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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모리 Oct 08. 2019

[월간 안전가옥] 8월

쓰시느라 애쓰셨습니다 | #일하는사람

공모전 심사가 끝나고 생각을 정리하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습니다.
 
저는 글을 정말 느리게 씁니다. 분량을 채우는 것 자체가 느리다기보다는 쓰기 시작하면 금세 쓰는 경우도 있지만 무엇보다 어떤 글을 시작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편입니다. 이유는 하나예요. 제가 쓰려고 하는 주제에 대해 소화력이 좋지 못한 탓이지요. 저는 빠르게 생각해서 빠르게 결론 내리지 못하는 편이에요. 하고 싶은 말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도 있고, 스스로 끊임없이 의심하기도 해요. 정말 하고 싶은 말이 이것인지, 그럴듯하게 꾸민 것은 아닌지. 이런 괴상한 이상주의가 저를 아주 더디게 만듭니다. 그러다 보니 A4 2-3장 분량의 글을 쓰는 데에만 꼬박 한 달이 걸리기도 해요. 한때 제가 제일 부러워하는 사람은 일필휘지 하는 사람들이었어요. 웬만한 것들은 다 씹어보고 먹어본 사람들이 가진 명료함, 축적한 데이터의 양이 월등히 많은 사람들이 발휘하는 속도감. 말하고자 하는 것을 누구보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어서 그들은 고민도 경제적으로 하더군요.
 
지난 8월에는 공모전 원고를 읽었습니다. 읽고 난 후 어떤 글은 제 왼편에, 어떤 글은 오른편에 놓았습니다. 또 어떤 글은 제 앞에 놓았고요. 누군가 매일 혼자 싸운 시간을 읽는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보이지 않는 기운이 엎치락뒤치락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남이 만든 세계 안에 들어갔다 나오는 일. 그 경험은 때론 즐겁기도, 때론 지루하기도, (드물지만) 당혹스러운 경험이기도 했습니다. 누군가는 자신의 머릿속을 풀어놓았고, 누군가는 그 풀어놓은 세계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 공모전 심사라는 게 그런 것 같았어요.
 
‘왜 어떤 글은 내 오른편에 놓였고, 또 어떤 글은 내 왼편에 놓였을까?’ 저는 이 질문을 아주 여러 번 했습니다. 사실 제 고민은 저의 왼편과 오른편에 놓인 글보다 제 앞에 놓인 글들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다음을 기약하기엔 아쉽고, 그렇다고 덥석 손을 들어주자니 갸우뚱하게 되는 그런 글들이요. 지금부터 쓰는 생각은 아주 순수하게 저의 기준이니 오해는 마세요.
 
제 심사의 과정은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가는 일입니다. 어떤 가능성을 발견하고 조금씩 그것들의 자리를 옮기는 일이요.
 
사실 왼편에 놓일 글을 선별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아요. 대개 왼편에 놓이는 글들은 쉽게 떠나보낼 수 있어요. 글을 선별하는 것은 사람을 만나는 것과 비슷한 면이 있어서, 꾸며진 것만으로는 흔들리지 않지요. 처음 보는 누군가가 옷을 멋지게 입었다고 그 사람을 다시 보고 싶어 지지 않잖아요. 더 써보자면, 성의 없는 사람이 다시 보고 싶을 리 없고, 고루한 대화만 하는 사람도, 불친절한 사람도, 두서가 없는 사람도, 정색하는 사람도, 웃기만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지요.
 
그런데 이런 경우가 있었어요. 처음에는 확 끌어당겼다가 뒤에 가서 ‘다 장난이었어.’ 하거나, 처음의 에너지가 뒤에 가서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글. 그런 글도 오른편에는 가지 못했어요. 심지어는 오른편에 놓인 글과 도입-전개 부분만을 놓고 비교한다면 누가 뭐래도 손을 들어줄 정도로 탁월하다 하더라도 말이에요.
그렇다고 마지막에 가서 재미가 뚝 떨어졌다고 왼편에 놓인다는 뜻은 아니에요. 정확히 말하자면 중반부까지 어려움 없이 쫓아갔던 작가의 생각이 마지막에 가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맺어지는 경우지요. 이런 경우에는 섣불리 조언할 수 없으니까요. 이건 표현의 문제가 아니라 작가 자신이 곱씹어야 할 영역이지요.
 
이런 경우도 있어요. 고유하긴 커녕 심지어 부분적으로 본 듯도 해서 읽다가 결론을 뒤적이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글. 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것으로 완벽히 소화했다고 볼 수 있는 글. 이런 글은 마지막까지 읽어보면 작가 자신만의 색이 아주 조금은 묻어나요. 비록 독보적이진 않아도 잠재력 혹은 일말의 가능성은 볼 수 있는 글. 그런 글은 오른편에 놓일 수는 없어도 정면에 놓아둡니다. 쓰시느라 애쓰셨습니다. 이런 말 한마디라도 해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응원하지요.
 
지난달, 공모를 통해 만난 여러 편의 글을 읽으며 ‘좋은 이야기를 찾는 여정이란 참 쉽지 않구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반대로 ‘이야기를 읽는 좋은 태도’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되었어요. 섣불리 넘겨짚지 않을 것, 좋은 부분을 발견하려고 애쓸 것, 더 좋을 수 있었던 ‘가능성’을 작가 자신이 알아볼 수 있게 기운을 보낼 것.
 
다시 보고 싶은 사람.
우리 그런 글을 써보자고요.
저는 정성을 다해 읽겠습니다.
 
“쓰시느라 애쓰셨습니다.”
 
헤이든 :
다음 공모전은 10월 1일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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