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색, 명도, 채도, 색상, 어감 따위의 미묘한 느낌이나 인상의 차이
뉘앙스 캐치는 내가 취약한 부분이다. 타고난 재능이 분명 있을 것만 같다.
타고난 재주도 없을뿐더러 직업특성상 발달이 되지 않은 것 같다.
누구보다 좁은 분야의 연구를 내가 가장 많이 해봤기 때문에 내가 전문가여만 하고 내가 그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만 한다.
청자가 아닌 화자인 경우가 많았다.
내가 가장 많이 해본 연구결과에 대해 확신이 없으면 레퍼런스로 인용될 수 없다. 그저 무능한 연구원이 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커리어에 대한 무력감의 타격은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일에 대한 애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에 대한 스트레스 지수가 꽤나 클 것이다.
내가 결과에 대해 확신 있게 말하지 못하면 모두가 불안해하고, 확신 있게 말한다 하더라도 불신에 가득 쌓인
질문들을 받을 수밖에 없는 직업이었다.
가설 > 검증> 결론을 팩트로 보여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결론이 팩트는 맞지만
항상 옳지 않다는 것을 안다. 항상 예외사항이 발생하고, 가설 자체가 틀린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일을 할 때 내 결과에 대한 공유를 할 때가 가장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또 그 조심스러운 태도가 때로는 물어뜯기기 좋은 발언이 되기도 했다.
이런 문제로 검증 조차 하지 않은 허상의 기술로 상대방을 설득하는 연구원도 종종 있다.
내가 읽은 책 중 ‘개소리는 세상을 어떻게 정복했는가’와 ‘집단 착각’이 이런 나의 고민을 조금이나 위안해 주었다.
내가 어떤 말을 했을 때 무조건적으로 물어뜯는 사람들이 있었다. 부서 간의 입장차이인 것을 이해하지만,
그 사람들에게 조용히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었다.
‘진실의 가장 큰 적은 거짓말이 아닌 개소리를 믿고 싶은 당신의 마음이다. 당신이 오늘 보고 들은 것은 진실입니까?’
(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 중에서)
‘믿음은 진실이 중요하지 않다. 무엇을 믿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믿음은 집단의 힘에 의해서 만들어질 수 있다.
계속 반복되는 정보를 통해서 믿음은 더욱 공고히 만들어진다.’
(집단착각 중에서)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을 만나보면 선척적으로 뉘앙스 캐치와 소통에 능한 사람들이 또한 그런 직업을 잘 찾는 것 같다.
그리고 후천적으로 예를 들면, 문만 열고 들어와도 저 사람이 어디가 아픈지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한 상담사나 의사들,
또는 상대방이 어떤 걸 원하는지 캐치해야 하는 영업/마케팅/기획 같은 전략가와 협상가들의 분야에서는 더욱더 그런 능력이 빛을 발한다.
핑계일수도 있고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타고난 캐치업 능력의 부족과 발달되지 않은 스킬이
개인관계에서 꽤나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종종 생겼다.
하지만 반대로 논리적인 반증에 대한 질문에도 오픈 마인드라고 생각하는 장점도 있다.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다…. 이 부분은 늘 경계하려고 주의한다…)
모든 것이 다 논리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도 있다. 가족과 친구의 관계라면 더욱 그렇다.
그럴 때 필요로 하는 것이 그 사람들이 말하는 뉘앙스를 캐치하는 능력인 것 같다.
이 능력은 분명 발달될 수 있는 스킬이다.
나 또한 감정적인 언어로 말을 하고, 그런 정리되지 않은 감정을 내뱉을 때,
심지어 감정적인 말조차 내뱉지 않았을 때도 그 미묘한 비언어적 요소를 뉘앙스로 캐치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
대화로 해결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고 확실하지만 때로는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그냥 알아주었으면 하는
그런 지친 날들이 있다. 그런 날에는 그게 또 그렇게 따뜻했다.
대체로 뉘앙스캐치가 빠른 사람들은 본인의 마음을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때로는 답답하지만, 그들을 위해서 나도 그들의 뉘앙스를 캐치하려고 노력 중이다.
부작용이 날 때도 많지만 노력하다 보면 그런 고급스러운 뉘앙스 캐치 스킬을 가질 수 있겠지 하고.
그런데 정말 영어의 뉘앙스를 탐색하는 데는 꽤나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그전에 비언어적 뉘앙스 캐치 능력이 발달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