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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바람 Dec 23. 2024

버스터 키튼은 왜 위대한가?

- 영화는 실재하는 것이며 허상이 아니다.


1. 그의 얼굴
- 평온함과 천연덕스러움

버스터 키튼은 일명 돌 같은 무표정(Great Stone Face)으로 유명하다. 그는 건물이 무너져도 폭풍에 휩쓸려도 물에 빠져 죽을 뻔하더라도 특유의  무표정을 유지한다. 마치 가면처럼 기능하는 그의 얼굴은 같은 무표정이라도 앞선 이미지와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며 관객의 상상력에 따라 다르게 기능한다. 연기는 얼굴이 아니라 눈이라는 그의 표현대로 그의 얼굴은 최소의 표현으로 최대의 효과를 낳는다.

그래서 어떤 이는 그의 무표정에서 난관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애쓰는 낙관성을, 또 누군가는 늘 쫓기고 곤란에 처하는 비애를 또 다른 누군가는 덩치 큰 상대와 수많은 인파에 쫓겨도 겁먹지 않는 남성다움을 읽어낸다.

보통의 무표정이 상대의 감정을 헤아리기 어려워 보는 이로 하여금 불안감을 야기하며 거리감을 선사하는 데 반해 버스터 키튼의 얼굴은 보는 이로 하여금 페이소스와 감성을 회피하게끔 만들며 위급한 상황 속 최소의 반응으로 하나의 긴장감과 서스펜스를 만들어낸다.

채플린이 클로즈업된 표정으로 방랑자라는 캐릭터에 동정심을 느끼게 만들며  관객을 동일시시키는데 반해 버스터 키튼은 시종일광 무표정을 유지하며 와일드 샷으로 그의 신체 움직임과 주변 상황에 집중하게끔 만든다.
이것은 예전 그의 이력과도 관계가 깊다. 보드빌에서 겨우 3살 무렵부터 무대에 배우로 오른 그는, 쇼의 일환으로 무대 주변 오케스트라석으로 내동댕이 쳐져 큰북을 뚫고 나왔다. 그때 그가 아무렇지 않게 손을 흔들 때 관객들은 환호했다. 아픔을 참고 감정을 최소한으로 드러내며 오직 퍼포먼스의 성공에 집중하는 것, 그것은 키튼에게는 생활 아니 생존 그 자체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무표정은 또한 역설적으로 관객을 안심시킨다. 영화적 서스펜스는 주되 관객들을 겁주지 않는다. 그것은 그의 위험천만한 스턴트가 오락적 행위로 소비될 수 있게 한다. 조커의 얼굴과 그의 얼굴을 비교해 보자. 억지로 미소진 얼굴은 광기와 기묘한 공포를 자아낸다. 허나 그의 얼굴은 순진무구함에 가깝다.

저서 '말 없는 광대들'(The Silent Clowns)로 유명한 미국의 저술가 월터 커(Walter Kerr)는 키튼의 감정의 평온함에 대해 이렇게 썼다. 보편적인 평온함은 제대로 작동하는 사물들에서, 그것들이 달성해 낸 조화에서 비롯된다.

버스터 키튼의 무표정은 마치 하나의 안무처럼 완벽하게 조율된 그의 퍼포먼스를 완성해 내는 마침표와 같다.


2. 공학적 아이디어와 추격신
 - 코미디는 타이밍이고 액션은 리듬감이다.

그는 무대 위에서 불가능한 것들을 영화적 쇼트 안에서 행하려고 노력했다. 여기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공학적 아이디어를 활용한 코미디이고, 두 번째는 수많은 인원과 자본이 투입된 추격신이다.

우선 첫 번째, 그가 훌륭한 엔지니어이자 테크니션임을 알 수 있는 작품은 1920년 작 '일주일(One Week)'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조립식 집(portable house)은 그 콘셉트자체가 공상과학적이다. 영화 내에서 번호 순서로 조립해야 하는 집은 그의 연적으로 인해 숫자가 바뀌어 버리고 완성한 집은 엉뚱하게 기능한다. 그의 코미디적 위트와 개그가 클라이맥스에 이르는 장면은 열차를 피하려는 장면이다. 폭풍을 피해 온갖 몸개그를 선보인 뒤 어떤 남자가 다가와 집 위치가 그곳이 아니라며 집을 옮기라고 한다. 집을 옮기는 과정 또한 주변장치를 이용한 몸개그와 빛나는 아이디어로 감탄을 자아내지만, 선로 위 열차를 피하려는 장면은 그야말로 영화적이다. 서스펜스의 연속 그리고 관객의 허를 찌르는 서프라이즈! 마지막으로 유머 한 스푼. 다 부서진 집 위에 For sale이라는 푯말을 꽂고 조립설명서를 놓는 장면은 폭소할 수밖에 없다.

집- 집은 움직이는거야.

그 이후 1921년작 The haunted House에서는 계단이 미끄럼틀로 바뀌고, 1922년작 The Electric House에서는 계단이 에스컬레이터로 바뀌며  그의 슬랩스틱 개그가 이어진다.

사실 그는 집뿐만 모든 교통수단을 활용하여 그의 공학적인 아이디어를 쏟아부어 하나의 코미디적인 요소에 넣었다. 그에게 교통수단은 그저 탈 것이 아니라 하나의 등장인물이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때로 이름마저 갖고 있고 (기차는 General, 배는 Damfiano)
주인공을 곤란에 처하게 만들고 서스펜스를 작동시키고 결국 망가지거나 가라앉음으로써 퇴장한다.  

