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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바람 Dec 27. 2024

추울 때 보면 더 추워지는 영화 첫 번째!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1. 오프닝


이 영화는 검은 화면 위 한 소녀의 대사로 시작한다. 가만히 들어보면 이것은 단순한 내레이션이 아닌 인터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이 이야기가 과거의 것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말한다. 회상이 아닌 현재진행형의 이야기. 단, 하나의 플래시 백 없이 진행되는 이 영화는 우리를 쿠르드 족이 사는 그 생생한 현장 가운데로 가져다 놓는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하지만, 극적인 장치로 관객을 이야기의 세계로 좀 더 쉽게 빠지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이것은 또한 감독이 관객들에게 거는 신호라고도 볼 수 있다.  즉, 귀를 먼저 기울이고 눈을 더 크게 뜨고 보라는 신호 말이다.


 

2. 스토리


이란과 이라크의 오랜 전쟁을 겪으며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진 국경 마을, 바네(Baneh). 어머니가 막내를 낳다 죽고 밀수 길에 나섰던 아버지마저 지뢰를 밟고 목숨을 잃으면서 12살 소년 아윱(Ayoub)은 졸지에 가족들을 책임져야 하는 꼬마 가장이 된다. 아윱은 학교까지 그만두고 돈벌이에 뛰어들지만, 왜소증이라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형 마디(Madi)의 약값을 치르고 나면 여동생 아마네(Amaneh)에게 새 공책을 사다 주기도 빠듯하다. 설상가상 수술을 서두르지 않으면 마디가 몇 개월 못 가 죽게 될 거라는 의사의 진단에, 아윱은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국경을 넘는 밀수꾼들의 심부름꾼이 된다. (DVD 소개 글 참고)



3. 이 영화는 지독한 은유이다.


스토리는 단순하며 카메라는 주인공을 따라 명백하게 정서를 전달한다. 허나 그 여파, 이 영화를 본 이후의 마음을 서술하기란 단순치 않다.


은유로서 하나의 비유담으로서 이 영화는 큰 힘을 가진다. 제목부터 시적인 이 영화는 면도날처럼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맨살을 파고드는 것처럼 하나의 통증처럼 다가와 우리를 무의식의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데려간다. 한겨울 칼바람에 산속에서 떨어본 사람은 안다. 그 참을 수 없는 고통. 추위에 몸이 시리다 못해 아픈 부위를 잘라내고픈 마음. 화상이 보기에 흉한 상처를 남기며 시간이 지나면 통증이 사라지는 데 반해 동상은 평소엔 무감각하며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이지만 찬 바람이 불면 환상통처럼 저릿저릿 통증이 시작된다. 동상과도 같은 삶의 통증.

이것을 이 영화는 일깨운다! 술이라도 마셔야 참아낼 수 있었던 기나긴 밤. 살려달라고 외쳤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던 날의 기억.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내 무의식의 수면 아래에 잠겨 있었던 고통과 불면의 기억을 마주하게 된다.


 얼어 죽지 말라며 말에게 술을 먹이며 짐을 옮기는 쿠르드 족. 이번엔 날씨가 많이 추우니 4병. 그런데 숨어 있던 잠복군이 나타나고, 밀수꾼들은 잠복 군들을 피해 달아나지만 술을 너무 많이 마신 말들은 쓰러져 일어나지 못한다. 주인공 아윱은 ‘날 혼자 두고 가지 마세요.’라고 울부짖는다. 주인공의 고통과 추위와 공포가 파도처럼 우리를 엄습한다. 그때 우리가 관객이 느끼는 것은 무엇인가? 슬픔인가 동정심인가 분노인가 공포인가?


사실 가장 먼저 저항심이 든다. 영화를 이렇게 지독하게 연출한 감독을 탓하며 영화 내내 흘러넘치는 이름 붙이기 힘든 마음 아픈 정서를 목도한 채 ‘저건 연출인가?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반응인가?’ 구별하려 애쓰게 된다. 허나 그건 의미 없는 무력한 행위이며 그 저항 끝에 우리는 그저 주인공과 같은 얼굴을 할 수밖에 없다.


 

‘고독해 본 사람은 안다.

삶이 제 몸속에 제 이빨을 박아 넣는 것이라는 것을

흙벽에 걸린 양파가 제 살 속에

흰 뿌리를 밀어 넣어 푸른 목숨을 부축하는 겨울

빈 들에 눈이 내리고 칼바람이 분다

고독이란 제자리에서 꿈쩍할 수 없는

요지부동의 형벌이어서

적막한 사방을 위리안치의 몸으로 지켜보는 것이어서

앞산 봉우리 잔설에도 눈이 시리다.’


※위리안치: 죄인을 달아나지 못하도록 가시로 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에 가둠.


