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어는점에 가까운 겨울비가 내린다. 비는 도로에 닿자마자 얼음장으로 변하고 나뭇가지에닿아 얼음꽃이 된다. 온도시의 전선에는 고드름이 매달려있다.보는 이마저 몸서리치게 한기를 느끼게 만드는 이 풍경은 모순적으로 아름답고위험하게 느껴진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아이스스톰은 과냉각된 물이 약간의 충격에도 바로 얼음으로 변하는 현상을 말한다. 영화 속에서 이것은 긴장감을 자아내는 배경이자 등장인물 간의 냉각된 관계를 비유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고요한 분노와 무관심. 딱 한순간의 언행이 둘 사이를 얼음으로 바꾸어 서로를 등 돌리게 만들 수 있는 상태!
릭 무디의 1994년 동명소설을 원작으로(아쉽게 소설은 우리나라에 출판되지 않았다.) 이 영화는 1973년 추수감사절(11월네 번째 목요일)코네티컷 주 뉴 캐넌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화의 배경은 그저 시간성과 공간성을 드러내는데 그치지 않는다. 영화 속 시간과 공간은 아주 구체적이며 이야기를 이끄는 요소이지만 반어적 이게도 이 사건이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음을 드러낸다. 이 사건의 보편성은 우리에게 겨울비의 한기를 타고 뼈 시리게 다가온다.
여기 차 안에서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대화를 나누는 부부가 있다. 밖에는 서늘한 겨울비가 내린다. 그들은 친구가 초대한 파티에 왔지만 들어가길 망설이고 있다. 모진 날씨 때문이 아니다. 바로 파티의 정체 때문이다.그들은 일명 '키 파티(key party)'에초대받았다. 키파티란 남편들이 그릇에 자신의 자동차 키를 넣고 아내들이 키를 뽑아 하룻밤 파트너를 바꾸는 것이다. 이 둘은 결국 무슨 선택을 할까?
#정서적 교감 없는 인물들
벤자민 후드(케빈 클라인)는 겉으로는 속 깊은 아버지 인척 다정한 남편인 척 연기하지만 모두 속내를 들키고 만다. 그는 모든 관계 맺음에 실패한 듯 보이고 심지어 내연녀와의 관계마저 불안하다. 벤의 부인 엘레나(조앤 알렌)는 유행하는 자기 계발서에 몰두하고 종교모임에 나가지만 남편의 외도와 거짓말에 인내심을 잃어간다.
후드네의 이웃인 제이니(시고니 위버)는 남편의 눈을 피해 벤과 바람을 피우지만 그마저 가까워지니 침대에서 지루한 직장얘기, 짜증 나는 직장동료 얘기를 할 뿐이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같은 공간에서조차 분리되어있고 정서적 교감을 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소통은 한쪽으로 미끄러지거나 상대에게 막힌다. 벤이 아들에게 애써 소통하려는 제스처는 애처롭다 못해 우스꽝스럽게 보인다. 엘레나는 남편과의 관계를 개선하려고 애쓰지만 남편은 서툰 거짓말을 할 뿐이다.그리고 마이키와 샌디는 아빠가 출장을 다녀왔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다.
#아이들은 어른의 거울
이 영화 속 어른들과 아이들, 부모의 자식의 세계는 거울처럼 닮았지만 결정적 선택에 있어 차이점을 보인다.
벤의 딸인 웬디(크리스티나 리치)와 제이니의 큰 아들 마이키(일라이저 우드)가 입맞춤을 나눌 때 벤과 제이니의 물침대는 출렁이고,엘레나는 딸 웬디를 따라 자전거를 타고 잡화점에서 물건을 훔치다 점원에게 들킨다. 웬디 또한 앞서 같은 행위를 하지만 노려보는 할머니를 피해 달아난다. (이때 어른을 모방하는 아이들과 달리 딸을 모방하는 엘레나는 정서적 퇴행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또다시 차 속의 부부! 그들은 벤과 엘레나이다. 그들은 결국 홧김에 파티에 참여하고 그 시간 그들의 아들 폴은 짝사랑하는 여학생과 룸메이트와 술과 약에 빠져든다. 그리고 이 영화 속 가장 개성적인 캐릭터인 웬디는 마이키의 동생 샌디와 침대 속에서 알몸이 된다.
어른들은 일탈을 행하고 아이들은 비행을 저지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아이들은 멈추거나 선을 지키지만 성인들은 끝내 선을 넘고 벽에 부딪혀서야 아픔을 느끼고 흐느낀다.
사실 아이들의 비행은 어른들의 시선으로 보면 아슬아슬하고 위험하며 충분히 소리를 지를만한 것이지만
그들은 그저 각자의 관심영역을 탐구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웬디는 이성의 몸에 샌디는 군인과 무기에 폴은 동창인 리베츠(케이티 홈즈)에 그리고 마이키는 분자에.
#비극적 사건과 남은 숙제
이 영화 속 유일하게 따듯한 체온이 느껴지는 장면은 벤이 그의 딸 웬디를 코알라처럼 껴안고 걷는 장면이다. 허나 이 장면은 스산한 풍경처럼 비극적 결말을 막지 못한다. 벤은 제이니의 집에서 밀회를 나누려다가 제이니가 갑자기 나가는 바람에 혼자 남겨진다. 혼자 남의 집 여기저기를 둘러보다 지하실에서 우연히 자신의 딸 웬디와 마이키가 옷은 입은 채 엉겨 붙은 걸 발견한다. 벤은 어른으로서 아빠로서 격분하지만 훈계의 효과는 전혀 없다. 집에 돌아온 벤은 그 에피소드를 부인에게 재미 삼아 들려주지만 '당신은 왜 그 집에 있었어?'라는 질문에 금방 들킬 거짓말을둘러댈뿐이다.
영화 속 비극적 사건은 논리적으로 보자면 어른들의 부정(不淨)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허나 그 사건이 일어난 그날 밤 부모는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목격자는 어디를 향하다 그 아이를 발견하였는지 끝없이 질문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들은 이 우연하고도 비극적인 사고 앞에 분노할 수 없다. 부모는 아이의 시신을 껴안은 채 울부짖고
벤은 차에서 끝내 흐느끼고 만다. (원작 소설에는 없는 추가된 장면으로 알려져 있다.)
이 흐느낌과 눈물은 무엇을 말하나? 분노 또는 절망?
아마도 지난날에 대한 회한(悔恨)과 부끄러움 일 것이다.
# 첫 장면과 결말의 기차
이 영화는 수미상관식 구조로 오프닝과 엔딩 장면이 이어져 있다. 감독은 얼어붙은 선로에서 기차가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출발하는 장면에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이것은 무엇을 뜻할까? 혹독한 추위에 기차선로마저 얼어붙고 기차 위 전선은 스파크가 튀고 객실 안 조명은 깜박이며 당장이라도 무슨 사건이 일어날 것 같은 긴장감이 흐른다. 이것은 영화적 서스펜스를 관객에게 선사함과 동시에 이 이야기가 이미 지난 과거의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한다.
지옥의 밤은 지났고 기차는 무사히 도착했다. 우리는 차 안에 모인 가족들을 목도하지만 어떠한 밝은 전망도 가질 수 없다.
이제 영화가 제시한 구체적 시간과 장소를 지울 때이다. 한파와 얼음비(아이스스톰)는 겨울이면 또 오고 실수는 반복된다. 우리는 그래서 이 겨울비의 한기를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또 한 아이의 죽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 내면 속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기 전에. 우리는 내 곁의 가족과 무엇을 공유할 수 있을지 그것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