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만에 다시 돌아온 그 도시
언젠가 다시 돌아오겠다고 다짐했었는데, 그게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다. 중학생 때 유럽 여행을 다녀오고 8년이 지나 대학생이 되었고, 이번에는 교환학생으로 런던이란 도시에 오게 되었다. 그때는 4일 정도밖에 못 있었지만, 이번에는 다섯 달이나 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교환학생 생활조차도 벌써 일 년이 되었다.
영국 런던으로 교환학생을 가게 된 계기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내가 할 줄 아는 외국어는 영어밖에 없다는 점, 규모가 큰 도시라 즐길 거리가 많을 것 같다는 점, 그리고 교환학생 파견 기간이 끝나고 부모님께서 오시기 좋다는 점 등이 주요했다. 작년 2학기는 교환학생 파견 준비를 하며 보냈다. 가서 어떤 것들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조심해야 하는 것에는 무엇이 있는지 등을 조사하며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그렇게 2024년 1월 11일,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우-러 전쟁의 여파로 대한항공 비행기는 러시아 영공을 가로질러 갈 수 없었다. 그래서 러시아의 영토 경계를 따라 비행했고 런던까지는 무려 14시간 35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비행기 좌석에 찌그러져서 식사 두 번과 간식 한 번을 먹었다. 착륙할 때면 다리가 다 부어서 걸을 때 느낌이 이상했다. 그래도 도착했으니 공항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보았다.
다행히 나랑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온 친구가 한 명 더 있어서 둘은 같이 우버 택시를 불러서 학교로 이동했다. 내가 한 학기 동안 다닐 학교는 동런던에 있는 퀸메리 런던 대학교(Queen Mary University of London, 이하 퀸메리)로, 나는 낮은 토플 점수 때문에 수리과학부와 물리학부, 화학부의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히스로(Heathrow) 공항은 런던의 서쪽 외곽에 있기 때문에 우버 택시를 타고 꼬박 두 시간이 걸렸다. 목요일 밤 런던의 피크 타임은 먼 길을 더 오래 걸리게 만들었다.
퀸메리가 있는 동런던은 치안이 그렇게 좋은 곳은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오후 8시가 지나면 경비원이 학교 출입문 앞을 지키고 있고 우리는 학생증이나 기숙사 카드가 없어서 통과를 못 하나 싶었지만... 다행히 짐이 많은 나와 Y양-아까 같이 우버를 탄 친구이다-을 보고 경비원은 신입생이겠거니 판단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내가 살 기숙사에 체크인을 하기 위해 향했다. 참고로 내가 살 기숙사는 각 방에 화장실이 딸린 구조로, 6인 6실의 형태이다. 쉽게 말해 집 하나에 방이 여섯 개가 있으며, 그 방에는 모두 화장실이 있고, 주방이나 식사는 공용 부엌에서 하는 구조이다. 다른 친구들은 9인 9실의 방에서 살았다고 한다. 이 학교의 기숙사가 또 옵션이 다양한데, 화장실이 방에 있는 형태의 기숙사인 'En-suite' 기숙사는 남녀 혼성 기숙사로, 남자와 여자가 한 집에서-물론 각방을 쓴다-산다. 반면 공용 화장실을 쓰는 기숙사의 경우-얘는 따로 부르는 명칭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동성 기숙사이다.
내 방은 다행히 G층-영국은 1층이 0층 혹은 G층이다-이었다. 30kg짜리 캐리어를 두 개나 가지고 온 만큼 1층이면 계단을 어떻게 올라가나 우려했는데, 다행히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집 문을 열고 들어갈 때, 안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있었는데, 나의 플랫메이트(Flatmate, 같은 집을 쓰는 친구) 이사벨라(Isabella)였다. 그녀는 키가 185cm 정도는 되어 보였다. 나는 키가 181cm인데, 역시 유럽 사람들의 골격은 다른 것인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참고로 이 이사벨라라는 친구는 나중에 있을 에피소드에 종종 나올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녀와 간단하게 첫인사를 하고, 나는 내 방에 들어왔다. 출국 전 유럽의 베드버그 이슈가 있었기 때문에 살충제를 매트리스에 잘 뿌리고, 퇴치용 패드를 붙이고, 그러고 나서 이불을 깔았다. 딱 일 년 정도 쓰고 버릴 정도의 품질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리니치(Greenwich)에 있는 이케아에서 더 좋은 제품을 구매했어도 됐겠다. 아무튼 짐을 다 정리하고 나니 시차 적응이 덜 된 탓일까, 저녁 8시밖에 되지 않았지만 잠에 들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 내 기억으론 새벽 5시 정도였던 것 같다. 런던의 겨울은 기온 상으로는 아주 춥지는 않지만 바람이 많이 불고 보일러가 없다는 아주 큰 문제가 있었다. 첫날은 그 환경이 적응이 잘 안 되어서 패딩을 입고, 찜질용 매트를 끌어안고 잤다. 전기장판을 가져왔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았지만 소형 찜질매트라도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할 판이었다. 아침이 되고 런던의 이곳저곳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그전에 한국에서 가져온 오뚜기 컵밥과 기타 등등으로 간단히 식사를 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저 김치나 불고기 양념 냄새가 플랫메이트들에게는 얼마나 심했을까.
