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트렁크>와 나르시시스트
“3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썅년은 썅년이라는 거“
——-<트렁크>의 노인지
여러분은 주변의 썅년, 썅놈을 알아보실 수 있으신가요?
책이건 영화건 스토리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주제가 내 생각과 일치하거나 신선하거나 가르침을 주는 경우는 작가, 원작자를 궁금해하게 합니다.
넷플릭스의 <트렁크>가 그랬어요.
완득이로 유명하신 김려령 작가의 원작소설 트렁크를 각색한 작품이더군요.
우리 주변의 소시오패스나 나르시시스트에 대한 폭력과 가스라이팅, 물질의 풍요, 결혼의 본질, 동성애, 스토커 사적 처벌….그리고 사랑과 위로까지 굉장히 여러 가지 소재를 녹여내다 보니 뚜렷한 주제가 전달이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부분에 저도 늘 관심이 많아서 너무 재미있게 보았고, 원작 소설뿐 아니라 작가의 다른 작품까지 확대하고 싶은 욕망도 생겼습니다.
그중에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최대의 관심사와 가장 닿아있는 부분이 썅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딕션이 정확한 서현진님의 대사로 속이 좀 시원해지는 효과가 있었어요.)
3천 년 전 솔로몬의 재판에서 아이를 반으로 자르자는 가짜 엄마나 남편을 자신의 뜻대로 조정하고 싶은 트렁크의 이서연이나 윤석열을 조정하는 김건희나 모두 굉장한 썅년들이죠.
이들은 소시오패스나 나르시시스트입니다.
타인에 대한 공감을 전혀 못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우리 주변에 지금도 있습니다.
25~30명 중 한 명 꼴이라니 직장, 학교에는 반드시 있겠죠?
이들을 상대하기는 쉽지 않아요.
피하는 게 상책인데 과연 알아볼 수 있냐는 거죠.
과학기술의 발달로 정보의 값이 제로가 된 요즘 마음만 먹으면 학습이 용이한 만큼 그들도 학습을 하고 진화합니다.
정체를 늘 감추려고 하죠.
탄로 나면 공동체에 발붙이기 힘들테니 두렵겠죠?
그들은 늘 먹잇감을 찾아요.
스스로 자존감이 바닥이라 쉽게 우울하고 질투가 많기 때문에 먹잇감의 불행과 남들을 조정하는 쾌감으로 만족감을 얻어야만 삶의 에너지를 얻습니다.
끔찍하죠? 그래서 그들은 오늘도 먹잇감을 찾고 조정을 멈추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람을 슬슬 찔러보죠.
내가 쉽게 조정할 수 있나? 없나?
트렁크의 이서연의 먹잇감은 한정원(공유)입니다.
한정원은 어릴 적 아빠의 엄마에 대한 극심한 폭력과 학대를 보며 성장했습니다.
물질은 차고 넘치지만 올바른 양육과 사랑을 받지 못하고 성장한 인물입니다.
물질은 풍요롭지만 정신이 빈곤한 상태.
먹잇감으로 최적 아니었을까요?
한정원은 이서연에게 의지하는 것 같지만, 벗어나고도 싶은 양가의 감정을 가졌어요.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죠.
김건희에게는 윤석열이 먹잇감이었을텐데 나르시시스트끼리 한조를 이루기도 합니다.
서로의 강약에 따라 서열이 정해지죠.
이런 경우 완벽한 악의 한조를 이루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욱 이 사태해결이 쉽지 않은 것이고, 우리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둘 다 만만치가 않아요.
그래도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전 국민이 인지하였으니 시간은 걸리겠지만 해결되리라 믿습니다.
스토리는 인류에게 문자가 존재하지 않았을 때도 그림으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어요.
그것은 단순 재미를 위해 존재한 것이 아닙니다.
생존에 필요한 가르침을 전달하기 위함이었죠.
트렁크도 그런 가르침을 주기 위한 스토리이고 우리가 겪은 계엄에 이른 이 상황도 하나의 스토리가 될 것입니다.
우린 경험을 통해 반드시 가르침을 얻어야만 합니다.
내 주변에도 있고, 우리 아이 주변에도 있는 그들을 가려낼 줄 알아야 해요.
그런데 나쁜 사람을 가려내는 것 자체가 목적이 돼서는 또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혼자 살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많으신 것 같은데 우리는 함께 살아야만 하는, 관계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아야만 건강한 에너지를 얻는 사회적 동물입니다.
무섭고 해가 되는 사람을 피해야 하는 것은 좋은 사람들을 옆에 두기 위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되면 필히 혼자가 되겠죠.
좋은 관계를 위해서는 홀로 설 수 있는 강하고 타인의 존재에 공감하는 공동체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연결되어야만 합니다.
가려내려면 우선 내가 온전하게 단단해야 합니다.
남을 조정하려는 소시오패스나 나르시시스트들이 힘들어하는 유형이야말로 남에게 휘둘리지 않는 사람일 테니까요.
넷플릭스 <트렁크> 한 번 더 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