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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어리 Oct 22. 2024

13 합평 의견 반영하여 다시 쓰기

글쓰기를 배우는 시간 (13)

오늘 글쓰기 클래스 합평 글은 내 글이었다. 스크린에 글이 올라오자 두근두근!



장례 말고 발굴!


   유년 시절의 첫 기억! 30대의 엄마는 부엌에, 서너 살쯤이었던 것 같은 나는 방에 있다. 방과 부엌 사이의 문은 틈이 성긴 여닫이다. 문틈으로 엄마가 뭘 하시나 내다보았고 아궁이 앞에 앉아계시던 엄마와 눈이 딱 마주쳤다. 엄마는 무서운 눈을 하고 문을 열었다. “왜 엿봐. 당당하게 봐야지. 왜 엿보냐고!”라고 시작된 엄마의 말들은 너무 크고 빨랐으며 꾸지람은 길고 무서웠다. 목이 콱 막혀 울 수도 말할 수도 없던 그날은 잊히지도 않고 생생하게 자주 생각났다. 그때마다 억울함인지 공포인지 수치심인지 모를,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함께 찾아왔다.


   그때의 엄마와 비슷한 나이가 되었을 무렵 엄마에게 그날을 물었으나 생각나지 않는다 하셨다. 반갑지 않은 기억과 감정이 찾아오는 것이 싫어서 이야기를 지어 떠나보내기로 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최대한 끌어모아 개연성 높은 이야기를 만들었다. 엄마는 시모에게 볶여대며 고단한 하루를 보냈을 것이라고. 시모의 눈과 닮은 눈을 가진 딸내미가 시모스러워 보이는 행동을 하자 화가 폭발했던 것이라고. 30대의 그 젊은 엄마도 위로가 필요한 하루였다고. 30대의 내가 30대의 엄마와 3살의 나를 모두 안아주는 엔딩장면까지 더해 이 이야기를 마음속에서 반복적으로 상영했다. 이런 기억 장례식은 효과가 있었던지 예전만큼 자주 생각나지는 않았고 떠오르더라도 감정 없이 건조하게 만날 수 있었다.


   이제 80대가 된 노모에게 그날이 기억나느냐고 또 물었다. 전혀 안 난다신다. 상황을 자세하게 이야기해 드렸더니, “엿봤다고 혼냈겠지. 우리 엄마도 그런 짓 아주 싫어했지. 했다간 크게 경을 쳤어.”라고 하신다. 예상 못한 답변이다. 웃음이 난다. 내가 지어냈던 이야기와 비슷한 데가 없다. 엄마는 외할머니에게 당한(?) 육아법을 나에게 그대로 실천했을 뿐이다.

 “그게 그렇게 화낼 일이었을까요? 그러지 말라고 좋게 말해도 됐을 텐데?”

 “미안하다.”

 “아니, 외할머니 말예요.”

 “외할머니가 성질내면 나는 도망 다녔어. 한참 있다 풀어지시면 그때 집에 들어가면 돼.”

 “난 그때 도망 다닐 수 있는 나이도 아니었는데?”

 ”넌 도망 다닐 필요가 없었지. 때리지 않았잖아.”

 “그러네요. 때리지는 않으셨죠.”

 “......”

 어릴 때 자주 도망 다녔던 엄마는 침묵으로 도망 중이실까? 쫓기는 10살 엄마가 가여워 추궁으로 들릴 것 같은 말은 멈추고 화제를 바꾼다. “외할머니는 어떤 분이셨어요?”


 장례를 치를 일이 아닌가 보다. 외할머니 이야기부터 다시 써야겠다.



급우들과 강사님들의 합평 의견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았다.

                              

1. 좋았어요!(파란색 표시)

(1) 글의 구조가 맛있게 전개되었다.

(2) 엄마의 궁색한 표정이 그려지는 말줄임표의 사용이 좋았다.

(3) 마지막 줄은 한 줄이 문단의 기능을 하고 있는데 통상적인 문단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지만 적절하게 잘 사용되었다.


