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토리아 데 시카 감독의 <자전거도둑>은 많은 이들이 걸작이라 칭하는 작품이며 네오리얼리즘의 초석을 다진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이렇다.
2차 대전 이후 로마, 빈곤한 안토니오 리치(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라스트 네임은 리치이다.)는 어렵사리 포스터를 붙이는 일자리를 구하지만 자전거가 없어 전전긍긍한다. 부인이 전당포에 침대보 6개를 팔아 자전거를 겨우 구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마냥 행복해한다. 아들 부르노는 아침부터 아버지의 자전거를 닦으며 그 행복의 대열에 참여한다. 리치는 어설픈 동작으로 커다란 영화포스터 부치는 일을 시작한다.(이때 리타 헤이워드의 커다란 초상화는 할리우드의 판타지 세계와 네오리얼리즘의 일상적 세계를 아이러니하게 대조시킨다.) 그러나 일을 하던 첫날, 순식간에 자전거를 도둑맞고 만다.
위에서 보듯 이 영화의 스토리는 사실 너무 직설적이어서 하나의 드라마라기보다는 사회비판을 담은 우화처럼 보인다. 사실 이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 마르크스주의 사상(사회주의)이 담긴 우화로 간주되었다고 한다.(시나리오작가 자바티니는 이탈리아 공산당 당원이었다고 한다.) 물론 그렇게 볼 여지가 많은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이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빈부에 의한 계급차이, 빈곤과 범죄의 연쇄 고리 그리고 전적으로 경제적 필요에 따라 행동해야만 하는 아버지 등. 하지만 이 영화의 가치는 그런 정치적 이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단순 명료하지만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그 정서적 힘에 있다.
아버지는 가족을 사랑하고 가족을 안전하게 부양하려 하지만, 사회는 그것을 어렵게 만들고 좌절시키기도 한다. 이런 가치와 정서는 시대를 거쳐 켄 로치 감독의 ‘레이닝 스톤’과 마지드 마지디 Majid Majidi의 '참새들의 합창'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이 세 영화에서 관객의 마음을 끌어오는 건 과장되지 않은 영화 속 현실의 힘이며 꾸미지 않은 배우의 연기이다. 극적인 클로즈업과 극단적인 앵글을 자제하고 대부분 눈높이에서 롱 쇼트로 잡아낸 화면, 시간순의 쇼트배열(편집), 단선적인 플롯, 무심히 배우를 따라가는 카메라. 사람의 마음을 이끄는 힘은 바로 영화적 기교나 테크놀로지가 아닌 현실에서 비롯된다는 정신이 느껴지는 점이다.
또 한 가지 이 영화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주인공이 이동해 가는 장소이다. 리치는 처음엔 인력시장에서 일자리를 구하고(철저히 경제원칙에 팔려가는 사람들), 그다음엔 전당포에서 침대보를 맡기고(교환가치로 값어치가 매겨지는 물건), 그리고 영화 포스터(자본주의의 판타지)를 부치고 자전거를 찾기 위해 자전거를 파는 시장(역시 물물거래가 이루어지는 장소)을 뒤지고, 교회(무료급식소 역할을 하는 장소)를 지나, 사창가(여성의 몸마저 돈으로 환산되는 곳)에서 도둑을 잡는다. 이렇듯 주인공이 이동해 가는 장소는 물질과 자본이 사람의 가치와 신분을 결정하는 곳이다. 장소의 이동은 사건을 발생시키고 관객의 긴장감을 자아낸다. 그리고 이 장소들은 일상적 풍경을 담고 있는 듯 보이지만 동시에 상징적이다. 물질이 정신을 대신하고 사람의 가치를 노동력으로 평가받는 곳! 종교적 믿음보다 한 끼 식사해결이 더 중요해진 곳.
이곳에서 주인공 리치는 내일의 희망인 ‘자전거’를 찾으려 하지만 그 희망조차 훔쳐야 하는 신세가 된다. 도둑이 된 아비의 모습을 목도하는 아들의 시선은 구슬프기 그지없고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아들의 손을 꼭 잡고 무표정한 채 거리를 걷는 주인공의 마지막 모습은 단순한 안타까움을 넘어 가슴 먹먹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이것은 사회의 문제를 일상적 풍경을 통해 환유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이기도 하며, 주인공 앞에 놓인 희망 없는 막연한 시간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바로 마지막 클로즈업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