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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MIN Dec 15. 2024

『오늘 나는』

Part 9. 21-20-31

  수록곡의 제목을 이으면 문장이 된다는 콘셉트를 이 앨범이 지녔다고 흔히들 말하지만, 후반부의 곡은「BARCOOL이란 CAFE에서」나 「무제」, 「반복」, 「짜증스러워」의 인트로 같은 ‘간주곡’으로 인해 중간중간 문장을 끊긴다. 마크 코브린의 레코딩과 믹싱으로 「오늘 나는」의 인트로 사운드나 「사랑해」의 LP 노이즈를 입우는 ‘정성’을 다한 팀이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이 앨범에 등장하는 바람둥이의 이야기는 기실 ‘사랑해’의 노래가 LP로 나오는 시점에서 갇힌 텍스트가 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BARCOOL이란 CAFE에서」의 대화 이후 모든 것은 급작스럽고 부담스러우며 삐걱댄다. (앨범에서 유일하게 현악 파트가 들어가 더 애절하게 들리는) 「많은 이별들은」을 노래하는 김원준의 보컬은 처절하기 이를 데 없고, 이야기는 사라진다. 현「짜증스러워」에서 멤버들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갑작스레 메타 서술로 이어지는 대목에서 우리는 바람둥이의 이야기가 머뭇대는 사람의 현실로 전환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여태까지 붙어있던 키보드나, 혼 섹션마저도 없는 단호한 밴드 사운드와 보컬과 멈블을 오가는 김원준의 목소리는 앨범의 콘셉트를 온통 흔든다. (훌륭한 콘셉트 앨범은 콘셉트에 종속된 앨범이 아니라, 콘셉트를 ‘구실’로 삼은 앨범이라는 사실을 또 한 번 증명하는 사례라 하겠다.)     


  박현준이 작곡하고 김원준이 가사를 쓴 「방황의 모습은」과 강기영이 작사, 작곡한 「나를 돌아보게 해」는 기실 앨범이 지닌 방황의 모습을 일상적인 풍경 속에 담아낸 긴 걸개그림이다. 방황의 거친 모습에서 혼 섹션이 가미된 도회적인 성격의 곡으로 자연스레 넘어가는 대목에서 이들은, 손 대면 손가락에도 파란 물이 들 것 같은 방황과 우울을 ‘막연한 마음’으로 불렀다. 이와 같은 방황은 그들의 현실과 매끄러운 사랑이 한데 얽혀있기 때문에 더욱 비범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 비범함마저도 「반복」의 루프가 잘근잘근 짓밟는 듯하다. 「끝」에 이르러 이젠 괜찮다고 말하는 박현준의 목소리엔 안도감보다 지친 체념이 더 실린 듯이 들린다.

     

  이 앨범의 사치스러운 사운드는 차라리 이들이 본 것을 음악에 충실히 반영한(혹은 풍자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나는」부터 이어지는 수록곡 또한 충분히 훌륭한 곡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정식이 색소폰으로 참여한) 「오늘 나는」에서 시작하여 앨범 전체에서 활약하는 강기영의 베이스 연주와 김민기의 드럼 연주, 박현준의 리듬 기타 연주는 치밀한 밀도와 독특한 개성을 동시에 발한다. (특히 「그녀의 모습을」을 연주하는 강기영의 베이스 연주는 왜 그가 당대의 베이시스트인지를 여실히 증명한다.) 키보드를 맡은 한석호와, 김원용(색소폰)과 신영환(트럼펫), 그리고 에릭 버거(트롬본)가 함께 팀을 짠 혼 섹션 세션들 또한 맹활약했다.


  우리는 모두 방황한다는 사실을 도시의 하루로 서사화한 이 앨범은 도회적인 감정의 공동(空洞)을 포착했다. ‘안개 도시’에 착륙한 이들 또한 화려한 불빛이 눈이 멀고 말았다. 가벼운 일상을 반복하면서도 순응하는 시대, 욕망의 방향과 (나르시시즘적인) 이미지는 가득해도 목적은 없는 시대로 접어들면서, 앨범의 전반부를 화려하게 수놓은 ‘착각’은 이제 확실히 우리 주변의 감각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나를 돌아보게 해」의 사유로 뻗는 대신, 그냥 처음의 ‘착각’으로 되돌아간다. 되지도 않는 신경질을 내고, 끊임없이 권태로우면서, 안전한 루프의 나날들이 주는 쾌락에만 줄기차게 손을 뻗는 사회가 과연 정상적인 사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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