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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MIN Dec 07. 2024

『낯선사람들』

Part 9. 42-37-41

  어쩌면 이 앨범은 리드미컬한 사운드로 뒤덮인 90년대 음악에 대한 음악 장인들의 응답 차원에서 제작된 앨범인지도 모르겠다. 하나음악의 이름을 걸고 내놓은 이 첫 번째 작품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집결했다. 열 개의 곡에 정원영과 조동익과 김현철 그리고 김광민이 나눠서 편곡을 맡은 대목만 봐도 그렇다. 정원영은 보다 재즈의 어법에 맞는 편곡을 내세웠다면, 김현철과 조동익은 보다 가요에 부합하는 편곡을 들려줬다. 김광민은 이 앨범에서 「색칠을 할까」 단 한 곡을 편곡하여 연주했지만, 허은영의 목소리와 잘 어우러지는 재즈풍의 피아노 연주를 들려줬다. 단지 그 둘만 들어있는 곡은 정취와 품격이 넘치는 이 앨범의 숨은 보석이 되었다.    


  정적인 가사에서 벗어나 유달리 구음과 구어체를 강조하는 이 앨범의 가사 또한 이채롭다. 고찬용이 직접 쓴 가사는 그의 독특한 감수성이 재치와 더불어 드러나는데, 그와 신진이 협업하여 쓴 「비닐 우산」이나 그가 가사를 쓴 「동물원」에서 이와 같은 현상이 특히 두드러진다. 이소라는 이 앨범에서 작사와 보컬에 참여했지만, 「왜 늘......?」이나, 「무대위에」와 같은 그이의 솔로곡을 전담하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들의 자기소개서라 부를 수 있는 (그리고 이소라가 직접 작사도 한) 「낯선 사람들」에서 백명석의 목소리를 받은 그이의 (재즈를 머금은) 나른한 목소리는 이 앨범의 성격과 감수성이 어디에 있는지를 즉각 청자에게 알려준다. 다섯 명의 목소리가 만든 하모니는 저마다 역할이 충실하고 분명하여 청자를 기분 좋게 만든다.       


  이 앨범의 곡 구조는 고찬용의 독특한 코드 워크를 바탕삼았기에 복잡다단하다. 이 앨범 참여한 수많은 드러머들과 조동익과 장기호를 비롯한 수많은 베이시스트, 훵크 기타의 장인인 최이철과 손진태와 같은 수많은 기타리스트의 참여는, (이 앨범에 들인 공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이 앨범에 깃든 복잡한 구조를 간접적으로 암시한다. 「왜 늘......?」의 간주에 등장하는 최이철의 어쿠스틱 기타 솔로(희한하게도 이 곡의 일렉트릭 기타는 리듬기타의 역할에 머물러있다.)는 기타 연주의 깊은 필링이 음량으로 결정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청자에게 명백히 알려준다. 손진태의 훵크 기타는 「동그라미 네모 세모」의 구음과 고찬용의 보컬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와와 페달을 조정하는 기타 연주를 들려주며 곡의 운치를 살린다. 여기서 등장하는(박성식 또한 이 곡에 신디사이저로 참여했다) 장기호의 베이스 또한 「무대위에」의 보컬 하모니와, 「무대위에 Reprise」의 (밴드 아침의 멤버로 유명한) 이영경의 비브라폰 연주와 손진태의 기타 연주와 김광민의 피아노 연주가 번갈아 솔로를 맡은 라인을, 멋들어지게 서포트한다. 김광석 앨범에도 참여한 베테랑 퍼커셔니스트 박영용 또한 이 앨범에서 「동그라미 네모 세모」의 활달한 에너지를 돋구는 퍼커션을 연주하였다.      


  이 앨범은 고찬용의 (좋은 의미로) 까다로운 곡을 좋은 보컬 하모니와 베테랑 세션의 저력으로 돌파한 앨범이다. 제각기 자신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조화로운 이 앨범의 사운드는 90년대 음악이 들려줄 수 있는 목소리의 전람회가 될 수 있었다. 가장 독창적인 목소리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뚝심 있는 사운드로 증명한 이 앨범은 ‘빛의 모자를 쓴 고래의 꼬리’가 지닌 감수성이 표백될 때까지 우리 곁에 머물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이 감수성이 표백될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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