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생각이 먼저 나서 글을 쓰는지 , 글을 쓸 때 네 생각을 끄집어내는지
네 생각이 날 때마다 글을 쓰기로 했었다
그런데 어느새인가 내가 글을 쓰다 보니 네 생각을 더 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인가. 네 생각이 나서, 글을 쓰는 건가 글을 쓰기 위해 네 생각을 조금이라도 더 하게 되는 건가.
마지막으로 글을 쓰고 글을 쓸 생각을 안 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렇다고 일주일 동안 네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었다. 조금이나마 덜 하긴 했지만, 빈 시간마다 네 생각에 잠겨서 나는 이리저리 알 수 없는 기분으로 끌려가버린다. 그렇게 일주일을 이도저도 아닌 채로 살았다. 원래의 나대로 살 수 있으려면 도대체 얼마나 이렇게 지내야 하는 걸까. 네가 없어도 밥은 잘 먹고, 일도 해낸다. 다만, 예전보다 건강하지 못하게 지낼 뿐.
내가 왜 자꾸 너를 생각하는지 알고 싶다
슬픈가? 네가 나에게 부응하지 못할 기대만 잔뜩 심어 두고 떠나가버려서?
화가 나나? 너에게는 내가 이렇게 아무것도 아니란 듯 버려져서?
외로운가? 네가 없을 때도 난 외로움을 잘 즐기며 살아왔는데, 일생의 찰나에 네가 지나갔다고 뼛속 깊이 외롭지는 않지.
서운한가? 나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혼자 멋대로 결정하고 떠나야 한다고 했기 때문에? 마음이 식어버렸다면 그건 나에게 상의조차도 필요 없고 그저 마음 가는 대로 하는 게 맞으니, 나는 너의 사정보다도 후자로 마음이 가는 것이 정황상 일리가 있지 않나?
아직도 너는 나에게 고마운 사람인가? 그렇다고 그동안 네가 나를 사랑해 줬던 모습들을 부정할 수도 없는 노릇인데, 달달했던 맛은 흐릿해지고 끝에 쓴맛만 오래 남아 내 기억 속 네가 변질되고 있다.
내가 너를 과대평가했나? 원래 이런 사람인데, 내가 너무 사람을 좋게 봤나? 내가 너를 이렇게 오해했던가
떠나가는 마당에 나에게 더 진실되고, 더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나라니, 그동안 너는 진실되지 못하고, 나를 사랑하지 못했나? 네가 나에게 숨기는 게 뭔지는 나는 평생 알 수가 없다. 너를 다 보여주지 않고 너는 떠났으니, 궁금해서 답답해서 잠을 못 자는 건 나뿐이고, 나만 힘들어할 뿐이다.
너는 지금 어떤 기분일까? 후련함에 일에 몰두를 하고 있으려나? 차마 나에게는 보여주지 못한 너의 모습을 들키지 않아 다행이라 안도할까? 사람은 가지지 못하거나, 지키지 못할 것에 대해 미련을 갖고 전전긍긍하는 것보다 놓아버린다는 게 후련하다는 것을 네가 떠나고 조금씩 알게 되었다. 나는 네가 오지 않을 것이라 단정 짓고, 결말을 지어버렸다. 그렇게 더 이상 너를 사랑하지 않게 되었다. 더 이상 애틋하지도, 보고 싶지도, 달콤했던 순간들이 그립지도 않게 되었다. 네가 언제 올지 모른다는 기약 없는 기다림보다는, 아예 애초에 내 것이 아니었다. 너의 사랑을 받을 사람은 내가 아니었다. 나는 그저 이런 사람도 있구나 스쳐 지나가는 사람일 뿐이었다 생각하면, 조금씩 놓아줄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이렇게 사라지는 상대들은 다른 사람이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게 대다수의 사연이다. 나는 대다수의 사연에 너와, 우리를 대입하고 싶지 않았고, 너를 믿었는데, 결과만 봐서는 나는 너를 못 믿었기 때문에 네가 나를 떠났을까?
나는 오지도 않을 너에게 왜 의미도 없고 부질없는 말들을 듣고 싶고,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그저, 사랑이 아닌 무언가로라도 언젠가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들은 수다쟁이처럼 내뱉고 나도 후련해지고 싶다. 네가 나를 놓아버리고 후련히 일에 몰두하듯이. 나도 어딘가에 해소하고 결말짓고 이 무한굴레 속에서 빠져나가고 싶다. 너는 알까? 내가 이 굴레 속에 갇혀서 두 달이라는 시간을 버린 것을. 알았을까? 너 때문에 내가 나를 이렇게 오래오래 괴롭히게 될 것이라는 것을.
혹시, 생각했었다. 네가 나를 조금은 괴롭히고 싶어서였나. 아쉬운 거 없단 듯 너에 사랑에 조금은 무심한 듯 보였나? 내가? 그래서 내가 애걸하게 만들기 위한 농락인가? 아니라면, 나에게 상처받았던 사람들에게서 지휘를 받아 나에게 복수를 하는 건가.
둘 다 아니겠지만, 어느 쪽이라도 성공했다. 나는 너에게 애걸하고도 아직도 너를 놓지 못해 혼잣말을 마스터해 가는 듯하다. 돌아오지 않는 대답을 듣기 위해 목이 쉬도록 아무도 없는 허공에 질문을 끝없이 던진다.
새로운 자학, 희망고문에 빠졌다.
네가 떠날 것처럼 등을 돌리는 게 느껴졌을 무렵, 나는 네가 나에게 사랑을 바랄 때처럼 애정운이며, 사주, 타로 모든 것에 희망을 걸며, 아닐 거라고 되뇌었다.
하지만 다 틀렸다. 올 해는 이별수가 없다던 내 사주도, 꽤 잘 맞는 궁합이라는 너와 나의 궁합도, 운명처럼 다시 재회해, 결국 같이 걷게 된다는 타로카드도 다 틀렸다. 정답은 너한테만 있는걸, 나는 엄한 데서 너를 찾고, 정답이길 바라는 희망고문들을 하루종일 들으며 네가 다시 오길 기다리나 보다. 네가 후회하고, 내 생각을 하고 있다는 희망고문들에 나는 마음이 풀리고, 아닌 척 하지만 사실이 되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결국엔 다시 이어질 운명이라는 말들을 들을 때면, 너는 내가 운명이 아니라 생각해 이 관계에 손을 놓았을지 모르는데, 저런 희망고문에 나는 마음이 동해서는 어쩌자는 건지.
사랑이 아니어도 된다. 그저 다시 한번쯤은 만나 얘기하고 싶다. 내 얘기가 부담스러워 네가 또 도망칠지도 모르지만, 네 이야기가 듣고 싶고, 이해하고 싶다. 이 사랑에 상처받은 내가 아직도 너를 이해하고 싶은 걸 보면, 아직도 너를 놓지 못하고 있나 보다.
왜 이리 내가 안쓰러워지는 이 관계에 나는 아직도 힘들어하는지 모르겠다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이어서
더 오래 간직됐을지도 몰라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