퀸메리는 앞서 말한 것처럼 동런던에 있는 학교로, 근처에 있는 지하철 역은 Central 및 District & Hammersmith line의 Mile End 역, District & Hammersmith line의 Stepney Green 역이 있다. 그래서 일단 지하철을 타고 Zone 1으로 나가서 도시 구경을 해보기로 했다. 무인자판기에서 Oyster Card를 발급받고, 잔액을 충전하고-런던 지하철은 신용카드로 교통카드를 충전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지하철을 탔다. 목적지는 Bank 역으로, Mile End 역에서 세 역만 더 가면 나오지만 Zone 2에서 1로 이동했기 때문에 운임은 2.8파운드... 한화로 4,800원 정도 되는 금액이다. 심지어 당시 환율이 1,700원/파운드 정도였기 때문에 저 정도의 금액이지, 지금의 환율로는 5,100원이 넘는다. 이건 오프 피크(off-peak) 시간대의 운임이고, 피크 타임(peak) 시간대의 운임은 3.4파운드이다. 그래서 이 교통비 때문에 재정 상태가 불건전해졌던 적이 아주 많았다.. ㅋㅋ
Bank 역에서 나오면 좌측 하단에 있는 저 동상을 볼 수 있다. 내 기억이 맞다면 Duke of Wellington, 그러니까 초대 웰링턴 공작인 아서 웰즐리(Arthur Wellesley)의 동상이었을 것이다. 근데 저 동상 뒤에 있는 건물이 영란은행(Bank of England)이 아니라, 동상 왼쪽에 있는 건물이 영란은행이다. 중학생 때 유럽 여행을 오며 환전했던 파운드화는 종이 지폐라 더 이상 사용되지 않고, 플라스틱 지폐로 교환해야 하는데, 그래서 교환을 위해 이 은행을 방문했다. 런던 박물관(Museum of London)은 휴관 중이라 들어갈 수가 없었고, 도심지인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 쪽으로 걸어가다 보니 세인트폴 대성당(St Paul's Cathedral)이 보였다. 옛날에 저 앞에서 사진을 찍은 기억이 있는데 하며, 다시 지하철을 타고 떠났다.
이번에는 런던교(London Bridge)에 왔다. 런던교 역은 Northern line 지하철과 여러 가지 통근 열차들이 정차하는 역으로, 템스강 기준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버러 마켓(Borough Market)으로 굴을 먹으러 자주 오곤 했는데, 이때 런던교 역에서 자주 내리곤 했다. 무튼 런던교에 오르니 예전에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났다. 그때 가이드 분께서 런던교에서 사진을 찍어야 타워 브리지(Tower Bridge)가 잘 보인다고 해서, 우리 가족은 단체로 거기서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남아 있다. 그때의 구도를 잘 살려서 찍어보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에게 부탁할 용기가 안 나서-외국인에게 말을 거는 것에 대한 두려움, 찍어달라고 부탁한 사람이 스마트폰을 들고 도망칠 것에 대한 우려 등이 있었다-그냥 풍경이나 찍어 보았다.
템스강 남쪽에 있는 지역은 서더크(Southwark)라는 지역으로, 그 유명한 워털루(Waterloo) 역이 있는 지역이다. 신기한 것은 'Southwark'의 발음이 사우스워크가 아니라 서더크가 된다는 것인데, 그냥 현지인들이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하고 받아들여버렸다. 런던 남쪽에 있는 마천루인 더 샤드(The Shard), 템스강에 정박되어 있는 퇴역한 군함인 벨파스트 호(HMS Belfast),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타워 브리지까지. 이때까지만 해도 내가 런던에 도착했다는 것이 잘 실감이 안 났다. 그래서 예전에 영국에 왔을 때는 어디를 갔었는지 잘 되새겨 보았는데, 그냥 유명하다는 관광지를 찍고 다니기 바빴던 것 기억밖에 없었다. 당장 서울에 한 번도 와본 적이 없는 외국인 관광객이 서울로 4일 동안 여행을 온다고 생각하면, 하루는 종로, 또 다른 하루는 홍대나 이태원, 다른 날은 강남, 뭐 이 정도밖에 못 보지 않겠는가? 그래서 내 기억 속에는 런던에 대한 기억이 뚜렷하게 남아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섯 달이나 있으니까, 도시의 구석구석을 둘러보면서 많은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래서 매주 수업이 없는 수요일이면 어떻게 해서든 자꾸 도심으로 나가려고 했다.
런던의 지하철은 매우 시끄럽다. 심지어 인터넷이 안 되는 절연 구간도 많다. 처음에는 이게 대체 21세기에 가능한 일인가 생각했는데 사실 얘네는 19세기에 지하철을 깔던 나라였다. 그때는 스마트폰의 통신에 대해서 고려하지는 않았을 테니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인터넷은 안 하려고 하면 안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 치고, 그 시끄러운 소음이 나는 정말 참기 힘들었다. 특히 Bank-Liverpool Street 구간이 재앙 수준이었는데, 나는 처음에 전철 바퀴가 부서지는 소리인 줄 알았다. 그래서 그때 그 선배가 노이즈 캔슬링이 되는 이어폰을 꼭 가져가라고 조언한 이유를 뒤늦게 깨달으며 런던 지하철 소리가 얼마나 시끄러운지 녹화를 다 해 두었다.
근데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또 듣다 보니 나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정확히는 듣고 견디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앞으로 풀 이야기가 정말 많다! 런던에서 다섯 달이나 있으며 별별 에피소드가 다 있었으니 말이다. 자전거 도둑맞은 썰, 보이스피싱 전화받은 썰 등등 그때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돌이켜보면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이 있다. 가끔 생각날 때마다 쓰러 올 테니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그럼 이만!
21/12/2024, Written by John Hw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