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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MIN Nov 06. 2024

『위험한 세계』

Part 8. X-X-99

  1990년대의 대표적인 대중음악 레이블 중 하나인 하나음악에서 본격적으로 곡을 발표한 윤영배는 이후로도 제법 오랫동안 자신의 이름을 건 앨범을 내지 않았다. 2010년대에 이르러 그는 세 장의 앨범을 냈다. 첫 앨범인 『이발사』 EP는 기타와 목소리만 쓴 다섯 곡이, 열두 곡이 실린 풀 랭스 앨범 이상의 만족감을 선사하는 앨범이었다. 두 번째 앨범인 『좀 웃긴』은 자신이 관여한 마스터링 버전과 소위 ‘관행적으로’ 마스터링한 버전을 나란히 실었다. 우리가 파악했다 믿은 전부가 사실 시스템이 파악한 전부일 수도 있다는 점을, 그는 관습적 사운드와 자신의 사운드를 나란히 놓는 방식으로 지적했다. 윤영배는 이런 독특한 사유와 실천 주의적인 행보를 계속 이어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소외된 옛 우물 하나를 발견했다. 


  이 앨범은 그 옛 우물의 지하수면 위에 비친 어두운 세계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듯하다. 이 앨범의 ‘강한 말’을 노래하는 윤영배의 목소리는 은근하고 낮다. 이 앨범의 사운드 또한 윤영배의 낮은 목소리를 잡기 위해 저음부를 강조한다. 「자본주의」와 「구속」의 강한 사운드는 이 앨범의 믹싱 덕분에 그 결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 결을 온전히 살리기 위해 그이는 소리를 ‘듣기 좋게’ 가공하는 안전장치를 거부했다. 마스터링에 대한 의구심을 사운드로 실천한 이 앨범의 사운드는 유기농 농작물처럼 꺼끌꺼끌하다. (이 앨범의 거친 질감은 우리가 기존에 들은 깔끔하고, ‘친절’하며, ‘달콤한’ 사운드를 역설적으로 떠올리게 한다.)  


  이 앨범은 바로 꺼끌꺼끌한 사운드 하나로 세상 모든 ‘질서’에 저항한다. 앨범의 중심에 자리한 「점거」와 「위험한 세계」가 드러내는 대상은 너무나도 명확하다. 철탑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는 자의 피로 어린 절실한 분노를 그대로 이어받은 「점거」의 세션은 점차 프리재즈에 가까운 잼 연주로 변화한다. 「위험한 세계」는 바로 그 탈진에서 출발한다. 관조적인 시선으로 저항하는 이의 대지를 그리는 윤영배의 낮은 목소리는 투쟁에 지친 사람들과 함께 ‘어깨동무’ 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 앨범이 지닌 ‘흙 가슴’은 그야말로 향기롭고 웅숭깊다.      


 「목련」에 깃든 체념의 서정을 천천히 부르는 대목이나, 「농부의 꿈」이 장조와 단조를 넘나들며 부르는 (자율적으로 지키는) 4.4조의 가사, 「빈 마을」의 섬세한 연주는 바로 저 ‘어깨동무’를 염두에 둬야 제대로 작동한다. 세 곡이 지닌 결은 고스란히 ‘위험한 세계’에서 얻어왔다는 사실을 그는 일관된 어조와 세션과 가사로 이야기한다. 


  앨범의 공동 편곡이자 기타 세션으로 참여한 이상순은 ( 「자본주의」의 인트로에 등장하는 리듬 기타 연주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앨범이 지닌 자연스러운 ‘저항’에 시니컬하며 건조한 톤을 도입하며, 윤영배의 ‘저항’에 확실한 무게를 싣는다. 김정렬의 베이스는 노이즈를 줄이면서도, 저음부를 키운 중용의 베이스 연주를 이 앨범에 입히며, 앨범이 지닌 아우라를 고스란히 청자에게 전달한다. 「위험한 세계」의 후반을 비롯하여 여러 곡에 등장하는 박용준의 키보드는 그럼에도 여전히 놓을 수 없는 ‘대답’의 희망을 청자에게 자연스레 환기시킨다. 


  신자유주의(궁극적으로는 자본주의)라는 거대 시스템을 직시하며, 「선언」은 말한다. 우리는 네게 우리를 소모할 권리를 주지 않았다고. 사람은 결국 다른 사람의 마을이 되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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