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 코스모스길도 '별'것인 이유
단일 꽃밭 만들기 중
귀촌을 하면서 그나마 10년은 덜 늙을 수 있었던 건 집을 짓지 않아서일 것이다. 평면도만 보아도 집 계약이 가능한 아파트 생활을 오래 했다면 아마 나만의 집에 대한 로망이 있었을 것이나 그저 이웃 간에 얼굴 붉히지 않고 세 아이들 뛰어노는 것이 1순위였던 터라 가능한 선택지였다. 전 주인의 이유에 맞게 지어진 단독주택이라 조경이나 꽃밭도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이사 5년 차 이제 슬슬 없앨 건 없애고 받아들일 건 유지 보수할 여유가 좀 생겼다.
그중 신랑이 신경 쓰지 않는 나만의 영역 중 하나가 우리 밭으로 가는 길 가 옆 금계국 화단이다. 이사 첫해에 노랗게 핀 꽃 이름도 몰랐는데 엄청 잘 자라는 강한 녀석이라는 걸 4년간의 방치 기간 동안 스스로 증명해 낸 꽃이다.
신랑은 그 길로 부지런히 오가며 밭일은 하지만 꽃밭은 관심의 영역이 아니고 나 또한 밭을 보조하느라 내버려 두기만 하다가 올해 들어 조금씩 금계국 길에 손이 가게 되었다.
손이라고 해봐야 금계국을 제외한 다른 것들을 제거해 주는 일인데 이것이 만만치 않은 게 자연상태의 꽃밭이란 건 말 그대로 자연적인 모든 꽃씨들이 날아온다는 이야기다.
이미 금계국이 자리를 잡고 있다 해도 듬성듬성 강아지풀, 나팔꽃, 가시풀 등 이름 모를 풀과 꽃들이 한 자리씩 차지하기 마련이라 쭈그려 앉은 자세로 풀들을 솎아주다 보면 엉덩이는 모기들이 물어 가려움 잔치가 벌어지고 손등은 풀에 쓸려서 빨개진다. 그래도 아무 생각 없이 풀을 뽑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는 효과도 있는데 며칠을 오며 가며 열심히 정리하였으나 아직도 뽑아야 할 풀들은 나를 부른다.
테마가 있는 꽃축제는 더하려니와 길가에 흐드러진 코스모스 길들도 그렇게 많은 코스모스가 자라는 사이
사이에 얼마나 많은 다른 꽃들이 숨어있을 것이며 사진의 배경이 되는 큰 꽃밭은 누군가가 부지런히 가꾸고 뽑은 결과물일 것이다. 작은 화단의 잡초를 뽑아주다 보니 그 어떤 꽃길도 거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새로이 깨닫는다.
진짜 별거 아닌 듯 지나치곤 했던 모든 꽃길에 나름의 손길이 보태진 결과라고 생각해 보면 세상에 별것 아닌 꽃길은 없는 것이다.
동네에서 가을에 코스모스 테마로 축제를 하는데 (길가에 코스모스를 심어두었으니 조심해 달라)는 플래카드가 여기저기 붙었다. 우리 집 금계국길도 가꾸지만... 오며 가며 코스모스길에 있는 잡초들도 넝쿨들도 제거해 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