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9. 14
6월 초 어느 날, 아빠가 자전거 타이어 바람이 빠져 공기를 넣었는데 자꾸 바람이 빠진다고 하셨다. 튜브가 고장 난 것 같다고 하셨다. 그 말씀을 대수롭지 않게 넘겨 들었다. 항상 자전거를 타고 다니시고 고장 나면 수리해서 타셨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러실 줄 알았다. 2주일쯤 후에, 자전거가 고장 나 다니기 힘들다고 하셨다.
아빠는 무릎이 좋지 않은 관계로, 걷는 속도가 느릴 뿐 아니라 5분 정도만 걸어도 힘들어하신다. 반면 자전거를 타시면 못 가는 곳 없이 자유롭게 다니신다. 무릎 수술을 고려한 적 있으나, 전신마취에 2주 정도 입원해야 한다는 설명을 들으신 후로는 수술은 고려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그냥 다닐 수 있는 데까지 다니겠다고 하셨다. 아빠에게 자전거는 이동수단이자 근력운동 수단이다.
아빠가 늘 다니시던 수리점이 멀어서 끌고 가실 수 없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예전에는 천천히라도 가실 수 있었는데 이젠 그마저도 쉽지 않으셨던 거다. 그렇다고 내가 끌고 가기에도 시간상, 거리상 마땅치 않았다. 차로 가져가면 좋은데 자차는 없고 택시에 실을만하지도 않다. 출장 수리를 부르려고 했는데 아빠는 손사래를 치며 반대하셨다. 출장비만 비싸다고. 어차피 날이 너무 더워 자전거를 탈 수 없으니 여름을 그냥 지나 보자고 하셨다.
고치느니 새 자전거를 사드리려고 알아봤다. 아빠 나이를 고려해 두 발 자전거가 왠지 위험할 것 같아 이 참에 세발자전거를 사드리려고 알아봤는데 인터넷에 있는 건 모두 중국산, 수입산이었다. 매장에 가서 눈으로 보고 사고 싶었는데 삼천리자전거 매장에는 없었다. 카탈로그나 인터넷을 보고 주문하라는데 유아용인 데다 너무 비쌌다. 연로하신 어른이 탈만한 자전거가 뭔지 알 수 없었다. 어떤 사람은 삼륜 자전거는 회전축이 넓어서 두발보다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고 했다. 수입산은 상대적으로 꽤 저렴했는데 혹시 고장 나면 부품 등 수리가 가능할지 몰라 망설였다.
그렇게 이리저리 알아보고 또 뉴질랜드로 여행 다녀오며 머릿속에 해결과제로 남긴 채 시간이 흘렀다. 어느 주말, 집에만 계셔서 답답해하시는 것 같아 임시방편으로 따릉이라도 타시게 할까 알아봤는데 탑승자가 온라인 결제를 해야 하는 걸림돌이 있다. 아빠는 인터넷을 못하시고 앱 사용법을 알려드리기도 쉽지 않을 거 같았다. 그냥 하루라도 바람 쐬시란 의미로 내 이름으로 결제하고 따릉이를 대여했다. 아빠에게 타보시라고 했는데 마치 초보자처럼 어려워하셨다. 두 달이 지났다고 자전거 타는 법을 잊은 것도 아닐 텐데 중심 잡는 걸 힘들어하셨다. 그렇게 한 시간쯤 동네를 타시며 적응하신 끝에 제법 잘 타시게 됐지만 기분 좋은 표정이 아니셨다. 나도 괜히 더 걱정이 늘었다.
자전거는 답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며칠 후 아빠도 "내 자전거가 아니어서인지 무겁고 불편하다"라고 하셨다. 나는 다리 불편한, 나이 드신 분들이 타는 전동카트를 검색했다. 그걸 뭐라고 부르는지 몰라 이름을 알아보는 것만으로도 꽤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검색하면 휠체어만 떠서 한참 애먹었다. 결국 알게 된 이름은 '노인 전동스쿠터'였다. 다리가 불편하다는 등급을 받으면 국가에서 지원을 한다고 한다. 전동스쿠터 가격이 200만 원이 넘는 고가인데 최대 170만 원까지 지원해준다고 한다. 대신 등급을 받아야 하는데 장애인도 아닌데 가능한 일인지 궁금했다. 그리고 아빠에게 설명하면 아주 못 걷는 사람 취급한다고 서운해하실 것 같았다. 그래도 내 마음은 이게 제일 안전할 것 같았다. 다행히 한 회사에서 2주 체험 상품을 운영했다. 2주간 타보고 잘 맞으면 구입하고 아니면 체험으로 끝내면 되었다. 2주 대여비만 내면 되므로 부담도 적었다. 아빠가 기분 상하시지 않도록 잘 설명을 드렸다. 마침 아빠는 답답한 마음에 동네를 걸어 다니시다가 너무 지치고 힘들어하시던 와중이었다. 아빠는 내 설명을 씁쓸하게 들으시고는 좀 생각해 보자고 하셨다. 불같이 화내지 않으신 것만으로도 1차 고비를 넘긴 셈이었다.
