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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노아 레인 Nov 20. 2024

하숙집 나의 선생님

그 집 앞

 실개천을 종종걸음으로 건너도 바로

맞닿는 그곳엔, 꽃보다 아름다운 그녀가 산다.

사춘기 소녀의 마음에 설렘을 더해준 그녀는,

항상  초록빛, 연분홍빛 긴치마를 입고,

몇 안 되는 총각선생님의

슴에 불을 지피는 처녀선생님이시다.


 좁은 툇마루가 딸린, 선생님의 작은 하숙방은 무슨

사랑방처럼 단골들이 쉼 없이 드나들고, 우리는 학교에서

선생님보다 먼저 도착하는 날엔, 툇마루에 앉아서

책도 보고 종이학도 접는다.

퇴근하는 선생님은 피곤할 만도 한데 웃으시면서

"언제 왔냐?" 마치 친구를 대하듯 반갑게 말을 건네신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 가려던 내게 엄마는, 배가 아프다며

힘없이 바닥에 풀썩 주저앉으셨다.

나는 눈앞이 캄캄했다.

왜소한 체구신데도 평소에 큰 병치레는 없으셨기에,

엄마가 아플 수도 있다는 생각을 못해보고 살아와서일까?

엄마는 괜찮다며 학교에 늦으니 빨리 가라고 하시지만,

아픈 엄마를 두고 학교에 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가방을 던져 놓고 한달음에 실개천을 건너

선생님께 달려갔다. 턱밑까지 차오르는 숨을 겨우

진정시키며 선생님을 불렀다.

때마침  선생님은 원피스를 입으시려는 중이었다.

지퍼를 올리는 둥, 마는 둥 하며 툇마루로 뛰어

나오시는 모습에 미안하기도 한 나는,  툇마루 끝에서

일순간 망부석이 되어 버렸다.


 선생님께서는 그런 나를 보시더니, "무슨 일 생겼어? 일단, 이 지퍼나 올려주고 얘기해 봐!"

나는 얼떨결에 원피스의 지퍼를 올리고 

사정 얘기를 하며 선생님께 투정을 부렸다.

선생님은 내 모습이 안쓰러운지 "그런 일 있으면 전화로 하지  뛰어 오다가 넘어져 다치면 더 큰일이야!"

하시며 오히려 나를 걱정하신다.


 다행히도 엄마는 약을 드신 후 좋아지셔서, 난 학교에

지각만 했을 뿐,  큰일 없이 지나갔다.

그 후로, 선생님께서는 부르시더니 "출석부에는 아무 표시도 안 했어, 앞으로 그런 일

있으면 걱정하지 말고 천천히 와도 된다" 하시면서

말끝을 흐리신다.

내 마음에도 일렁이는 파도처럼 한바탕 소용돌이가 지나간다.


 아! 나의 선생님!


 서울에서 시골 학교까지 어떻게 오시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첫 발령지이자 태어난 후,  서울을 처음 벗어나 봤다는

선생님ㆍㆍㆍ

사철나무 울타리가 둘러진, 작은 하숙방에서

'선생님' 하고 부르면, 어김없이 창호지 문을

열면서 환한 미소로 반겨 주신다.


 서울 집에 가실 때는, 창호지 문고리에 메모지를 남기고 가실 정도로 마음 따뜻한 선생님이셨다.

때가 되면, 각종 대회에 나가야만 하는 나를 위해,

수업에 뒤쳐질까 봐 선생님의 노트까지  건네주시며

필기하라고 하신다.


 미래의 내 '꿈'과 부모님의 '희망' 사이에서 '중2병'을

심하게 앓던 시기에 '담임 선생님'으로 오셔서,

때로는 '언니' 같고, 때로는 '엄마' 같았던

선생님이셨다.


 수학여행을 떠나던 날, 선생님은 계란을 한 봉지 가득 삶아  오셨고, 버스 안에서  우리는 계란을 먹으며

선생님의 학창 시절 '수학여행' 이야기를 들으며 연신 웃음꽃을 피웠다.


 나는 그런 선생님과의 대화가 즐거워서 등교하는

시간도  빨라졌다.

사철나무 사이로 보이는, 툇마루  댓돌 위에

선생님의 신발이 놓여 있으면  마음이 너무 즐거웠다.

어느 땐, 부스스한 머리에  화장기 없는 얼굴로 창호지

문을 열지만, '왜 이렇게 일찍 왔느냐' 하는  

그런 불편한 내색 한번 없으셨다.


 그런 선생님과 함께 하는 등굣길은, 코스모스가 

한들한들 거리는 가을날은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웠고,

매서운 눈보라가 치는 겨울날도 결코 춥지 않았다.


 '선생님이 먼저 다른 학교로 떠나지 않을까' 걱정을

하던 것과는 달리,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선생님 곁을 우리가 먼저 떠나 오게 되었다.



 사철나무 울타리 사이로 보이던 댓돌 위의

선생님 신발을 보며 느꼈던 설렘은, 세월이

흐른 지금도 어제 일처럼  잔잔하게 전해져 온다.

철쭉꽃 사이에서 손을 꼭 잡고

찍었던,  사진 속 선생님의 모습은 그대로인데,

빈집이 된 하숙집 툇마루는 낡고

그 색이 바래져, 지나가던 새들의 쉼터가

되고 있었다.

그래도 가끔씩은 그 집 앞으로 가서 나지막이 불러본다.

선생님! 선생님!

금방이라도 창호지 문을 열며 환한 미소로 반겨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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