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IMIN Nov 13. 2024

『The Anecdote』

Part 8. X-X-56

  「Back in time」의 ‘서사’를 이야기하는 이센스의 플로우는 여유롭기 이를 데 없다. 그는 분명 「The Anecdote」의 고통 속에서 얻은 자존심을 더 밀어붙일 수도 있었다. 그는 거기서 더 나가지 않는다. 오비가 프로듀싱한 비트 또한 중간중간 여유롭다. 그 덕분에 차분하게 지난날을 회고하는 이센스의 유연한 플로우가 어느새 확 드러난다. 이센스의 랩이 지닌 개인적인 어투가 무척이나 섬세한 영역에 닿는 모습까지도 자세히 들을 수 있을 정도다.


  이센스는 늘 자기 말로 랩 하는 사람이다. 남을 디스하는 대목에서조차 언제나 그의 플로우가 그의 독특하고 타당한 논리를 만들었다. 그의 디스가 잘 벼른 면도날처럼 날카로울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게 정말 그의 생각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그의 랩엔 언제나 그의 지문이 묻어있다. 당연히 흉내 내고 싶어도 흉내 낼 수 없다. 그의 랩을 흉내 내는 일은 그의 온몸을 다 통과해야만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센스의 재능뿐만 아니라 이센스가 치인 생계와 이센스가 짓눌린 협잡 또한 다 겪어야만 겨우 할 수 있기 때문이다.


  「Next Level」과 같은 ‘무용담’에서도 자신이 ‘용역’을 전전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이야기하는 그는, 자신이 랩퍼이자, 돈을 버는 ‘생계형 노동자’임을 함께 언급한다. 그는 또한 「주사위」의 솔직한 ‘고백’, 「10.18.14」의 조소, (비극을 자랑스러움으로 끝내 바꾸는) 「The Anecdote」의 개인적인 서사에서도 ‘생계’와 ‘협잡’을 꾸준히 언급한다. 바로 이 점이 이 앨범을 독창적인 ‘이야기’가 아닌, 실존적 고민과 직결된 ‘생존 체험’의 '작품'으로 만든다. 「Writer's Block」에서 랩 가사를 쓰며 느낀 이센스의 '표현' 또한 이러한 맥락 덕분에 일종의 실존적 고민처럼 들린다. 기술(記述)에 귀를 기울이다, 어느새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이센스의 개인적인 랩은 기존의 한국 힙합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깊이와 감정을 건드린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의 컴플렉스나 감정에 거리를 두며 산뜻하고 조리에 맞게 세밀히 표현한다. 이러한 미덕은 「Next Level」에서도 빛을 발하지만, 「Tick Tock(feat. Kim Ximya)」에서도 빛을 발한다. 자신의 강박증을 어떠한 포장도 하지 않은 채, 불필요하게 씩둑거리지 않는 그의 적나라한 (그러나 위트 넘치는) 표현은 곡의 통찰에 더할 나위 없는 당위성을 부여한다.

    

  이 앨범의 모든 비트를 전담한 오비의 프로듀싱은 철저하게 이센스의 플로우와 표현이 주는 뉘앙스에 맞춰졌다. 붐뱁을 바탕에 뒀음에도 샘플링조차 미니멀한 사운드에 초점을 맞춘 오비의 프로듀싱은 이센스의 플로우가 지닌 결을 해치지 않는다. 샘플링 보이스가 적극 개입한 「Next Level」의 비트 또한 이센스가 지닌 랩의 서사적 성격에 묘한 재치를 불어넣는다.

       

  「Unknown Verses」에서 과거의 편린들을 언급하는 일로 차례를 마친 이 앨범은 이센스의 인생에서 영감을 받은 ‘텍스트’를 거듭하여 차분히 곱씹는 듯하다. 그래서 스스로가 스스로를 복습한 듯이 들리는 이 앨범은 고통을 눙치지 않고 말하며 버틴 한 ’인간’의 철두철미한 결을 청자에게 이야기한다.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포함한 모두에게 독설을 날리길 주저하지 않는다. 이 앨범은 결국 자신의 온전한 삶과 느낌을 어떤 포장도 없이 솔직하게 (그리고 대수롭지 않게) 한 이야기가, (짐작조차도 할 수 없는) 비싼 물건이나 (기실 검증이 불가능한) 랩 스킬을 요란스레 자랑하는 ‘썰’보다 훨씬 더 깊숙이 청자에게 닿는다는 점을 훌륭하게 증명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20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