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아빠: 어릴 적 엄마는 내게 보물 같은 존재였어. 그런 엄마에게 나도 보물 같은 아들이 되고 싶었어. 빨리 어른이 되고 부자가 되어 평생 돈 걱정 없이 살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어쩌면 그때 사랑하는 사람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 주겠다는 의지의 씨앗이 뿌려졌을지도 모르겠다… 현실 속에선 동네 여느 개구쟁이들과 똑같았지만…
가난한 아들: 돌아가신 할머니… 많이 그리우신 가 봐요….
부자아빠: 그래………………………..
‘술래잡기 고무줄놀이 말뚝 박기 망까지 말 타기 놀다 보면 하루는 너무나 짧아…
동요 가사 속 놀이들은 어린 시절 동네 마당에 널려 있는 ‘보물’ 같았지.
어느 날 신발주머니 하나 가득 구슬을 땄다.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것 같았다. 우리는 먼지 뽀얀 공터에서 그렇게 놀았다. 해가 뉘엿뉘엿 뚝 방 끝에 걸린다.
“빨리 와서 밥 먹어야지!”
‘앗, 엄마가 부른다.’ 뽀얀 먼지를 털고 집으로 달려간다.
봄날 저녁, 엄마가 무쳐준 향긋한 냉이 나물, 냉잇국에 밥 한 그릇 뚝딱 해치운다. (그 맛 그 향이 그립다. 딱지나 구슬을 많이 잃은 날이면 엄마의 봄나물로 위안을 삼았었는데…)
겨울 초입, 엄마가 한 뜸 한 뜸 정성스레 뜨개질 중이다. 엄마가 만들어준 벙어리장갑과 진한 청색 스웨터 그리고 청색 털모자로 나는 파란 아이가 된다. (온통 파래서 창피하다고 투정 부렸었는데…)
미나리
어릴 적, 봄 하면 떠 오르는 달래, 냉이, 씀바귀, 그리고 엄마. 그중에 으뜸은 당연히 엄마였고 그다음은 냉이였다. 씀바귀는 이름처럼 너무 써서 싫었고, 다래 나물의 매력을 그때는 몰랐다. 냉이의 그 향긋함과 감칠맛은 생각 만으로도 입에 침이 고이고 저절로 엄마 얼굴이 떠오른다.
영화 미나리의 감독도 그랬나 보다.
어릴 적, 미나리나물을 떠 올리면 엄마의 엄마인 할머니가 떠올랐을 것이고 엄마가 보였을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엄마 랑 할머니가 그리웠다. 여주인공이 부른 잔잔한 영화 주제가는 엄마와 할머니가 있던 시절로 나를 데려다주었다.
미나리와 냉이로 촉발된 엄마,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이민자로서는 어쩔 수 없는 고향의 향수… 그렇게 영화 <미나리>가 내 가슴속에 들어왔다.
부자아빠: 아 참 어릴 적 빼놓을 수 없는 놀이 가 또 하나 있지… 왜 최근에 넷플렉스에서 본….
가난한 아들: …………………?
같은듯다른오징어
흙바닥에 커다란 오징어 한 마리 그려 놓고 한참을 신나게 놀았었지. 놀이에서 지거나 죽어도 다시 할 수 있으니 아무 걱정 없고….
어른이 되어 본 오징어 게임은 달랐다.
한 번이라도 실수하거나 상대에게 밀리는 날에는 영원히 아웃되는 냉정한 생존 게임이었지. 동그라미 세모 네모 문양이 그려진 검정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사람들은 세련된 저승사자 같았다. 그들이 핏빛 빨간 후드를 두른 채 아무 감정 없이 감시하는 가운데 500명 가까운 젊은이와 노인이 겁에 질려 생존을 위해 경쟁을 해야 하는…
돈을 위해 참여를 결정한 사람들, 게임에 지면 목숨을 걸어야 하기에 아무도 그 게임을 즐길 수 없다. 소소한 즐거움은커녕 걱정과 두려움에 떨어야만 한다.
어릴 적 놀이가 냉혹한 생존게임이 되어 돌아왔고 세계 많은 사람들의 반향을 일으켰다. 묘한 감정이 든다.
돈 때문에 가장 소중한 무언가를 잃을 수 있는 차가운 현실, 그런 줄 알면서도 피할 수 없는 기막힌 운명 앞에 많은 사람들이 동감하고 공감했다는 사실에 묘한 여운이 가슴에 맴돈다. 오징어게임의 놀라운 흥행에 진정한 승자가 제작 감독이 아니라 거대 자본의 플랫폼 사업자라는 것 또한 우리 사는 세상의 생존 룰을 적나라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돈 놓고 돈 먹는 세상. (그런 곳에 걱정 놓고 돈 먹는 환전소를 차렸으니… 사람들은 나를 그저 시골 장터 야바위꾼으로 보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