배- 배는 결국 가라앉지만 버스터 키튼 일행은 태연히 살아남는다.

특히 1926년 작 그의 베스트 작품인 The general에서는 그의 아크로바틱 한 움직임과 기차의 기계적 움직임이 마치 하나의 안무처럼 느껴진다. 이 영화에는 무성영화 중 가장 비싼 단일 쇼트가 나오는데 다리가 무너지며 기차가 떨어지는 바로 그 장면이다.

기차- 기차는 그의 최애이며 영화적 이미지 그 자체이다.

최초의 영화는 다른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많이 알려진 바로는 1895년 뤼미에르 형제가 만든 열차의 도착이다. 영화는 기차와 함께 관객에게 처음으로 왔고 버스터 키튼은 기차를 타고 아니 기차라는 영화적 이미지 위에 태워진 채 우리에게 도착한다.  

이 영화의 기막힌 위트는 대포 장면에서 볼 수 있는데, 1924년 작품 '내비게이터 (Naviator)'에서 선보였던 몸개그를 스케일 크게 확장시킨 것이다.

추격신은 그의 또 다른 장기이다. 영화사 적으로 높이 평가받는 장면은 1922년 작 Cops이다. 그는 수많은 경찰들에 쫓기다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는 차를 붙잡고 매달린 채 그야말로 날아간다. 마술적이다라고 할만한 스턴트이다. 수많은 예비신부들(?)에게 쫓기는 1925년작 '일곱 번의 기회(Seven  Chances)'도 빼놓을 수 없다. 허무맹랑한 스토리에 긴장감은 좀 빠지지만 내리막 절벽에서 바위들이 굴러 떨어지는 장면으로 이어지는 시퀀스(sequence)는 과히 만화적이다. 그 외에도  가장 유명한 장면은 1928년작 '스팀보트 빌 주니어 (Steamboat Bill Jr.)'에 나오는데 폭풍우가 몰아지는 대로변에서 버티던 그의 머리 위로 건물벽이 그대로 떨어진다. 그는 우연히도 창문이 열려있는 지점에 정확하게 서있던 덕에 목숨을 건진다. 이 입이 떡 벌어질 스턴트는 리허설 하나 없이 진행되었다. 과히 기막힌 타이밍이라 할 만하다!


3. Beyond Cinema

- 시네마를 너머, 영화 안으로 진입하려는 그의 시도!


버스터 키튼이 시간이 흐를수록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 중 하나는 영화라는 매체 자체에 대한 그의 놀라운 표현에 있다.


1924년작 '셜록 주니어(Sherlock Jr.)'는 하나의 메타 시네마로 그의 영화에 대한 애정과 탐구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이 영화 속 꿈 시퀀스는 그의 마술 같은 스턴트보다 백배 놀랍다. 그 당시 기술적 한계를 딛고 주인공이 스크린 밖에서  스크린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을 수준 높은 시각적 표현력으로 보여준다는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영화의 매체적 특징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더욱 그렇다.


그에게는 은막 속 세계는 허영이 아니며 실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은 '제4의 벽',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가볍게 위반하며 바뀌는 화면 속에서 계속 위험에 처한다. 이 위험은 화면 속 가상이지만 실제 주인공에게 영향을 미친다. 스크린 내에는 계속하여 서스펜스가 흐르고 화면 밖에는 관객이 있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꿈과 현실, 스크린 속 영화와 실제가 조응하며 이루어진다. 영화 내에서 탐정인 셜록이 멋지게 사건을 마무리 짓자 현실 속 오해도 거짓말처럼 풀리며 로맨스에 성공한다. 반대로 이번엔 현실 속 나가 영화 속 탐정을 모방하며 여 주인공과 키스에 성공한다.

즉, 당신(관객)이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느끼는 감응은 거짓이 아니며 현실과 이어지고 실제 한다는 걸 의미한다.


그의 또 다른 메타 영화는 1928년작 '카메라 맨(The Camera man)'이다. 셜록주니어가 스크린을 통해 영화적 매체의 특징을 보여주었다면 이 영화는 카메라라는 요사스러운 물건을 통해 찍는 행위와 그것을 영사하여 보는 관객의 특성을 보여준다.

 #카메라는 진실을 찍는 동시에 왜곡한다.


이 영화는 차이나타운에서 벌어진 긴박한 조직 간의 전쟁 한가운데를 찍는 카메라맨의 슬랩스틱 한 움직임을 통해 이것을 실감 나게 보여준다. 이때 작은 원숭이와 버스터 키튼의 호흡은 과히 경탄할 만하다.



# 관객은 결국 필름에 남아 있는 것을 믿는다.


영화 속 여 주인공은 원숭이가 우연히 작동시킨 카메라에 담긴 영상을 보고서야 진실(?)을 알게 된다. 함께 본 관계자는 '내가 이제껏 본 최고의 카메라 워크야.'라고 외친다. 관객인 그들은 그 장면을 원숭이가 찍었다는 걸 도저히 알 수 없다.


영화 속 마지막 대사는 ' 모두가 당신에 대해 이야기해요. 그들은 당신을 위해 멋진 연회도 준비하고 있어요.'이다.

곧 그는 대중들에게 둘러싸인 채 꽃가루가 휘날린다.


이 대사는 마치 버스터 키튼의 실제 열망처럼 들린다. 이 영화가 몇몇 허술한 점에도 불구하고 끝내 매력적인 건 버스터 키튼의 자기 반영성 때문일 것이다.


Never be forgotten!


사라지지 않을, 잊히지 않을 시네마 아티스트가

바로 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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