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8. 13
하도 기후가 이상해져 이제는 절기와 맞지 않는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입추가 되자 확실히 바람이 선선해졌다. 밤에 창문을 열면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불고 아침에 눈을 뜨면 어느 결에 이불을 덮고 있다. 일어나자마자 더위에 지쳐 에어컨을 켜지 않아도 된다. 30도, 31도를 오르내리는 날씨는 아주 상쾌하게 견딜만한 수준이다.
인간의 외양이 기후환경에 맞게 진화한다는데, 외양뿐 아니라 몸속도 달라지는 것 같다. 30도 정도는 에어컨 없이 너끈히 지낼만해졌으니 말이다. 더위가 한 풀 꺾일 것처럼 비가 한바탕 쏟아진다. 아주 거세게 하루 종일 내린다. 호우주의보에 이어 호우경보가 났고 하천이 범람하거나 산사태가 날 수 있으니 유의하라는 안전문자가 온다. 컴퓨터 모니터에 집중하며 일하다 보면 밖에 내리는 비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를 때가 많다. 그러다 안전문자를 볼 때 비로소 비가 심각하게 내리고 있음을 지각하고 걱정한다.
이럴 때는 모르는 게 약이다 싶다. '아는 게 병, 모르는 게 약'이란 말은 나같이 예민하고 불안지수가 높은 사람에게 적합한 말이다. 안 해도 될 걱정까지 사서 하게 된다. 그래서 사건, 사고 뉴스를 일부러 외면하는 일이 많다. 싱크홀이 생겼다거나 어디에 불이나고 홍수가 났다는 뉴스는 거기에 사는 사람들이 걱정됨과 동시에 '내가 있는 곳은 안전한가?'라고 확장되어 괜히 불안해진다. 전대미문의 총기사건, 묻지 마 폭행, 데이트 폭력 등의 뉴스를 접하면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는 마음이 들어 괜한 경계심에 힘들어진다. 그래서 듣고 보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사회적 동물이 아주 모른 척하고 살 수가 없다. '아는 게 힘'이란 말처럼 시의성 있는 뉴스는 사람들과 대화할 때 아주 유용하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즐겁다.
사실 아는 것 자체는 '병'도 '힘'도 아니다. 아는 것을 어떻게 쓰느냐가 문제다. 그 분야에 대해 잘 안다며 남의 말 듣지 않고 무시하거나 섣부르게 알면서 모든 것을 아는 양 우쭐댄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빌런이 된다. 내게는 '힘'일지 모르지만, 남에게는'병'을 준다.
모든 것이 상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