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빛바람 Dec 30. 2024

추울 때 보면 더 추워지는 영화 두 번째!

 에로틱 심리 스릴러 블랙 아이스

  한 남자와 두 여자 사이의 삼각관계는 영화적 소재로는 너무 흔하게 쓰여 이제 진부하다 못해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이야기 소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소재를 다룬 이야기가 끊임없이 반복 변주되는 이유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가 일정한 궤도 내에 머물러 있지 않고 예측불가의 사건들로 인해 다양한 곡선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이 이런 이야기들의 힘의 원천이며 우리가 매번 비슷한 이야기구조에 귀 기울이는 이유일 것이다.


# 육체적 결합과 오해 그리고 심리적 불안

  여기 또 하나 삼각관계를 다룬 영화가 있다. 제목은 검은 도로와 구분되지 않는 살얼음이란 뜻의 '블랙 아이스'. 영화는 하얀 설원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곧 침대 위에 엉켜있는 두 남녀의 클로즈 업으로 시작된다. 하얀 침대 시트 위에서 격정적으로 사랑을 나누는 남녀, 그리고 교차 편집되어 보이는 검은 도로 위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여자! 이 오프닝 시퀀스에서 보여주듯 이 영화에서 흑백대조는 많은 의미를 함축한다. 일례로 하얀색은 항상 위험을 동반하거나 경고의 의미로 쓰인다. 그래서 이 장면에서도 하얀 침대시트 위의 커플은 왠지 위험해 보이고 부적절해 보인다. 그리고 곧 폭풍의 소용돌이를 예고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남녀 간의 오해와 그로 인한 예기치 못한 사건들이. 그리고 그 사건을 자전거를 타고 와 훔쳐보는 한 여인이 있다. 이 여인은 아직 사건의 바깥에 있고 안전한 장소에 위치해 있다.

 주인공 레오와 사라는 격정적인 육체적 결합으로 사랑을 나누고 레오는 벌거벗은 체 사랑의 세레나데까지 바치지만 작은 오해의 불씨로 인해 둘 사이는 차갑게 얼어붙고 팽팽한 긴장감과 불안만이 둘 사이를 메운다. 이것은 육체적 결합 즉, 섹스가 관계의 영원성이나 상대의 사랑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즉, 레오와 사라의 관계는 부부(夫婦)라는 사회적 역할 내의 열정적인 육체적 결합은 있으나 정서적 친밀성은 비어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사라와 레오의 대화에서도 잘 나타난다.


#임신의 불안과 여성 간의 심리적 싸움

 부인 사라는 산부인과 의사로 오늘도 어려운 수술 끝에 두 생명 중 간신히 하나만을 지켜냈다. 극 중 사라의 직업은 비유적 상징으로 읽힌다. 산부인과 의사는 여성이 피임과 여권신장으로 인해 많은 부분 독립적인 주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한 새끼의 어미로서 생명을 담보로 임신과 출산을 책임져야 함을 뼈저리게 느끼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라는 실력 좋은 산부인과 의사이면서도 정작 본인은 임신을 두려워한다. 이것은 타인과의 깊은 관계나 책임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본연의 죽음에 대한 공포인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환자의 죽음에 그토록 심란해하고 아파하는 것이다.

