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울증 7년 차 (25)

슬기로운 정신병원생활 season 2 - 5화(Fin)

by 루이

알코올중독자 G의 음흉한 속내를 알고 난 이후 가뜩이나 지옥 같았던 병원에서 더욱 탈출하고 싶었다. 퇴원을 하기 위해선 보호자가 퇴원을 요청하거나 주치의의 퇴원 진단이 필요했다. 하지만 내겐 둘 다 허락되지 않았다. 묘책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여러 방법으로 탈출(?)을 시도했다.



추운 겨울 로션조차 바르지 못한 나의 피부는 초토화가 되어있었다. 여기저기 각질이 일어나고 아토피 피부염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쓰라림과 가려움으로 인한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입원한 병원에선 피부과 진료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외부에 있는 피부과에서 진료를 받아야 했지만, 보호자의 동행 없이는 외출조차 불가능했다. 나는 부모님께 나의 피부를 사진으로 찍어 보내드리며 당장 퇴원을 시켜달라고 호소했다. 그러자 부모님은 병원에 연락을 했고, 병원 관계자는 병원 내부에 있는 내과에서 진료를 받도록 했다. 결국 내과에서 진료를 받았고, 불행히도(?) 처방받은 약이 생각보다 잘 들어 증상이 아주 많이 호전되었다. 그렇게 나의 첫 번째 탈출 시도는 무산되었다.


이쯤 되면 독자님은 내가 이 병원에 얼마나 많은 악감정이 있는지 알 것이다. 비위생적인 환경, 허술한 환자관리, 인권을 침해하는 듯한 치료방식등 나의 상식선에 존재하는 병원이 아니었다. 나는 병원의 비리(?)를 폭로하고자 지역 보건소와 인건위에 항의전화를 했다. 의사의 과잉진료, 허술한 관리로 인한 주류, 담배 반입, 환자에 대한 차별등 나름 문젯거리가 될 만한 내용들을 폭로했다. 하지만 몇 시간 뒤 나는 감옥과 같은 보호실에 갑자기 들어가게 되었다. 양팔이 구속된 채로 왜 내가 안정실로 가야 하는지 물었다. 하지만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하루쯤 지났을까. 안경을 쓴 늙은 너구리 같은 보호사가 들어왔다. 그리고 본인이 통화 중인 전화기를 건넸다. 한 남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루이 씨, 맞으시죠?"

"네"

"행정실장입니다. 다름이 아니고 보건소랑 인권위에 항의전화하셨더라고요. 왜 그러셨어요?"

"병원에서 나가고 싶어서요."

"그러셨구나. 그렇게 하셔도 퇴원은 절차대로만 진행이 가능해요. 안정실은 많이 답답하시죠?"

"신고해서 보고실에 넣으신 건가요?"

"그렇다기보다 조증 증상 때문에 과도하게 피해망상이 있으신 게 아닌가 싶어서 일단 안정실 조치 취했는데, 항의한 내용들 모두 취소하시면 조치는 풀어드릴게요."


어이가 없었다. 고작 전화 두 통에 보호실이라니! 심지어 신고를 취소하지 않으면 안정실에 감금하겠다는 협박이 어찌 그리 당당한가? 하지만 보건소도, 인권위도 조사 한번 나오지 않고 단순히 병원에 신고되었다는 사실만 통보할 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나는 상급기관에 신고하면 큰 사단이 벌어질 것이고, 그로 인해 병원에서 탈출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보건소도, 인권위도 하는 일이 많은 아주 바쁜 곳이라는 것을 이 날 이후로 알게 되었다.


결국 나는 안정실을 나가기 위해 신고를 취소했고, 그렇게 두 번째 탈출 시도 또한 물 건너갔다.


두 번의 탈출시도가 실패하고 망연자실해하고 있을 때, 알코올중독자 G는 마지막으로 부모님에게 연락해 볼 것을 권했다. 병세가 많이 좋아졌으니 더 이상 불편한 병원에서 지내고 싶지 않다고 강력하게 어필하라고 했고, 가족이 강력하게 퇴원을 요구하면 주치의도 어쩔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지푸라기라고 잡는 심정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최대한 불쌍한 척하며 병원에서의 생활이 너무 힘들다고 퇴원을 시켜달라고 호소했다. 지난번 피부염 사진을 보고 마음이 약해진 엄마는 아빠를 설득해 보겠다고 했다. 다음날 아빠에게 연락이 왔고 혼신의 힘을 다한 나의 정상인(?) 연기로 퇴원을 약속받게 되었다. (이때까지도 미비한 증상들을 있었지만 정상인 코스프레를 하기엔 충분했다.)


며칠 뒤 부모님이 오셨고, 대표원장에게 마지막으로 진료를 받았다. 그녀는 부모님께 아직은 입원이 더 필요하다는 식으로 얘기했다. 부모님은 다시금 전문가의 말을 들으니 고심하기 시작했다. 순간 지금 내가 나서지 않으면 이 지긋한 감옥병원생활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나는 아주 차분하게 병세가 전혀 느껴 지지 않을 듯한 말투로 얘기했다.


"원장님, 저 병식도 다시 충분히 생겼고, 혹시나 다른 이상증상이 생긴다면 제 발로 직접 입원할게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마무리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너무나 호전된 듯한 모습에 대표원장도 퇴원요청을 수락했다. 그리고 다음 외래진료를 잡고 진료실을 나왔다. (당연한 얘기지만 외래진료는 원래 다니던 병원으로 다니고 있다.) 부모님과 병원에서 나왔을 때, 하늘에는 구름이 조금 끼어있었다. 신기하게도 병원을 나온 순간 나의 권능은 모두 사라졌다. 조증으로 인한 망상에서 해방된 것이다. 그렇게 끔찍하지만 임팩트 있던 3번째 정신병원생활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자 이제 조증이 끝났으니 우울증이 올 차례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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