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리즘 수필?
"... 거리에 있는 어떤 진열창 앞에 서 있다가 반사되는 빛 때문에 진열된 물건 대신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나 자신이 나에게 방해가 되어 성가셨다. 이 모습은 내가 사실 나 스스로를 방해하고 있다는 상징과 같았으니..."
<리스본행 야간열차> 파스칼 메르시어 장편소설, 정은경 옮김. 비채. 110쪽
도서관에서 주관하는 에세이창작 수업을 몇 주째 듣고 있다. 지난 시간에 선생님께서 아포리즘 수필에 대해서 잠깐 지나가듯 소개해 주셨다. '아포리즘'이란 단어의 뜻은 얼핏 알고는 있었으나 수필 앞에 아포리즘이 붙은 모습은 생소했다.
'쇼펜하우어의 아포리즘', '니체의 아포리즘', '누구누구의 말'과 같은 책들이 많다. 대부분 저자들의 공통점은 철학자라는 것이다. 이렇듯 아포리즘은 철학적인 색채가 짙은 단어임에 틀림없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대략 이런 뜻이었다.
"철학과 문학을 버무려 함께 공감하고 사유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함축적인 문장으로 표현한 글" 이 '아포리즘 수필'이라고.
이상적인 철학을 현실적인 수필에 버무리면 담백한 맛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 또한 셰프에 따라 맛이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위의 글은 몇 달 전 책을 읽으며 필사를 해 놓았던 문장이다.
필사 노트와 순간순간의 메모장, 일기장을 구별 없이 쓰고 있다. 물론 노트는 세 권이다. 각각의 노트에 필사, 메모, 일기가 뒤엉켜 있다. 일기장으로 쓰던 노트를 거의 다 써간다. 해가 바뀌면 새 노트를 살 마음에 다른 노트에 남은 날들을 집어넣을까 하고 노트를 뒤적이다 발견했다.
아~! 이런 느낌이 '아포리즘 수필'이 아닐까 싶었다.
소설 속 문장이지만 말이다. 그 문장만 쏘~옥 꺼내어 보면 수필 같으면서도 뭔가 철학적인 질문도 하고 있다.
아포리즘 수필...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내 소양이 부족하니 우선 인용이 많을 듯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다 보면
나를 지우고 다른 나를 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