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 자이언티 (feat. 이문세)
내일 아침 하얀 눈이 쌓여 있었음 해요
그럼 따뜻한 차를 한 잔 내려드릴게요
계속 내 옆에만 있어 주면 돼요
약속해요
눈이 올까요?
우리 자는 동안에 눈이 올까요?
그대 감은 눈 위에 눈이 올까요?
아침 커튼을 열면 눈이 올까요?
며칠 전까지만 해도 11월답지 않게 따뜻한 날씨에 외투를 벗어 팔에 걸치고 다녔는데, 하룻밤 자고 나니 계절이 바뀌었다. 열린 베란다 창문 틈으로 차갑다 못해 시린 공기가 살을 파고드는 걸 보니, 완벽한 겨울이 찾아왔다는 게 실감이 났다. 언젠가부터 겨울은 만나기 힘든 손님이 되어버렸다. 따뜻하게 변해버린 날씨 탓에 차가운 겨울을 만나는 몇 개월이 꽤나 반갑게 느껴진다.
사실 나는 겨울을 퍽 좋아하지 않는다. 밖을 돌아다니기엔 너무 춥고 여행을 다니기에도 차 없는 뚜벅이에겐 너무 가혹한 날씨다. 옷은 또 얼마나 껴입어야 하는지, 외출 준비하는 것보다 집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는 일이 훨씬 더 귀찮다. 그럼에도 종종 겨울에 대한 애정을 느끼는 순간은 단연, 눈이 내리는 순간. 그중에서도 첫눈이 오는 순간 덕분이다.
완벽한 겨울이 찾아오고 얼마 되지 않아 서울에 첫눈이 내렸다. 새벽부터 내린 눈에 바깥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해 있었다. 사실 아침에 일어나 새하얀 겨울왕국 같은 모습을 보곤 마냥 예쁘다는 생각이 들기보단 한숨부터 먼저 나왔다. 외출해야 하는데 번거롭게 생겼네,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외출 준비를 마치고 현관 거울 앞에 서서 목도리를 단단히 동여 메고 눈에 젖지 않을 만한 운동화를 골라 신은 다음 현관문을 열었다. 얼굴에 닿는 차가운 공기, 복도식 아파트 난간 밖에서 펑펑 내리는 눈. 얕은 한숨을 내뱉고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갔다. 아파트 출입구 앞 계단을 내려와 첫 밭을 내딛는데 발 밑에서 뽀드득, 눈 밟는 소리가 났다. 아파트 단지 나무엔 눈이 덮여 벌써 크리스마스가 온 것 같았고, 하늘에서 내리는 굵은 눈발은 우산 위에 내려앉아 둔탁한 소리를 냈다. 그리고 나는 투덜거리는 마음과 다르게 귀에 이어폰을 꽂고 휴대폰으로 노래제목에 '눈'이 들어간 노래만 찾아 플레이리스트에 담았다. 눈 내리는 세상의 공기를 직접 마주하고 나서야 나 눈 좋아하네, 생각했다. 솔직하지 못해 탈이다.
고등학교 때는 눈이 오면 마냥 좋았다. 집 안에서도, 버스를 타서도 창 밖만 바라보고 밖에 나가서는 신발에 눈이 닿는 뽀드득 소리를 듣고 싶어서 아직 눈을 치우지 않은 길만 골라서 걸어 다녔다. 그리고 눈이 오면 꼭 '눈'을 들었다. 귓가에는 편안한 멜로디를 담고 눈에는 차갑지만 포근한 겨울의 모습을 담고 있으면 마음이 날씨와는 다르게 따뜻해지는 게 느껴졌다. 이렇게 솔직하고 순수한 순간들도 있었는데 고작 몇 살 더 먹었다고 현실적인 생각이 머릿속에 먼저 들이닥치는 나를 발견할 때면 조금 아쉽다. 예쁘다고 눈을 보며 눈을 반짝이던 그때와 다르게 지금은 그저 예쁘긴 예쁘네, 라며 미적지근한 반응만 나오니. 아직도 그때처럼 눈을 맞이할 줄 알았다면 엊그제 내렸던 그 첫눈이 더 예뻐 보였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눈이 한 번 더 내렸으면 좋겠다. 다음에 눈이 오는 날에는 이 노래를 반복재생해 놓고 집 안에서 창밖으로 하얗게 변한 세상을 바라보면서 솔직하게 예쁘다, 얘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