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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바람 Jan 06. 2025

추울 때 보면 더 추워지는 영화 네 번째!

<다큐> 세상 끝과의 조우

베르너 헤어조크(Werner Herzog)가 떠나는

남극으로의 여행.


1. 단순한 호기심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은 어느 날 전문 잠수부인 자신의 친구 헨리 카이저(Henry Kaiser)가 촬영한 남극 로스 해 (Ross sea) 아래 빙하 영상을 보고 남극 대륙에 가고 싶어 진다.

이 영화를 연출하고 내레이션도 맡은 그는 1970년대 이른바 새로운 독일영화를 이끌었던 가장 독창적이면서도 '괴짜(eccentric)'감독이었다. 정상인이 생각하지 못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 혹은 사회의 부적응자가 보통 그의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 유형이다. (시네 21 감독소개글 일부)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한 이 영화는 2가지 큰 흐름을 가지는데 한 가지는 감독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여기 '세상의 끝'에 어떤 연유로 오게 되었는지 인터뷰를 하는 것이고, 또 한 가지는 장엄한 남극의 자연을 보여주는 것이다.

2. 전문적인 몽상가들
- 낭만성과 비극

"우리가 어떻게 세상의 끝에서 만나게 된 걸까요?"

- "지도와 가장자리에서 뛰어내릴 작정을 하는 사람이라면 지도상의 모든 선이 수렴되는 이곳에서 만나는 건 당연합니다."

남극에서 배관공으로 일하는 특이한 손가락과 갈비뼈를 가진 아즈텍의 후손, 전직 은행원이었던 대형버스 기사, 요리사로 일하는 전직 영화제작자(자신이 개발한 아이스크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쓰레기차를 타고 전 세계를 탐험하던 전직 여행가. 그리고 남극의 생명체들과 빙하를 연구하는 과학자들. 한 과학자는 한 밤에 듣는 바다표범 소리가 마치 핑크 플로이드의 노랫소리처럼 들린다고 한다

'전문적인 몽상가들(professional dreamers)'은 꿈을 꾸는데 전문가란 이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게 맞을지도?) 그들은 모두 한 분야의 전문가들이며 각자의 이유로 남극에 매료되어 머무르고 있다. 마치 불나방이
빛에 이끌리듯 남극에 모인 이들은 처음엔 자신과 같은 종족을 만난 기쁨에 뛸 듯이 기뻤다고 고백한다. 이 영화를 찍는 감독 또한 피사체인 이 인물들에게 점점 애정을 느끼고 '너도 나와 같구나!' 하는 공감과 친밀감을 느끼는 것이 화면 너머 전해진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사람은 식물을 키우는 언어학자이다.  그는 "언어학자가 언어가 존재하지 않는 대륙에 있으니 정말 근사하죠."라며 몽상가라라는 걸 고백하고 세상의 90%의 언어가 사멸될 것이라며 걱정한다. 감독은 아마 이 대목에서 자신 또한 영화의 '언어'를 구사하는 필름메이커(film maker)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도 사멸해 가는 혹은 이미 사멸해 버린 어떤 것을 생각했는지 모른다.

이 영화 속 비극은 언어의 '사멸'처럼 모든 것들이 사라짐의 위기에 있다는 것이다. 이 거대한 지구조차도.

3. 자연의 경이로움 너머에 있는 것

<세상 끝과의 조우>는 비단 남극이 가지는 자연, 과학적 의미뿐만 아니라,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사회와 문화에 대한 연구까지 들어있는 인류학적 리포트이다. 세상의 끝에서 그는 지구의 환경문제뿐만 아니라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이 작품에서 언급하는 자연은 경이로움을 너머 사색적이다. 이 감독의 또 다른 다큐인 '그리즐리 맨'의 주인공이 순진하고 맹목적인 사랑으로 자연의 무자비함에 사라졌다면, 남극의 '전문적인 몽상가'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자연을 사색하며 걱정에 차 있다.

화산연구가는 화산이 분출할 때 조심해야 할 점을 알려준다. 그는 화산이 활동을 시작하면 반드시 분화구 쪽으로 시선을 향해야만 한다고 조언한다. 화산재가 이리저리로 날아다니기 때문에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어야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옆으로 피하되 결코 뒤로 돌아서지 말 것, 그의 충고는 과학적인 견해이지만 은유적으로 느껴진다.


남극에 대한 많은 연구가 있지만, 남극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연구는 별로 없을 것이다. <세상 끝과의 조우>는 각종 연구가들 뿐만 아니라 여행가나 인권운동가 등 남극으로 모여든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찾아간다. 원래는 철학교수였다는 운전기사, 노래하고 춤추며 사람들과 즐거움을 공유하는 예술가, 추운 극지방에서 꽃을 피우는 원예연구가 등, 남극은 그들에게 하나의 도전이며 안식이고, 피난처이며 동시에 희망의 장소이다.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은 때로는 가깝게 때로는 멀리 시선을 두며 남극을 새롭게 조망한다. 거대한 자연이 주는 경이감, 그리고 일상에서 벗어난 괴짜들이 자신들만의 일상을 만들어가는 모습은 거꾸로 재난 스펙터클 영화들이 주는 공포가 얼마나 허구적인 것인가를 느끼게 한다. 부감쇼트로 거대한 자연의 힘을 부각해 공포감을 자아내는 할리우드 산 재난영화들과 이 다큐를 비교해 보면 헤어조크의 자연관 아니 인간관이 어떤지를 더 명확히 알 수 있다.

한 펭귄 연구가가 말하길, 더러 방향감각을 잃고 무리와 떨어져 혼자서 어디론가 향하는 펭귄이 있다고 한다. 이 펭귄은 다시 무리에 돌려놓아도 다시금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난단다. 인간은 그저 지켜볼 수는 있지만 그 앞을 막아서면 안 된다고 한다.

주류, 거대집단 혹은 보통과 상식 그 길에서 벗어나 스스로 괴짜임을 고백하는 사람들. 감독을 포함하여 그들은 위 펭귄과 꼭 닮았다. 길을 잃은 펭귄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남극에 오게 된 사람들의 자화상처럼 보인다. 그것은 자연에 매혹된 것이 아니라 집단에서 벗어나 나 홀로 온전히 누군가와(혹은 무언가와) 교감하고픈 욕망에 매혹된 것처럼 보인다.


스크린너머 관객과 교감하고픈 감독의 전령처럼 보이기도...



추울 때 보면 더 추워지는 영화 네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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