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하드 Die Hard, 1988
어느새 한 해의 끝에서
어느새 한 해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12월. 창밖에는 올해의 첫눈이 소복이 쌓여 앉고, 커피 향의 고소한 내음이 스민 거실에서 나는 문득 이 평온이 오래도록 깨지지 않길 바란다. 연말의 공기는 이상하리만큼 사람을 부드럽게 한다. 사소한 숨결에도 온기가 묻어나고, 평범한 하루마저 특별한 선물로 포장되는 계절. 잠시나마 세상이 속도를 늦추며 우리에게 쉬어갈 틈을 내주는 듯하다.
하지만 나는 이 평온의 표면이 얼마나 매끄럽고 위태로운지 그 아래에 얼마나 촘촘한 긴장이 흐르고 있는지 이미 알고 있다. 세상이 팬데믹으로 얼어붙던 3년 전 크리스마스 시즌, 밀린 월세를 벌기 위해 나섰던 오토바이는 눈 덮인 도로 위에서 순식간에 미끄러져 나를 바닥으로 내던졌다. 찢어지듯 울리던 마찰음, 사방으로 흩어지던 배달 음식, 눈과 아스팔트가 동시에 스며들던 차가운 통증, 그리고 어둠 속에 퍼져 나가던 나의 비명. 모든 감각이 낯설어지는 그 순간은 내가 믿던 세계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경험이기도 했다.
몸의 고통이나 추위보다 더 깊게 파고든 것은 서러움이었다. 연말의 환희 속에서 나만 축제의 가장자리로 밀려나 혼자 남은 듯한 기분. 응급실의 새벽 공기는 따뜻한 크리스마스와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고, 몸에 연결된 기계음은 내가 어딘가로 밀려나는 신호처럼 들렸다. 그날 나는 알았다. 우리가 당연히 누린다고 생각했던 평온은 사실 누군가가 자신의 평온을 잠시 내려놓고 지켜낸 결과라는 것을. 누군가의 밤샘, 누군가의 용기, 누군가의 희생이 모여 만들어낸 얇고 투명한 막이었다는 것을.
그래서일까. 그 이후로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어김없이 한 사람이 떠오른다. 바로 영화 <다이하드>의 주인공, 존 맥클레인이다.
평범한 얼굴의 영웅이 선택한 책임
영화 <다이하드>는 흔히 알고 있는 영웅 서사를 살짝 비틀어, 동네 어디에서나 마주칠 법한 평범한 중년 남자를 조용히 주인공 자리로 밀어 올린 작품이다. 뉴욕 경찰 존 맥클레인(브루스 윌리스)은 누구나 떠올릴 초인적 전사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삶의 여러 모서리에 부딪혀 조금은 지친 직장인이며, 아내와의 관계가 어긋나 마음 한쪽이 늘 서늘한 아버지이다.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기 위해 로스앤젤레스로 향한 그는 공항에 도착한 순간부터 홀리와의 재회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속으로만 수십 번 되뇌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카토미 빌딩에서 벌어진 테러 상황은 그의 가장 개인적인 고민을 단숨에 지워버린다. 불행은 언제나 예정에 없고, 위기는 늘 일상의 틈새에서 불쑥 고개를 들며, 이 모든 상황 앞에서 그는 단 한 번 더 숨을 고르지만 곧 결심한다. ‘지금 내가 물러서면 누군가 대신 죽는다.’
그는 충분히 도망칠 수도 있었다. 아무도 그를 탓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뒤돌아 서지 않았다.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존 맥클레인은 ‘영웅’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책임을 선택한 것이다.
영화 속에서 그는 늘 완벽의 반대편에 서 있다. 유리 파편 위를 맨발로 내딛으며 이를 악물고, 차가운 환풍구의 어둠 속을 엉금엉금 기어가고, 옥상 난간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외줄처럼 붙잡고 버틸 때조차 그는 흔들린다. 투덜대기도 하고, 절망에 가까운 독백을 쏟아내기도 하고, 눈앞이 캄캄해지는 순간에 잠시 주저앉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는 다시 일어선다. 그의 용기는 천둥처럼 웅장한 것이 아니라 미세한 떨림을 품은 작은 숨들로 이루어져 있다.
관객이 그에게 마음을 내어주는 이유 또한 바로 그 지점이다. 존 맥클레인은 ‘선택받은 영웅’이 아니라 우리처럼 모난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이다. 단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겠다는 의지 하나로 버티는 사람. 연말의 혼란 속에서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묵묵히 떠안는 사람.