<주용일 시인의 ‘세한도’>



사실 마음속 저항심은 자연스러운 방어기제일지도 모른다. 이 영화 속 쇼트의 배열은 경제적이고 효과적이며 익숙한 방식으로 관객의 정서를 훔친다. 트럭을 타고 가다 이라크 국경수비대에 걸려 노트를 빼앗기는 장면을 보면 넓은 롱샹으로 하얀 설원의 배경을 먼저 보여준 뒤 트럭이 진입하고 빠른 편집으로 시간의 경과를 표현한다. 그리고 아이들 표정 하나하나를 보여주며 정서적 감응을 높인다. 이것은 엔딩 장면에서도 알 수 있는데, 감독은 눈이 덮여 있는 배경을 위해 1년을 기다렸다 이 장면을 찍었다고 한다. 갑작스러운 점프 쇼트처럼 붙은 엔딩에서 주인공 아윱은 어찌 술 취한 말을 놓치지 않고 끌고 간다. 낮은 철조망을 겨우 넘고 말도 철조망을 넘지만 말 등에 실린 짐은 떨어진다. 프레임 바깥으로 주인공과 말은 사라지고 화면엔 철조망 아래 짐만 덩그러니 남는다. 그때 우리가 느끼는 것은 안도감이나 위로일까? 저 짐의 의미를 생각하며 관객에게 남겨진 마음의 ‘짐’이라고 억지 해석을 갖다 붙일 수도 있을 것이다. 허나 주인공은 모를지 모르지만 관객인 우리는 알고 있으며 쉬이 짐작할 수 있다. 우리의 남은 생이 그러하듯 고통은 쉬이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철조망을 넘어 프레임 밖으로 사라지는 주인공은 우리에게 어떤 위로도 주지 못한다. 되려 불안감을 심어준다.


이 영화는 연출적인 측면에서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영화 ‘자전거 도둑’과 닮아있지만, 또 그 정서는 다르다. 자전거 도둑이 사회비판을 담은 하나의 우화에 가깝다면 이 영화는 아이들의 생생한 표정을 활용한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사실 이 영화에 비유와 상징은 없다.



3. 이 영화는 은유가 아니다.


“인생이라는 놈은 나를 산과 계곡으로 떠돌게 하고 나이 들게 하면서 저승으로 이끄네.”


트럭 화물칸에서 아이들이 부르던 이 노래는 끔찍이 어른스럽고 현실적이다. 비탄스러운 세상에 대한 한탄. 그것을 이 영화는 담고 있다.


이 영화는 11살 때 부모를 잃고 막일을 하면서 가족을 부양해야 했던 바흐만 고바디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로 알려져 있다. 동시에 쿠르드인들의 자전적 영화이기도 하다. 쿠르드 지역에서 촬영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영화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의 조감독으로 작업한 바 있는 33살의 고바디 감독은 이란의 첫 번째 쿠르드 족 출신 감독이다.


영화는 쿠르드 족의 삶의 풍경을 여과 없이 보여주며 영화의 배경이 된 고원 산악지대는 실제로 오랜 이란-이라크의 전쟁으로 피폐해진 지역이다. 영화 속 아윱과 아마네는 실제 친남매이며 실제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다. 감독은 어린아이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통해서 이란과 이라크 간의 오랜 전쟁이 쿠르드 인의 삶을 얼마나 송두리째 파괴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쿠르드인의 역사적 증거이자 살아있는 증언이다.


이 영화의 갈등은 관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혹독한 환경과 운명 그 자체이다. 영화가 순수한 아이들의 고통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것은 어른들의 위선과 사악함을 대비적으로 보여주며 비인간성을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아이들조차 목숨을 걸고 생활의 최전선에 나서야 하는 현실. 그럼에도 공책 한 권 제대로 살 수 없는 극빈 상황, 그 가운데에서 끊임없이 생존에 위협을 받아야 하는 현실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바흐만 감독이 바네 지역의 한 공터에 영사기를 설치하고 영화를 상영했을 때, 소문을 듣고 몰려온 쿠르드족들의 트럭과 트랙터가 무려 300~400대에 이르렀다고 한다. 생전 처음으로 영화를 본 사람들은 스크린에 재현된 자신들의 모습에 열광적인 모습을 보였고, 이후 청소년들의 장래희망 1위는 ‘영화감독’이 되었다고 한다.


다시 엔딩 장면을 말하자면, 우리는 아윱의 계획대로 노새를 좋은 값에 팔고 마디를 수술시켜 무사히 이란으로 돌아갔을 것이라 상상할 수 없다. 이제껏 겪은 견고한 비극적 현실은 어려움이 또다시 되풀이될 것이라는 예감을 갖게 한다.


그들이 희망의 길로 들어갔으면 하는 바람과 이제껏 목도한 비극적 현실 사이에서 우리는 깊은 상념에 빠지고 만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본 이후 마음을 정리하여 서술하기란 여간 쉽지 않다.


추울 때 보면 더 추워지는 영화 첫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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