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8. X-X-50
(좋은 의미로) 어렵게 만든 작품은 어렵게 만든 이유가 있다. 이 앨범의 모든 사운드에는 의도가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연속적으로 들으라’라는 주문(注文)은 사실상 이를 위한 충고다. 숨기는 점도 말하는 점도 많은 이 앨범은 그러나 이유와 의도를 유보하고 들어도 좋은 순간이 너무나 많다. 우리가 영원히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는 진실을 비로소 마주할 때도, 이 앨범은 되레 가장 아름다운 볕뉘가 되어 듣는 이를 찡하게 한다. 「산들산들」의 후주 멜로디를 여리게 치는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맑고 화(和)한 눈물 한 방울이 굴러가는 걸 느낄 수 있다.
「가장 보통의 존재」의 첫 소절에서 (흔히 ‘당신’으로 잘못 부르는) ‘관심’을 보내는 와중에도, ‘애처롭다’라는 말 한마디가 구태여 더 올라간다. 이 구차한 애처로움이 곡의 화자가 느끼는 것인지, 아니면 관심 자체가 느끼는 것인지 이 앨범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이능룡의 차분한 기타 연주와 이석원의 목소리가 고르게 울려 퍼진다는 데에 있다. 곡의 전반부에서 주로 브러시를 사용하여 드럼을 연주하는 전대정은 후반부의 로우 파이 사운드에서 (라이드 심벌 연주와 더불어) 드럼 스틱으로 드럼을 연주한다. 그러나 그 또한 일정한 리듬을 친다기보다는 사운드의 뉘앙스에 맞게 치는 듯하다. 물 흐르듯이 유유히 흐르는 듯한 이 앨범의 사운드는 차라리 (치밀한 고민을 거듭하며 쌓은) 복잡한 구조를 지닌 건축물을 닮았다.
「너는 악마가 되어가고 있는가」의 기타 스트로크 연주와, 「아름다운 것」의 후반부에 은은히 깔리는 오르간 연주, 「의외의 사실」의 간주에 흐르는 트럼펫 연주를 연달아 들어도 생각은 바뀌지 않는다. 이 앨범의 자연스러움은 사소한 부분까지도 치밀하게 짠, 무수히 많은 계획이 획득한 결과다.「알리바이」의 엇나가는 사운드나, 어쿠스틱 기타 한 대로만 편곡한「100년 동안의 진심」에서조차도 이러한 노력(에 의한 긴장감)은 그대로다. 자연스러움을 획득하기 위해 이들이 벌인 싸움은, 싸움이 끝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안도의 한숨을 푹 쉴 수 있을 정도다. 개인적면서도 사소한 말 한 글자 한 글자를 음악 언어로 한 땀 한 땀 ‘번역’한 (이 앨범의 공동 작곡가인) 이능룡의 고통이 절로 느껴지는 대목이 많이 들린다. 드러머 전대정의 섬세한 드러밍을 유연한 베이스 연주로 보좌하는(베이스 객원 멤버로 참여한) 유정균 또한 관습적인 표현이나 코드 워크에 기대지 않는다. 키보드로 참여한 임주연과 트럼펫으로 참여한 배선용 또한 음악적인 감각이 돋보이는 훌륭한 연주를 이 앨범에 보탰다. 이 앨범의 다양한 ‘조각’을, 듣는 이가 듣기 쉽게끔 조정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한, 이 앨범의 공동 프로듀서 역할을 맡은 김대성의 공 또한 반드시 언급해야 하리라.
(이 앨범의 곡 중 ‘별’을 담당하는) 「인생은 금물」과 「나는」, 「산들산들」로 이어지는 대목만 다시 들은 적이 있었다. 결심했는데도, 결국은 나설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음을 처연하게 (혹은 가볍게) 노래하는 대목은 들을 때마다 눈물겹다. 장르나 사운드에 앞서, 이 앨범은 슬픔이니 기쁨이니 하는 ‘앙상한’ 개념으로 표현할 수 없는, 무척이나 섬세하고, 연약하며, 사소하고, 중요한 감정을 포착하고 있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 사실이 너무나도 산뜻하고 자명해서 가끔은 다시 듣기 어렵다. 그러나 나는 결국 (이 앨범의) 쓰라린 결말을 아는 데도, 「가장 보통의 존재」의 기타 소리를 다시 귀 기울일 것만 같다. 이 앨범의 결론이 이토록 자명하니 이 또한 자명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