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9. 65-61-32
이 앨범은 CD로 발매된 적이 없다. 그나마 그이의 베스트 음반에 이 앨범의 수록곡이 조각조각 나뉘어 실렸을 따름이다. 그 과정에서 두 개의 연주곡은 실리지 않았다. 나는 그 사실을 매우 안타깝게 여긴다. 특히나 「별리(경음악)」를 LP로 들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뼈아프다. 단순한 반주 트랙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10분 여의 시간 동안, 김수철이 하고자 했던 프로그래시브 음악과 국악의 결정체가 그 하나의 곡 안에 들어가 있다.
작은 거인의 2집이 김수철을 뛰어난 연주자(이자 작곡가)로 부각한다면, 이 앨범은 김수철을 뛰어난 작곡가(이자 뛰어난 연주자)로 부각한다. 혹자는 그가 변했다고 이야기했지만, 그는 기실 변하지 않았다. 게다가 (거의 재즈 원테이크 레코딩이라 부를 수 있는 작은 거인 2집의 앨범 레코딩에 비하면) 이 앨범의 레코딩 또한 그이는 의욕적으로 임했으니까. 그이는 자신이 쓴 곡 중에서 발라드나, 포크에 해당하는 곡을 모아 일종의 ‘은퇴 기념 앨범’ 차원에서 이 앨범을 만들었다. (물론 그는 「다시는 사랑을 안할테야」와 같은 ‘신나는 곡’도 여기에 넣었다.)
이 앨범의 실질적인 타이틀곡이자, (요즘은 ‘역주행’이라 일컫는) ‘재평가’의 근거가 된 「못다핀 꽃 한송이」는 이 앨범이 지닌 정조와 로직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김수철은 이 곡이 지닌 격조 높은 정조와 지적인 로직에 (스트링 세션을 비롯한) 서양 음악의 요소나, 록 장르를 절묘하고 단단하게 덧붙였다. 바로 그 단단함이 이 앨범의 ‘모놀로그’를 더욱 뒷받침하며 앨범 전체를 가득 채운다. (유재하의 작업에 앞서서) 작사와 작곡은 물론 편곡까지 자신의 손을 이뤘지만, 기실 그건 자신의 음악을 자신의 손으로 끝맺고 싶다는 마음이 발현된 결과이리라. 그래서일까. 이 앨범의 사운드는 부조 조각상의 그것처럼 굳건하다. 그는 아마도 석상을 만드는 심정으로 이 앨범을 만들었을 테다.
이 앨범에 실린 김수철의 목소리는 섬세하고 부드럽다. 전작까지만 해도 선명하고 명확한 그의 보컬은 이 앨범에 이르러 조금은 풀에 죽은 듯이, 그러나 자연스레 곡을 소화한다. 「못다핀 꽃 한송이」의 첫 벌스를 부르는 그의 보컬은 예전의 그가 미처 탐구하지 못했던 체념의 감정을 가득 머금었다. 예전에 발표한 「세월」과 (블루스를 머금은) 「내일」 같은 곡을 나긋나긋한 보컬로 다시 소화하는 김수철은 곡이 지닌 정조를 더욱 드높인다. 이와 같은 미덕은 「정녕 그대를...」이나 「두 보조개」와 같은 곡에서도 충분히 발휘되었다. 앨범 전체에 흐르는 ‘시간’과 ‘소멸’에 대한 두려움을 그이가 있는 그대로 힘들이지 않고 불렀기에, (비록 명확한 반응이 없었을지언정,) 이 앨범은 그토록 사무치게 들릴 수 있었던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시는 사랑을 안할테야」와 같은 곡에서도 그이는 ‘사랑이 괴롭다’라는 사실을 토로하고 있으니까.
어쩌면 김수철의 걸작 프로그래시브 록 앨범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이 앨범은 김수철이 그동안 고민한 지점들과 자신이 선보인 모든 곡을 제련하고 다듬어서 세상에 내놓은 작별 인사였다. 이 앨범의 재조명은 우연에 가까웠을지언정, 소멸의 시간을 두려워하고 떨면서도, ‘꽃을 피우겠다’는 의지 하나만을 남기고자 한 그의 결심은 이 앨범에서 나타난 음악적 지성과 더불어 찬란하게 빛난다. 이 앨범에 두고 ‘국악과 양악의 크로스오버’라느니, ‘고유한 정서의 리노베이션’라느니 하는 말은 그 찬란한 빛에 딸린 사족에 지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