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독립하려고 했는데 2
외출하려고 하면 어김없이 엄마의 질문들이 따라붙는다.
어디로 가니?
(아 알아서 뭐 하게)
영통.
누구랑~?
(아 말하면 아냐고)
애들.
뭐 먹니~~~~
(아 아직 안 정했다고)
피자.
차 끌고 가니~~~?
(아 그럼 끌고 가지 안 끌고 가냐고!)
어.
일찍 들어와~~~?
(아 알아서 한다고!!!!)
어.
대답 하나 할 때마다 가슴팍에서는 괄호 속 말이 불끈불끈 솟는데
‘후’
심호흡 한 번 하고 대답을 한다.
실제로 차 끌고 영통 가서 애들이랑 피자 먹는 것도 아니면서 엄마한테 대답 한 번 해주는 걸 드럽게 치사하게 군다.
싸가지 없는 대답도 대답이라고, 스스로를 칭찬하며 현관문을 나선다.
PMS가 심할 때는 몸이 심호흡을 준비하기도 전에 괄호 속 말이 그대로 튀어나가기도 한다.
그러면 어김없이 “우라질 년, 지엄마한테 소리는 빽빽 지르구 지랄이야.” 소리를 듣는다.
어쩌면 실제로 차 끌고 영통 가서 애들이랑 피자 먹는 게 아니라,
실은 차 끌고 안산 가서 한솔이랑 배달음식을 시켜먹을 거라서 더 대답하기 싫은 것 같기도 하다.
아빠는 내가 여태 모솔인 줄 알고, 엄마는 뭐 어디까지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사귀는 사람이 생겨도 부모님한테 절대로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다.
내가 초등학생이고 오빠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오빠가 여친이 생겼다고 하자 엄마가 그 언니를 집에 불러서 밥을 차려주는 걸 봤기 때문에.
식사자리가 아니라 압박면접이었다고 어린 내가 기억하기 때문에.
그 후로 오빠가 나갈 때마다 “여자친구 만나러 가니?? 어디로 가니?? 언제 올 거니?? 일찍 들어와라??? 엄마 부끄러울 일 하지 마라 엉???” 하는 잔소리를 듣는 걸 기억하기 때문에.
나는 사귀는 사람이 생겨도 절대 말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고, 그걸 지키며 사느라 외출 통과의례를 마주하는 게 늘 힘들다.
언젠가 엄마에 대한 짜증과 아빠에 대한 반항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20대 중후반이었다는 게 부끄러울 뿐이다.)
내가 나갈 때 제발 아무것도 묻지 말고, 내가 늦게 와도 제발 아무 연락도 하지 말아 달라고 애원한 적이 있다.
엄마는 한숨을 쉬며 “네가 어디에 누구랑 있는지 모르면 그냥 그게 너무 걱정이 되니 알려주면 안 될까?”라고 했다.
아빠는 “네가 늦으면 어디서 술이 취해서 자빠져서 자고 있는지 위험한 일을 당했는지 어디 괴한한테 끌려갔는지 온통 그런 생각만 들어서 잠을 잘 수가 없어!“라고 했다.
심호흡 혹은 한숨을 곁들인,
거짓뿐인 싸가지없는 단답일지라도.
오늘도 나름의 효도 성공이다.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