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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희 Apr 21. 2024

삶을 지탱시키는 언어- 다 괜찮아.

- 행복한 삶만 가치 있는 삶은 아니다.

 봄이 무르익어 곧 여름이 올 것 같은 계절의 풍경은 어디를 봐도 수채화 같다. 새로 돋은 이파리들이 하루가 다르게 짙어지며 몸집을 키우고 풍선처럼 부푸는 나무가 곧 하늘로 날아갈 듯 가볍고 경쾌하다. 덕분에 요즘엔 푹푹 꺼지던 몸에 덩달아 생기가 돌아 모처럼 기분도 밝아지는 느낌이다.

 출퇴근길. 흰색 SUV 제네시스가 보이면 유심히 관찰한다. 왜 남편은 돈 벌면 내게 저 차를 사준다고 할까. 주행거리 이십만 킬로미터를 훌쩍 넘은 내 차에 딱히 불만이 있지도 않고 차를 바꾸고 싶다고 말한 적도 없는데, 남편은  SUV 흰색 제네시스를 볼 때마다 저 차를 사주고 싶다고 한다. 습관처럼.

 사실 차보다 집을 바꾸고 싶었다. 삼인 삼색 식구가 거주하는 우리 집은 서로 사이좋게 지내기 위해 필요한 적정거리를 유지하며 살기엔 너무 비좁다. 그래도 하나인 딸이 눈물까지 보이며 이사 가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다면, 남편이 직장 그만두고 사업 시작하며 가세가 급격히 기울지 않았다면 이사가 그리 간절하진 않았을 거다. 불가능한 꿈이 더 간절한 법. 그런 종류의 꿈은 체념을 동반한 슬픔까지 덤으로 얹어주게 마련이다.

 생전 복권이라고는 쳐다보지도 않던 남편이 로또를 사기 시작했을 땐, 핀잔을 줬다. 돈 갖다 버리지 말라고. 기대수명 백세시대라는데 남자 나이 오십 넘어가면 사무실 책상에 딱 붙어있고 싶어도 자리 압박을 받게 마련. 원래 가진 거 없는 집안에서 태어나 비빌 데도 없으니, 위태위태한 인생에 붙잡을 거라곤 로또밖에 없는 남편 인생도 한 편으론 불쌍하다 싶었다. 옷가지 여남은 개로 사시사철을 보내며 요즘같이 공산품이 쏟아지는 시대에 말 그대로 구두 밑창이 닳아 뚫릴 때까지 신는 검소한 사람에게 남은 거라곤 하얗게 센 머리에 굽은 등. 낡아서 여기저기 해지고 무릎이 튀어나온 남편의 추리닝 바지가 성실한 노동으로 닳아버린 남편 모습처럼 느껴져 때로 애잔했다.

 젊은 날엔 삶이란 개미처럼 성실하기만 하면 수월하게 흘러갈 줄 알았다. 어디든 운 나쁜 사람은 있게 마련이지만 ‘불운’, ‘불행’은 나와 큰 상관없다 느꼈고, 나이가 들면 오히려 걱정거리가 점점 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며 내 삶도 내 마음대로 어찌할 수 없다는 건 삶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며, 그나마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건 내 마음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마저도 수시로 무너지는 마음을 다잡으려 무진 애를 쓰지 않으면 마음마저 내 맘대로 안 되는 일도 부지기수. 아무리 애태운들 아이는 개의치 않고 내가 전혀 예상치 못한 인생 궤도를 그리며 나의 무력함을 수없이 확인시켰고 고전을 면치 못하는 사업에 모래성처럼 쉬이 허물어질 것 같은 남편의 삶을 붙들어준 건 매일 마시는 술이었다. 삶은, 지옥이었다.

 나의 삶이 나의 통제에서 벗어나 제멋대로 흘러가는 걸 지켜보며 살다 보면 아무 잘못 없이도 뒤통수를 얻어맞고 때론 더한 일도 겪을 수 있다는 걸 배웠다. 오늘은 어제의 결과에 불과하다며 인과관계를 유난히 강조하던 젊은 날의 내가 부끄러웠다. 복권가게에 줄지어 선 나이 들고 초라한 노인들, 차도에서 리어카에 폐지를 싣고 가며 주행을 방해하는 노인들을 보며 그들의 말년은 다만 그들의 젊은 날이 모여 만든 결과라 쉽게 속단했다. 내가 지키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는 알량한 내 일상이란 참으로 얇디얇아 별 것 아닌 훅 부는 바람 한 번에 얼마든 허물어질 수 있다는 불안과 두려움이 생생한 질감을 갖추고 나서야, 삶은 본디 받아들이는 것 외에 뾰족한 수가 없다는 걸, 안타깝고 아프지만 인정해야 했다.  

 비오는 토요일. 동생과 조카. 그리고 딸과 동네 소극장을 찾았다. 젊은 예술가들의 애환을 다룬 연극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일구며 행복하게 살자며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했고, 아마도 조카처럼 삶의 애환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놓지 말아야지, 가슴 속에 고운 희망의 불씨를 지피며 몽글몽글 데워진 마음을 고이 품고 달뜬 마음으로 새 날을 기약한 많은 사람들이 코를 훌쩍였을 것이다. 착한 동생은 지하에 자리 잡은 열악한 공연장에서 공연 내내 허리며 엉덩이가 아팠다며 그럼에도 열연하며 감동을 선사한 가난한 예술가의 삶을 아파했지만,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굳이 우리가 행복을 노래해야 하는가. 행복한 삶이 우리가 반드시 만들고 지켜야 할 삶인가. 어지간한 운과 노력 없이는 평범한 삶을 지탱하는 것도 보통일은 아닌 현실에서.

 인생의 목표는 행복해지는 거라 여긴 시간이 있었다.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책을 찾아보며 기질적으로 타고한 우울감, 내게 닥친 불운을 극복해보려 했지만 행복감이 느껴지지 않아 자책했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는 부류의 글을 보면 죄책감이 느껴졌다. 나 때문에, 행복하지 못한 엄마 때문에 내 아이가 저리 방황하는 것 같아 없는 행복도 짜내고 싶었다.

 이제야 느끼지만 삶이 빅엿을 날려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을 느끼자고 하는 말은 기형적이다 못해 가혹하다. 일상은 너무도 쉽게 무너지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재수가 없다는 걸 차라리 진작 배웠다면, 오히려 덜 아프고 덜 힘들었을 거다. 애초에 내 것이 될 수 없는 무지개가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푸념하고 절망하며 인생을 허비하는 일도 줄었을 것이다. 인생이란 본래 고된 것이기에 행복과 희망이라는 달콤한 말로 당을 충전하지 않으면 버티기 힘들다 해도 어쩔 수 없다. 행복과 희망 없는 삶이 오히려 일반적이며 그런 삶에는 대개 뾰족한 수도 없다. 그래서 살아가는 삶 자체가 모두 대단하다 느껴진다.

 요즘엔 ‘다 괜찮다’, ‘별 것 아니다’라는 말이 나의 삶을 지탱해준다. 삶에 대해 내가 아는 진실은 우연히 ‘생명’을 얻었듯 아무 때고 갈 수 있다는 것 하나. 내게 나의 삶은 유일무이하다는 것 둘. 슬프면 슬픈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 힘들면 힘든 대로 생이 더 이어진다면, 이왕이면 곁에 있는 사람들과 좋은 삶을 살기 위해 지금, 노력하고 있다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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