이 꿈꾸던 전업작가의 삶을 시작했을 것 같습니다.
데뷔작을 35살쯤에, 《뉴욕 삼부작》뉴욕 삼부작과 《달의 궁전》달의 궁전은 40대 초반쯤에 냈으니 그전까지는 계속해서 돈이 자신의 삶과 꿈을 갉아먹었을 겁니다.
그 힘들었던 시기에서 자신이 만났던 인상 깊은 사람들과 사건들, 생각과 심리의 변화 및 작가의 삶과 고뇌에 대한 통찰력 있는 문장들이 책에 어우러져 있습니다.
글쓰기를 위해 자신의 영혼을 바치겠다는 각오. 그 각오가 삶의 풍파속에 어떻게 흔들렸는지, 그 흔들림의 과정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유지해온 그 여정이《빵 굽는 타자기》의 주요 내용입니다.
취직해서 자리를 잡기에는 너무 젊다는 생각이 들었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은데 원치도 않는 필요 이상의 돈을 벌기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저는 기간제근로자 3개월, 체험형 인턴 6개월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근무시간이 흔한 직장인들처럼 9 to 6이었지만, 야근은 절대 없었고 업무시간 중에도 개인적인 공부나 독서가 가능했을 정도로 낮았습니다.
돈을 벌면서도 내가 하고 싶은 독서나 공부가 가능했기에 시간을 오히려 벌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정말 행복한 시기였죠.
그 시기를 겪고 나니깐, 저도 위 문장처럼 필요 이상의 돈을 벌기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게 되었습니다. 좀 더 제상황에 맞게 다시 서술하자면,
"내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정규직을 하고 싶지 않아 졌다."라고 서술할 수 있겠네요.
현재의 대한민국 청년 취업 현황을 살펴보자면, 참으로 철없고 어리석은 생각이긴 합니다.
괜찮은 중소기업도 들어가기 힘든 것이 현재 상황인데, 그저 계약직과 인턴만 계속 전전하면서 별다른 경력 없이 인생을 살겠다는 뜻이니까요.
지금은 생각이 좀 바뀌긴 했습니다.
하고 싶은 일 중에 "결혼"이라는 큰일이 생긴 이상,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게 되었으니까요.
어쨌든, 2년 전에 기간제근로자와 체험형 인턴을 하면서 폴 오스터와 비슷한 생각을 했어서, 이 문장이 좀 인상 깊게 다가왔었습니다.
나는 완전한 독립을 원했고, 마침내 번역 일감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당장 직장을 때려치우고 다시 혼자서 길을 떠났다. 직장에 다니는 실험은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정확히 일곱 달 동안 지속되었다. 그 기간은 짧았을지 모르나, 내가 어른이 된 뒤 정기적으로 봉급을 받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폴 오스터는 자신이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일을 할 때는 성실하기도 하고 똑똑했는지 좋은 직장을 제의받습니다. 그러나, 그는 애초에 직장이라는 곳이 맞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제법 큰 출판사의 편집차장 일자리를 제의받았지만, 하루에 4시간만 일하는 선택을 했고 그 조차도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번역 일감이 들어오자마자, 4시간 정도의 일자리도 때려치우고 혼자서 길을 떠난 것처럼요.
작가를 꿈꾸는 이들이라면, 뭔가 공감할듯한 말이긴 합니다.
제가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에 대해 잘 알진 못하지만, 저를 예시로 들자면 "굉장히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존재"이기에 여럿이서 같이 업무를 협업하는 것이 잘 안 맞지 않나 싶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지금의 시험연구원은 개인적인 업무가 대부분이기에 성향이 꽤 맞아서 잘 다니고 있는 거 같고요.
폴 오스터가 직장이 맞지 않았던 이유는, 워낙 자신의 꿈이 강하기도 했고 여럿이서 협업을 해야 하는 조직생활이 자신의 영혼을 괴롭혀서 그런 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전에도 계속해서 조직생활이 잘 맞지 않았던 듯 하지만, 이 편집차장을 끝으로 그는 정기적인 봉급생활을 끝내게 됩니다.
나는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잡문으로 생계를 유지했고, 결국 그것 때문에 인생의 낙오자가 되었지만, 거기에는 어떤 낭만적인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가령 나 자신을 아웃사이더로 선언하고, 훌륭한 인생에 대한 일반 통념에 휩쓸리지 않고 혼자 힘으로 해나갈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은 욕구 같은 것. 내 입장을 고수하고 물러서지 않으면, 아니 그렇게 해야만 내 인생은 훌륭해질 터였다. 예술은 신성한 것이고, 예술의 부름에 따르는 것은 예술이 요구하는 어떤 희생도 치르는 것. 목적의 순수성을 끝까지 지키는 것을 뜻했다.
