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5월 16일, 런던 동부의 한 고층 아파트에서 한 여성이 아침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가스레인지에 불을 붙였다. 작은 폭발이 일어나면서 창문이 산산조각 났다. 그러나 불과 몇 초 뒤, 더 큰 비극이 벌어졌다.
폭발 충격으로 건물 외벽이 떨어져 나가면서 상층부가 연쇄적으로 무너졌다. 22층짜리 건물의 한쪽이 순식간에 붕괴되면서, 수십 톤의 콘크리트와 철골이 쏟아져 내렸다. 이 사고로 4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것이 로넌 포인트 붕괴 사고다.
단순한 가스 폭발이 왜 건물 전체의 붕괴로 이어졌을까?
사고의 원인은 무엇이며, 이 사건이 건축법과 설계를 어떻게 바꾸었을까?
그리고 5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있을까?
2. 영국의 주택 위기와 위험한 건축 실험
1960년대 영국은 극심한 주택난을 겪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도시 재건이 진행되면서 인구가 급증했지만, 주택 공급이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정부는 빠른 해결책이 필요했고, 대규모 고층 주택 건설을 최우선 정책으로 내세웠다. 이 과정에서 도입된 것이 바로 프리패브(Prefabricated) 공법이었다.
프리패브 공법은 공장에서 미리 제작한 콘크리트 패널을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으로,
• 건설 속도가 빠르고
• 비용이 저렴하며
•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안전성을 희생하고 속도와 비용 절감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이었다.
이 방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은 철저한 구조적 검토 없이 패널을 볼트와 얇은 모르타르(시멘트)로 연결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이는 단순한 시공상의 문제가 아니라, 건축의 근본적인 안전 개념을 무시한 것이었다.
3. 붕괴의 순간: 왜 건물이 한순간에 무너졌을까?
사고 당일, 18층에 거주하던 한 여성이 가스레인지에 불을 붙였다. 가스가 미세하게 새고 있었던 것을 알지 못한 채.
• 폭발 자체는 강력했지만, 건물 전체를 붕괴시킬 정도는 아니었다.
• 그러나 벽체가 건물의 하중을 견디는 핵심 구조 역할을 하고 있었다.
• 폭발로 인해 18층의 외벽 패널이 떨어져 나가자, 위층을 지탱하던 힘이 사라졌다.
• 결과적으로 19층부터 22층까지의 상층부가 아래로 떨어지면서 연쇄적으로 붕괴했다.
이 사고는 건축 구조에서 “진행성 붕괴(Progressive Collapse)”의 대표적인 사례로 기록되었다.
건축 설계에서 중요한 원칙 중 하나는, 일부가 손상되더라도 전체 구조가 유지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그러나 로넌 포인트는 이 원칙을 완전히 무시한 채, 한 부분이 손상되면 전체가 붕괴하도록 설계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4. 왜 로넌 포인트는 붕괴할 수밖에 없었나?
1) 약한 구조적 연결 – 조립식 건물의 치명적 단점
로넌 포인트는 콘크리트 패널을 작은 볼트와 얇은 모르타르로 연결하는 방식으로 지어졌다.
즉, 각 벽과 바닥이 독립적으로 조립된 구조였고, 한 부분이 무너지면 연쇄 붕괴가 일어날 위험이 높았다.
이것은 고유의 하중을 견디는 내력벽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으며, 특정 부위가 손상되면 건물 전체가 무너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2) 하중을 분산할 구조적 보강이 부족
전통적인 철근콘크리트 건물은 한 부분이 손상되어도 기둥과 보(Beam) 시스템이 하중을 분산시켜 붕괴를 방지한다.
그러나 로넌 포인트는 이러한 보강 없이 얇은 콘크리트 패널만 서로 지지하는 구조였다.
즉, 건물의 무게를 분산할 구조적 여유가 없었고, 작은 손상이 대형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3) 검증 없는 대량 건설 – 건축 속도전이 부른 비극
로넌 포인트는 당시 영국 정부가 “더 빠르게, 더 저렴하게” 주택을 공급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지어졌다.
이에 따라 충분한 구조적 검토 없이 대량으로 건설된 고층 주택들이 도시 곳곳에 세워졌다.
결과적으로 로넌 포인트는 “건축의 안전성보다는 경제성이 우선된 대표적인 실패 사례”가 되었다.
5. 로넌 포인트 이후 건축 기준은 어떻게 바뀌었나?
로넌 포인트 붕괴 이후, 영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건축법이 대대적으로 개정되었다.
• 진행성 붕괴 방지법 도입: 건물의 일부가 손상되더라도 전체가 무너지지 않도록 구조적 보강을 필수화
• 프리패브 공법의 안전성 강화: 패널 간 연결 부위를 더 튼튼하게 설계하고, 철강 보강을 추가
• 고층 건물에서 가스 사용 제한: 중앙난방 시스템 도입 및 가스 사용 시 철저한 안전 점검 필수
• 건축 전 강도 테스트 의무화: 구조 검토 없이 건설하는 것을 금지하고, 사전 시뮬레이션 및 테스트 절차 강화
이후 고층 건물은 단순히 튼튼한 것이 아니라, 일부가 손상되어도 전체 구조가 유지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는 원칙이 확립되었다.
6. 하지만, 우리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로넌 포인트 붕괴 이후 건축 기준이 강화되었지만,
비슷한 사고는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 2021년 마이애미 챔플레인 타워 붕괴 – 유지보수 부족으로 구조적 결함이 방치되며 붕괴
• 2023년 튀르키예 지진 아파트 붕괴 – 내진 설계 미흡으로 다수의 고층 건물 붕괴
결국 건축의 기본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
건물은 인간을 보호해야 하며, 비용 절감이 안전보다 앞서서는 안 된다. 로넌 포인트가 남긴 교훈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이 우리가 또 다른 재난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