  남편의 외도를 눈치챈 사라는 그 여자의 정체를 우연히 알게 되고 그 뒤를 밟는다. 그리고 그 여자 '툴리'가 일하는 태권도장으로 들어간다. 남편의 외도상대인 '툴리'는 남편이 일하는 건축디자인과 학교 학생이자 태권도 사범이다. 영화적 설정으로 태권도장이란 장소는 두 여인의 심리적 싸움터이자 툴리라는 여성의 모순된 성격을 반영한다. 툴리는 태권도장에서는 하얀 도복에 깍듯한 예절로 학생들을 대하지만 그 외의 장소에서는 외설적인 농담으로 남자를 유혹하기도 하고 술과 파티를 좋아하며 자유로운 분위기를 즐기는 타입이다. 그리고 그녀는 레오와 그들만의 공간을 꿈꾼다. 이것은 둘이 만나 껴안는 장소가 외부이며, (둘은 추위에 떨며 강가에서 밀어(蜜語)를 속사 인다) 그녀가 만드는 건물모형에서 드러난다. 사라는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툴리와 점점 가까워지고 그로 인해 극적 긴장감은 점점 높아지게 된다. 여기서 하나 지적하고 넘어가자면, 사라와 툴리의 심리적 거리는 둘의 의상 색깔에서 확연히 나타난다. 둘의 관계가 급진전되어 가까워질 때에는 비슷한 계열의 무채색 옷을 입고, 갈등을 빚을 때에는 흑백대조가 되는 색상을 입는다. 그리고 둘 모두 흰색 의상을 입는 경우는 위험을 암시하는 경우이다. 그래서 둘이 처음 마주하는 장면에서는 툴리는 하얀 도복을 사라는 무채색의 대조되는 의상을 입고 있다. 그리고 툴리는 새 회원(사라)에게 흰색 도복을 건넨다. 아직 둘의 사이는 어색하고 크나큰 거리감이 있기에 사라는 위험한 경고장처럼 도복을 껴안고 심란해한다.

#휘몰아치는 모순적 감정, 그 안의 진실!

  사라는 먼저 도장을 나와 툴리의 자전거를 숨기고 자신의 자동차에 그녀를 타게 한다. 이것은 위험한 초대로 툴리를 그녀의 영역(차 안이거나 집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이다. 이 영화에서는 유난히 자동차 신이 많은데 대부분 큰 사건을 동반하거나 갈등을 유발하는 매체로 작용한다. 이것은 사람의 관계라는 것이 누가 핸들을 잡고 있든 상관없이 불가항력적인 힘에 의해 이끌려 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툴리는 안전한 자전거를 상실함에 동시에 위험한 소용돌이 속에 동승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라는 자신의 자동차를 몰 때에는 아주 자신만만하고 여유로워 보인다. 이것은 아직 그녀가 사건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제목처럼 영화는 시종일관 살얼음을 걷는 듯 긴장을 유지한 채 전개된다. 사라와 툴리는 이제 서로의 비밀을 공유하고, 인간적인 유대를 더해가며 정서적 친밀감을 쌓아간다. 영화 속 둘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마치 사랑을 나누는 완벽한 연인(戀人)처럼 보이기도 한다. 같이 서로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울고 웃고 떠들고 공감하고 감싸 안아주는 관계 말이다. 이것은 상대가 여성이며 남편의 정부일 뿐 정신적 외도의 비유적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부글부글 끓는 분노의 감정과 함께 동반된 정서적 유대감 그리고 인간적 이해와 공감! 이 모순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사라는 인생의 새로운 활기를 되찾기도 하고 또 다른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지기도 한다. 이렇듯 결국 사람의 관계란 한 사람 안에 자리한 모순된 감정덩어리를 어떻게 잘 숨기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얼음같이 차가운 이성아래 뜨거운 감정덩어리를 붙잡고 있는 존재이니까 말이다.



 #어는점과 끓는점을 정확히 꿰뚫고 그린 치정심리 설계도!

  극의 갈등구조는 뜨겁게 분출할 듯 잦아들고 가벼이 잦아들듯 분출한다. 마치 어는점과 끓는점을 정확히 꿰뚫고 그린 설계도처럼 이 영화는 형식과 내용이 정확히 일치하며 시종일관 긴장감을 유지한다. 사라는 모순된 감정덩어리를 애써 숨기고 결국 툴리와 남편을 떼어 넣어 놓는 데 성공하고, 남편과 재결합한다. 하지만 이젠 툴리라는 소중한 친구를 잃을까 두려움에 휩싸인다. 결국 사라도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을 상대가 툴리밖에 없었고 이는 툴리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아까 언급하였듯 이 둘은 이미 육체적 결합보다 더 강렬하고 더 필요한 정서적 유대감을 나눈 사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라와 툴리의 관계는 영원할 수 없는 관계이고 이것은 마치 둘을 금지된 사랑을 하는 연인처럼 보이게 만든다.  