작가가 위대한 것은, 몇 줄의 문장만으로 누군가의 삶을 꿰뚫거나 관통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사람이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던 희미한 생각들을 문장으로 명확하게 나타내버리는 것.
그게 작가가 가진 위대한 통찰이 아닌가 싶네요.
위 문장은, 저의 아웃사이더 기질과 생활을 완벽히 꿰뚫은 것 같습니다.
곧 서른을 앞둔 저는, 이 직장 저 직장을 전전하면서 생계를 유지했으나 별다른 경력이 없어서 낙오자인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언젠가 인생이 잘 풀릴 거라는 낭만적인 생각이 있었기에 저는 낙천적으로 인생을 꾸려나가고 있었습니다. 남들과 다른 길을 걷더라도, 결국에는 누구보다 성공할 거라는 믿음.
저는 이 믿음을 유지하고 입증해 내야만 제 인생이 분명 훌륭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있어 예술은 분명 신성하고, 거룩한 것이긴 합니다. 제게 있어 예술은 글쓰기와,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제가 만족할 만한 작품 하나를 남기는 것. 그 작품 하나를 위해서는 남들이 여행을 가고 쉬어가는 모든 시간에 항상 글을 쓰겠다는 각오를 하는 것.
그렇게 하여, 제 처음의 목적을 달성하면서도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 바로 제가 추구하는, 제 삶에서 이루고 싶은 예술입니다.
이러한 저의 욕구와 삶의 목적성을 폴 오스터가 몇 문장만으로 나타냈기에, 이 문장을 소개해드리고 싶었습니다. 글쓰기를 좋아하시는 브런치 작가분들이라면 모두들 이 문장에서 어떠한 통찰과 여운을 얻어가지 않을까 싶네요.
작가의 꿈을 진지하게 꿈꾸는 이들이라면, 겸업작가를 하면서 힘들게 생계를 꾸려나가는 이들이라면 모두들 꿈꾸는 "전업 작가"의 삶.
전업작가를 꿈꾸는 이유는 다들 똑같을 것 같습니다.
"내가 써 내려간 작품을 통해서, 내가 삶에서 영위하고 싶은 경제적 생활 수준을 유지하는 것.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 삶의 체력과 시간을 내 작품에 쏟아붓고 싶다."
하지만, 위 전업작가의 삶은 만만치 않기에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은 겸업작가의 길을 걷게 됩니다.
겸업을 하게 되면, 아무리 9 to 6의 직장을 다닌다 하더라도 물리적 시간만으로는 60% 이상의 시간을 뺏기게 되고, 내 정신적, 인지적 체력까지 뺏긴다 치면 겨우 20%남짓만 한 체력으로 글을 쓰게 됩니다.
이것이 겸업작가의 현실이기에, 작가의 꿈이 크면 클수록, 내 작품에 대한 열망이 더 강할수록 직장을 다니면서 스트레스가 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직장이라 하더라도, 직장 동료들과 원만히 관계를 유지하고 성과가 좋다 하더라도 마음속은 점점 공허해지겠죠. 이러한 심리상태는 어찌 보면, "작가"라는 꿈을 꾸는 이들이 받는 정신적 저주가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분명,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살아가는 힘을 실어주는 축복 같은 꿈이면서도, 내 마음속 한편을 차지하여 계속해서 나를 채찍질하고 자학하게 만드는 저주와도 같으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작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이들은 모두 "글쓰기"라는 행위를 사랑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 사랑은 참으로 고달파서 내가 걷는 길을 가시밭길로 만들지만요.
그래도, 장미는 가시가 있기에 아름다운 것처럼, "작가"라는 꿈이 내 삶을 가시밭길로 만들지만, 그 꿈이 있기에 내 삶은 아름다우면서도 매혹적이지 않나 싶습니다.
그 매혹적인 가시밭길을 걸었던 폴 오스터가 들려주는 자전적인 에세이가 바로 이번에 소개드린《빵 굽는 타자기》였습니다.
위대한 작가도 이렇게나 힘들고 고된 청춘을 보냈기에, 읽으면서 많은 공감과 위로를 얻을 수 있으실 겁니다.
작가의 꿈이 지금 흔들리고 계신다면, 힘든 겸업작가의 생활에 지쳐서 잠깐 우울해지신 분이라면 이 작품을 한 번 읽어보시길 강력히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