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단기가 떨어졌다.
전기를 쓸 수 없다면? 그저 나는 원시인
아이 셋과 여름방학을 보내면서 마당 수영장과 거실 에어컨은 공기와 같은 존재였다.
너무 더운 한낮엔 아이들 물에 넣어놓고 열어도 뜨거운 바람뿐이지만 창문 열어두고 선풍기 한대로 버틸만했고.
4시쯤 거실 에어컨을 작동시켜 집안이 시원해질 때쯤 물에 젖은 아이들을 불러와 씻은 뒤 저녁 내 에어컨 앞에서 밥 먹고 책 읽는 여름일상.
'헉' 소리가 절로 나는 땡볕에서 아주 가끔 쪽방촌에 계시는 이름 모르는 분들을 떠올리거나 갇혀있는 분들의 어려움을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오롯이 그건 지나가듯 하는 걱정일 뿐이었다. 더위를 피하지 못하면 정말 생존과 직결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더위에 취약한 분들을 걱정하는 것보다 그나마 나는 버틸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마음의 지분이 더 컸다. 그러던 차에 누전차단기가 떨어졌다.
1시간째 돌아가던 에어컨의 실내온도가 아직 28도도 안 됐는데 누전차단기가 내려가 버리니 정말 순간적으로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우리 정도면 에어컨 많이 트는 거 아니잖아? 정말 더울 시간 때는 물로 대피해서 잘 버티면서 지냈는데? 등등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억울한 마음이 생겨났지만 원인은 밝히지 못했고 3일을 지내게 되었다. 거실 에어컨 쪽 전기만 켜면 차단기가 떨어지다 보니. 그나마 방에 있는 에어컨 버티던 3일간 정말 내가 얼마나 전기로(나의 생각과는 반대로) 삶을 채우며 살았는지 깨달았다. 최애가전인 세탁기부터(아니 가전제품 치고 전기 안 쓰는 게 있긴 한가?) 식기 세척기, 청소기, 한창 올림픽 중이어서 틀었던 TV.
언제 또 다른 차단기가 내려갈까 불안해서 계속 집을 체크하게 만들었던 숨은(?) 가전 냉장고.
혹시나 추가로 전기가 차단될까 봐 사용시간을 달리하며 쓰다 보니 가사 노동의 현대화라는 건 노동의 주체를 단지 전기에게 위임한 것에 불과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기가 없어지는 순간 나에겐 모든 가사가 말 그대로 맨손으로 해내야 되는 상황이었다.
설거지는 그래도 할만했는데 빨래는 엄두가 안 났다. 아이들 3명이 하루에 벗어놓는 잠옷, 외출복, 수영복만 해도 위아래 3벌씩 9벌이었다. 엄청 발전된 시기를 살고 있다 생각했는데... 단순히 전기를 맘대로 쓸 수 없자 금방 원시주부로 되돌아가는 느낌이었다.
아... 노동의 외주화라는 말이 거창하게만 들리더니...
내가 그걸 하고 있는 터였다. 전기에게 모두. 군말 없이 한다는 이유로, 사람이 아니라 기계라는 이유로. 죄책감 하나 없이 말이다.
차단기가 내려간 건 전기만 끈 게 아니라 아껴 쓰고 있다는. 나는 열심히 한다는 자기 최면도 한 템포 쉬어가게 해 주었다.
전기야 넘 너무 고마워! 너 아니었음 폭염은 정말 생존의 위협이었을 거야. 몸을 더 부지런히 놀리도록 노력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