  툴리는 사라의 신분을 아직 모른 채 비슷한 복장을 하고 가면무도회에 가자고 한다. 얼굴을 가리고 신분을 속이고 누가 친구인지 적인지 모른 채 또 한판 두 여인의 속고 속이는 파티가 시작된다. 이 혼란과 무질서 속에 남자들은 펭귄처럼 멍청하게 뒤뚱거리기만 한다. 그러니 이 영화는 남자에게 관계의 본질을 깨닫고 예민하게 주위를 살피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 후 사라는 또다시 툴리를 자신의 차에 태우고 이제는 자신의 집안으로 끌어들인다. 이제 완전히 자신의 영역으로 그녀를 데리고 온 것이다. 호랑이 굴로 스스로 걸어 들어온 툴리는 약에 취해 잠이 들고 툴리의 임신확인을 위해 사라는 자신의 손가락을 삽입하게 된다. 그리고 뒤이어 연출되는 섹슈얼한 제스처는 그 둘의 미묘하고 복잡한 감정을 대변한다. 그러니 이 아주 흥미롭고 독창적인 장면은 어떤 영화의 베드 신보다 스릴 있고 매력적이다. 특히 사라가 툴리의 임신확인을 자신의 전문적인 지식(하나의 권력)과 (성기대신) 손가락을 이용한 점은 섹스의 권력적 속성과 책임을 질척이는 눈물과 교훈적 태도 없이 표현한 놀라운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매력적인 장면 이후 사라의 가슴에는 폭풍우가 쏟아지고 극은 종반을 향해 치닫는다. 툴리는 점차 정신을 차리며 자신이 어디에 와 있는지를 뒤늦게 깨닫게 된다. 이 장면에서 집은 마치 하나의 등장인물처럼 점점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마치 사라의 감추어져 있던 감정이 드러나듯 사라의 초상화를 그리다 비로소 자신의 현 위치를 깨닫는 툴리는 재빨리 그 자리를 피하지만 사라의 그물망을 벗어나지는 못한다. 곧 집에 들어온 남편 레오의 오해와 분노 속에 쫓고 쫓기는 자동차 추격신이 펼쳐지고 사건은 예기치 못한 결말로 치닫는다. 두 여자가 공유했던 한 남자의 죽음은 두 여자 모두에게 충격을 줌과 동시에 두 여자의 공통분모를 하나 더 만들어주는 구실을 한다.

즉, 같은 상처를 공유함으로써 둘 사이의 이해의 끈을 놓는 것이다.      

  그 이후 툴리와 사라는 사라의 병원에서 산모와 의사로 재회한다. 영화의 이러한 결말장면은 사라의 모순적인 감정의 덩어리를 설명하는 힌트로 읽힌다. 그러니까 결국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웠던 툴리에게서 느꼈던 동질감과 정서적 유대는 그 여성도 나와 같이 새끼를 낳아 기르는 한 마리 포유류의 어미라는 사실 때문이었던 것이다. 마치 이것은 저 사람도 나와 같이 심장이 뛰고 똑같이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그 이상의 안도감이며 동질감이다.   

  그러니 이 영화는 단순히 남녀관계내의 사랑, 질투, 증오를 소재로 한 영화가 아니라 인간관계 내의 오해와 그 오해로 인한 심리적 나비효과를 독창적인 스타일과 효과적인 반전으로 그려낸 수작(秀作)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남녀의 관계와 심리를 남성적 욕망의 판타지 내에서 탈피하여 여성적 친밀함의 영역으로 그려낸 감독의 연출력은 탁월하다 할 수 있다.   


추울 때 보면 더 추워지는 영화 두 번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