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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공이 Jul 22. 2024

런던에서 카모플라쥬

내가 보이지 않을 거란 착각 속에서


*


나는 런던에서, 학교에서 가끔 참 바쁘다.


몸이 바쁜 건 아니고 마음이 바쁘다.


사람들이 마음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졌다면 나의 마음을 보고 이렇게들 말할 거다. 당신의 마음은 마치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늦잠을 잔 직장인처럼 너무나도 분주하군요!

그러면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지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알아요, 안다고요. 라고 대답하겠지.


*


예술가 지망생들이 모여있는 학교라는 곳은 감정들이 모두 날 것 그 자체다. 축축한 흙냄새가 난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그렇다.) 예술이 사람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져다주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행복하고 근사하게 살겠다고 번지르르한 삶만을 동경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모두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 잘하고 싶어서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람들, 자신의 가치를 알아봐 달라고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르며 사랑을 외치는 사람들….


그들 사이에서 나는 그 끈적한 감정들이 나의 몸에도, 마음에도 달라붙을까 봐 무서워서 도망치느라 바쁘다. 피곤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있는 듯, 없는 듯 나를 더 둥글게, 무디게 만든다. 그래야 조금은 숨 쉴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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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여기서 모순이 발견된다. 맹점이 있다.


그 끈적한 감정들로부터 도망치려고 달리고 달리다 보면 정말로 나를 지치게 하는 게 있다.


나도 인정받고 싶어, 나도 잘하고 싶어, 나도 누군가가 나의 가치를 알아봐 줬으면 좋겠고, 나도 사랑받고 싶어….


끈적한 마음은 이미 오래전부터 뱀처럼 똬리를 틀고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그들보다 아닌 척했던 내가 훨씬 더 오만할지도 모른다.


내 안의 소리들은 나의 자아를 더욱 비대하게 만든다.


나도 인정받고 싶어, 나도 잘하고 싶어, 나도 누군가가 나의 가치를 알아봐 줬으면 좋겠고, 나도 사랑받고 싶어….


나는 무엇으로부터 그렇게 도망치고 싶었던 걸까.

무엇과 비교해서 더 고상해지고 싶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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