일주일이 지나자 "한번 타보자"라고 하셨다. 2주 대여를 신청했다. 그런데 그날 저녁 한 아파트에서 전동스쿠터 배터리 과열로 불이 났다는 뉴스를 봤다. 불안증이 높은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아빠도 그 뉴스를 보시더니 위험한 거 아니냐고 하셨다. 사실 그렇게 위험하진 않을 텐데 우리는 괜히 겁을 집어먹고 취소했다. 그러자 아빠의 이동수단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허탈했다. 다시 원점이었다. 두 발 자전거를 타시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이것저것 알아봤는데 어느 것도 흡족하지 않다.
며칠 후 아빠는 타던 자전거를 수리하는 게 제일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익숙한 자전거라 고치면 괜찮을 거라고 하셨다. 하긴 수년간 타시던 자전거고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내가 너무 과한 걱정을 했나 싶었다. 이번에는 출장 수리 부르는 걸 동의하셨다. 출장수리 잘하는 곳을 지피티에게 물어봤다. 그런데 지피티가 몇몇 구청에서 무료수리를 해준다는 내용을 알려줬다. 우리 동네를 검색하니 작년에 '찾아가는 자전거 수리센터'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지피티는 올해 일정은 모르겠다며 작년 일정을 보여줬다. 난 구청 홈페이지에 직접 가서 검색했다. 올해 일정이 떴다. 우리 동네 주민센터를 찾았더니 운 좋게도 내가 검색한 그다음 날부터 일주일간 수리를 해준다고 떴다. 주민센터는 집에서 도보로 5분도 안 걸리는 가까운 거리다. 아빠 걸음으로 가도 갈만한 거리다. 난 마치 금광을 발견한 마냥 흥분해서 말했다.
"아빠, 주민센터에서 내일부터 자전거 무료 수리해 준대요. 부품이 필요하면 실비만 내면 된대요!"
"그래! 잘됐네. 거긴 내가 자전거 끌고 갈 수 있지"라고 하시며 웃으셨다.
다음날 낮에 아빠가 전화하셨다. "아주 깔끔하게 잘 고쳤어. 튜브 바꾸는데 7천 원 밖에 안 들었어. 안전 점검도 다 해주고 아주 친절하게 잘해줬어"라고 하시며 신나 하셨다. 저녁에 집에 들어갔더니 부모님은 자전거 수리한 얘기를 또 하시며 마치 내가 고쳐드린 양, 나 아니었으면 몰랐을 텐데 어쩜 그렇게 딱 맞게 수리를 잘했는지 모르겠다며 좋아하셨다. 내 어깨가 기분 좋게 올라갔다. 엄마는 "자전거도 무료로 수리해 주고 세상 참 좋아졌다"며 정말 좋은 세상이란 말씀을 연신 하셨다.
나도 근 두 달간 마음에 얹혀있던 과제를 해결해 체증이 내려간 듯 시원했다. 아빠는 자전거 수리 후 처음 하루, 이틀은 타는 걸 힘들어하시더니 이내 익숙하게 타신다. 바람이 제법 시원해진 요즘은 매일 타고 다니신다. 자전거로 단련하니 무릎도 덜 아픈 것 같다며 좋아하신다.
PS. 우리나라는 점점 복지가 좋아짐을 느낀다. 평소에는 관심 없어 모르지만, 일이 닥쳤을 때 알아보면 꽤 쏠쏠한 정보가 많다. 그 노인 전동스쿠터 지원금도 그렇고. 자전거 무료수리 서비스가 있는 줄 전혀 몰랐는데, 인공지능 덕을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