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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모리 Dec 16. 2018

007.물고기는 안을수가 없네

#백편의에세이 #천천히씁니다 #이모리 

단칸방에 품위란 없다. 그런 것을 지키며 살기에는 여러 가지로 애로사항이 많다. 책상 위에서 밥을 먹고, 침대가 의자가 되고, 문을 닫아도 오줌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다용도실 여닫이문은 한 번도 양껏 팔을 펼쳐보지도 못했으며, 이불이라도 내다 말리려면 공용 복도에 신세를 져야 하고, 보일러를 틀어도 입김을 숨길 수 없고, 더워서 창문을 열면 1층 치킨집의 기름 냄새가 올라오는 것은 유쾌하지 않다. 게다가 아침에 일찍 눈을 뜨고 싶지 않아도 새벽 6시면 어김없이 기상이다. 쓰레기 수거 트럭의 요란한 엔진 소리가 채 1m도 안 되는 벽과 벽 사이를 타고 올라왔고 창틀에 어설프게 끼어 있는 유리가 트럭 엔진의 진동에 덜덜덜 요동쳤다. 피할 수 없는 월세 20만 원 단칸방 생활이다.


이런 방에 산다는 것은 대부분 익숙해졌지만 때때로 어려운 일이었다. 마음이 방을 닮아 좁아져만 가는 것 같았다. 통장 잔고는 이미 몇 주 전부터 경보음을 울렸다. 이력서를 쓰면서 내가 가진 무기를 가늠하기도 지쳐있었다. 앞날을 재정비한다는 거창한 말을 하며 다만 얼마간이라도 즐겁게 사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인데, 내겐 그럴 능력도 없는 듯했다. 이런 방에 사는 내게 무슨 능력이람. 이런 생각이 툭하면 날 덮쳤다.


(이대로 가다간 굶어 죽을지도 몰라)

나도 알아

항복하고 싶다

(그게 도움이 된다면!)

날 이긴 대가로 살 구멍을 내주면

내 얼마든지 져드리지!

(상대가 없는 싸움이야)

알아

진이 다 빠져버렸어

(그래, 곧 부서질 것 같아)

가루가 되고 싶어

(날아가 버리게?)

불법인가.


혼자만 아니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혼잣말만 늘었다. 매일 밤 여러 명의 취약한 나의 무리가 말을 덮고 또 덮어가며 서로를 지키려고 애썼다. 매일 아침 눈을 떠서 천장의 모서리에서 조금씩 기어 나오는 곰팡이, 곰팡이가 그리는 그 망조를 바라보면서 저 틈 뒤에 숨어있는 곰팡이의 멱살을 끌어다 팔팔 끓는 뜨거운 물에 처박아두고 싶다는 생각. 아니면 소금을 잔뜩 넣어 끓인 물을 이 작은 방에 가득 채워 모두 쪼글쪼글하게 만들어 오독오독 씹어먹고 싶다는 망상이 조금씩 끓다가 꾸덕꾸덕해져 갈 무렵. 통장에 얼마 안 남은 돈으로 생필품을 사러 마트에 갔다가 열대어를 사들였다. 탕진의 능력은 나의 유일한 능력이라는 듯 더는 조바심도 들지 않았다.

일곱 마리의 물고기, 멸치는 아니지만, 멸치처럼 작은 물고기였다. 먹이, 유리 어항 그리고 어항 바닥에 깔아둘 파란색 자갈도 사 왔다. 혹시나 바깥 공기에 물이 식을까 투명한 비닐봉지를 내 품에 꼭 안고, 물이 제멋대로 흔들려서 멀미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을까 조심조심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유리 어항과 자갈을 씻어 깔아두고 비닐에 담겨있던 물고기들을 마침내 풀어두었을 때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와’하고 소리가 새어 나왔다. ‘드디어’라는 말이 어울리던 순간. 할 수만 있다면 물고기를 어항에 풀어두는 이 순간을 무한 반복하고 싶었다.