그리고 그런 얼굴을 한 영웅은 영화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 계절을 지나는 우리 곁에도 대단한 듯 보이지 않지만 조용히 책임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눈에 띄지 않지만 세상을 떠받치는 사람들
연말은 보통 한 해를 차분히 갈무리하고 서로의 수고를 어루만지는 시기이다. 거리마다 반짝이는 장식과 캐럴이 흘러나오고, 사람들은 작은 선물 하나에도 마음을 담아 건넨다. 하지만 이 따뜻한 풍경의 이면에는 늘 보이지 않는 균열이 생긴다. 축제의 빛이 강해질수록 그림자도 더 또렷해지는 법이다. 연말은 평화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실은 갈등과 사건이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계절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따뜻한 실내에서 가족과 식사를 나누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혹한의 새벽 공기를 가르며 순찰을 돈다. 어떤 이는 포장지를 고르며 연말의 설렘을 느끼지만, 다른 이는 구조 요청에 응답하기 위해 심장을 조이며 구급차의 사이렌을 울린다. 눈보라가 밀려오는 밤에도 폭력 신고가 들어오면 망설임 없이 문을 두드리는 경찰관이 있고, 불길 속으로 자신의 체온을 밀어 넣는 소방관이 있다. 누구의 연말은 환하고 누구의 연말은 차가운지, 우리는 대부분 알지 못한 채 각자의 자리에서 조용히 하루를 마무리할 뿐이다.
영화 속 테러리스트는 허구의 인물일지 모르지만 현실의 위협은 훨씬 더 빈번하고, 더 은밀하며, 때로는 더 잔인하다. 삶을 흔드는 균열은 영화처럼 요란한 폭발음을 내지 않는다. 대신 아주 조용히, 그러나 깊고 빠르게 스며들어 우리 일상의 바닥을 흔든다. 그리고 이 균열을 틀어막고 다시 봉합하는 이들은 언제나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다. 누군가의 경계심, 한밤의 출동, 서늘한 골목을 지키는 발걸음 하나가 우리가 누리는 평온의 조건이 된다.
나는 가끔 그들을 마음속에서 ‘우리 곁의 맥클레인들’이라고 부른다. 드라마틱한 조명도, 박수소리도 없지만 세상의 위태로운 틈을 묵묵히 붙잡고 있는 사람들. 그들이 움직이는 순간, 세계는 소리 없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 조용한 움직임이야말로 우리가 연말의 평온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떠받치고 있는 진짜 힘이다.
연말이 따뜻해지는 순간들
3년 전, 차가운 도로 위에 힘없이 쓰러져 있던 나에게 가장 먼저 다가온 사람은 연말에도 쉬지 못하고 밤새 일하던 대리운전기사였다. 그는 망설임보다 빠른 손길로 나의 팔을 붙잡아 일으켰고, 곧이어 도착한 구급대원과 경찰관들은 자신의 연말을 기꺼이 내어주듯 분주하게 움직였다. 한참 뒤 정신을 가다듬은 나에게 그들은 담담하게 물었다. “제 말 들리세요? 곧 병원으로 가실 거예요.” 그 말은 어쩐지 바람 한 점 없이 가라앉은 호수 같아서 들리는 순간 오히려 더 큰 울림으로 가슴 안쪽을 밀고 들어왔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누군가의 ‘당연함’이 얼마나 거대한 선의 위에 서 있는지 알게 되었다.
내가 <다이하드>를 크리스마스 영화로 유난히 아끼는 이유도 비슷하다. 그 영화는 단순히 악인을 쓰러뜨리고 가족이 재회하는 이야기의 외피를 넘어선다. 평온이라는 것이 얼마나 쉽게 균열되는지 그리고 그 틈을 메우는 건 우리가 이름조차 모르는 어떤 사람의 용기와 책임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우리는 그들을 거의 기억하지 않지만 그들은 늘 우리보다 먼저 칼바람 속으로 뛰어든다.
오늘 밤, 나는 커피잔을 감싸 쥔 손끝에서 번져오는 온기를 천천히 더듬는다. 그 온기 뒤편에는 혹한의 밤거리를 순찰하며 사람들의 평온을 대신 지키는 경찰관이 있고, 구조의 몇 초를 놓치지 않기 위해 눈꺼풀을 억지로 치켜뜬 채 대기하는 의료진이 있으며 타인의 위험을 자기 몸으로 막기 위해 불길 속으로 들어가는 소방관이 있다. 그리고 오늘도 어디선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조용한 도움을 내밀고 있을 ‘선의의 손길’이 있을 것이다.
그들의 존재를 마음 깊은 곳에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연말의 공기는 살짝 더 따뜻해진다. 평온은 결코 우연히 우리 곁에 머무는 선물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연말을 반납한 채 익명의 자리에서 누군가를 지켜주는 수많은 손길 위에 우리가 누리는 안전과 온기가 조용히 놓여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기억하는 마음이야말로 연말을 진짜로 따뜻하게 만드는 첫 번째 불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