2. 생각해 보고 싶어요.(보라색 표시)

장례라는 단어는 글쓴이가 새롭게 의미를 부여한 단어인데 제목에 등장하는 게 적절할까?


3. 아쉬웠어요!(빨간색 표시)

(1) 긴 문장은 짧게 끊어 쓰면 좋겠다.

(2) 앞뒤 문장에 담겨 있는데 굳이 다시 말하는 문장은 삭제하는 것이 좋겠다.

(3) 처진 살처럼 탄력이 쳐지는 부분들이 있다. 없애면 탄탄한 문장이 될 것 같다.


합평 의견을 반영하여 다시 써 보았다.



 보내기보다 더 잘 만나보기!


   유년 시절의 첫 기억! 30대의 엄마는 부엌에, 서너 살쯤인 나는 방에 있다. 방과 부엌 사이의 문은 틈이 성긴 여닫이다. 문틈으로 엄마가 뭘 하시나 내다보다 아궁이 앞에 앉아계시던 엄마와 눈이 딱 마주쳤다. 엄마는 무서운 눈을 하고 문을 열었다. “왜 엿봐. 당당하게 봐야지. 왜 엿보냐고!”라고 시작된 엄마의 말들은 너무 크고 빨랐으며 꾸지람은 길고 무서웠다. 목이 콱 막혀 울 수도 말할 수도 없던 그날은 잊히지도 않고 생생하게 자주 생각났다. 그때마다 억울함인지 공포인지 수치심인지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함께 찾아왔다.


   그때의 엄마와 비슷한 나이가 되었을 때였다. 엄마께 그날을 물었으나 떠올리지 못하셨다. 반갑지 않은 기억과 감정이 찾아오는 것이 싫어서 이야기를 지어 떠나보내기로 했다. 독한 시모의 눈과 닮은 눈을 가진 딸내미가 시모스러워 보이는 행동을 하자 화가 폭발했던 것이라고. 30대의 그 젊은 엄마도 위로가 필요한 하루였다고. 30대의 내가 30대의 엄마와 3살의 나를 모두 안아주는 엔딩장면까지 더해 이 이야기를 마음속에서 반복적으로 상영했다. 이런 기억 장례식은 효과가 있었던지 예전만큼 자주 생각나지 않았다. 혹여 떠오를 때도 감정 없이 건조하게 만날 수 있었다.


   이제 80대가 된 노모에게 그날이 기억나느냐고 또 물었다. 전혀 안 난다신다. 상황을 자세하게 이야기해 드렸더니, “엿봤다고 혼냈겠지. 우리 엄마도 그런 짓 아주 싫어했어. 했다간 크게 경을 쳤어.”라고 하신다. 예상 못한 답변이다. 웃음이 난다. 지어냈던 이야기와 비슷한 데가 없다. 엄마는 외할머니에게 당한(?) 육아법을 나에게 그대로 실천했을 뿐이다.

 “그게 그렇게 화낼 일이었을까요? 그러지 말라고 좋게 말해도 됐을 텐데?”

 “미안하다.”

 “아니, 외할머니 말예요.”

 “외할머니가 성질내면 나는 도망 다녔어. 한참 있다 풀어지시면 그때 집에 들어가면 돼.”

 “난 그때 도망 다닐 수 있는 나이도 아니었는데?”

 ”넌 도망 다닐 필요가 없었지. 때리지 않았잖아.”

 “그러네요. 때리지는 않으셨죠.”

 “......”

 어릴 때 자주 도망 다녔던 엄마는 침묵으로 도망 중이실까? 쫓기는 10살 엄마가 가여워 추궁으로 들릴 것 같은 말은 멈추고 화제를 바꾼다. “외할머니는 어떤 분이셨어요?”


 장례를 치를 일이 아닌가 보다. 외할머니 이야기부터 다시 써야겠다.



   고치고 나니 문장이 훨씬 단정해진 것 같다. 독자 여러분들도 읽기에 더 편해지셨을까? '장례 말고 발굴'이라는 제목을 '보내기보다 더 잘 만나보기'라고 고쳐 봤는데 어느 쪽이 더 나은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 제목은 좀 더 고민해 보기로 하자.





from 51세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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