어떤 것은 주황색, 어떤 것은 파란색. 어떤 것은 노란색. 그들의 조용한 몸짓을 한참 바라보았다. 손끝으로 느껴지지도 않을 만큼 섬세한 지느러미와 꼬리가 물의 저항을 받아 살랑거렸다. 아름다웠다. 밥을 먹는 것도 잊었다.


무거울까.

(뭐가?)

물 말이야.

(모르지)

얘들은 물에 살고

난 여기 살고

(벽이라고 느껴?)

조금

(만져볼 수 없어서?)

안아줄 수 없어서

춥잖아


나는 싱크대에 있던 플라스틱 대야에 따뜻한 물을 담아 그 안에 유리 어항을 넣어두었다. 내일까지만 좀 버텨봐. 내일은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 이런 내 걱정과 달리 물고기들은 평화로워 보였다. 평생 물속에서 사는 아이들인데 괜한 걱정인가 싶었다. 그래도 이 추위는 이들에게 닥친 첫 위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달리 방법을 찾지 못했다. 육지에 사는 동물은 위기가 오면 서로를 끌어안는데. 물고기는 위기가 와도 끌어안을 수가 없네. 그러고 보니 물고기가 서로를 위로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눈을 떴다. 아침밥을 챙겨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채 눈을 다 뜨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 눈을 비비며 어항을 들여다보았다. 어딘가 어색한 모습이어서 잘못 본 줄 알고 다시 봤다. 그러자 물 위로 둥둥 떠 있는 공허한 눈알들. 물과 함께 멈춘 움직임이 눈에 들어왔다. 물속에서 작은 몸을 찰랑이고 있어야 할 물고기들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어?


외마디 소리가 튀어나왔다. 맙소사. 물고기는 지난밤, 찬 공기에 식어가는 물속에서 굳어갔던 것이다. 내 마음 안에서는 수십 가지의 자책 섞인 말들이 채 입 밖을 나오지도 못하고 마음 이곳저곳을 때렸다. 동그라미 안을 서성이던 초침의 발자국 수만큼 내 머리에 못을 박고 싶었다. 살아 움직이던 열대어를 먹어치운 새까맣고 차가운 밤에 나는 까맣게 잠들어 있었으리라. 열대어의 축 늘어진 몸을 건져 올렸다. 손끝에 닿은 물이 차가웠다. 몸서리가 쳐지고 눈물이 나오려던 찰나, 누군가 뒤통수를 때린 것처럼 못된 말들이 떠올랐다. 속상한데 화가 났다. 물속으로, 더 깊은 곳에 멈춰있는 몸을 건져 올리려고 할수록 이 가벼운 몸들은 내 손에 잡히지 않고 물결에 휩쓸렸다. 잡으려고 할수록 잡히지 않았다. 조심하려 해도 내 커다란 손은 더 큰 일렁임을 만들었다. 물고기들은 자꾸만 뒤집혔다. 그것도 화가 났다.

건져 올린 열대어 일곱 마리의 몸이 두루마리 휴지 몇 칸 안에 얼룩처럼 묻어 있었다. 얼마나 앉아있었을까. 그 몸들을 책상 위에 올려둔 채였다.


남의 화단에서 도둑처럼 몰래 상을 치렀다. 나는. 얼어버린 화단을 파면서 악화되어가는 모든 것들을 생각했다. 차가워지는 어항과 입김이 서리는 내 20만 원짜리 월세방과 닦을수록 번지는 곰팡이 얼룩과 속부터 썩어가는 과일과 방향을 바꾸며 내달리는 왼쪽 같은 것. 곧 나는. 극단적인 모든 것을 떠올렸다. 마비된 기쁨과 가난에 압도된 생각과 감각이 사라진 손끝과 짙은 입김을 만드는 추위와 추위를 못 견딘 죽음.


미치고 팔짝 뛸 것 같았던 그 날의 가해자는 슬퍼서 몸져눕지도 못하고 갚을 길이 없는 죄스러움을 잔뜩 끌어안고 사람인 5페이지를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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