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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머쉬룸 Aug 09. 2024

송약사의 와인 이야기 - 3

프랑스의 AOC에 대하여


 와인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아마 한 번쯤 Chablis, Sancerre, Chateauneuf-du-Pape라는 이름들을 들어보셨을 것 같아요. 아마 와인에 관심이 없는 분들도 Champagne은 들어보셨을 테죠?

위에 나열된 이름들은 모두 프랑스의 특정 지명이에요.


 프랑스 와인을 많이 마셔본 분들은 상기된 지역의 위치뿐만 아니라 저곳들에서 생산되는 와인들의 대략적인 맛까지도 예상 가능하실 거예요.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요?


 바로 AOC 때문이에요. 이것은 Appellation d'Origine Controlée라는 불어 단어의 앞글자인데요. 거칠게 직역하자면 ‘(법적으로) 통제되는 원산지 호칭’ 정도의 의미예요. 1930년 경에 대략적인 법적 형태가 잡힌 AOC는 약간의 개정들을 거치며 현재까지 이어져요. AOC에 따르면 어떤 와인이 예를 들어 Champagne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위해서는 충족해야 하는 몇 가지 요건들이 정해져 있어요; 프랑스 북부에 위치한 Champagne 지방에서 생산된 포도로 만들 것, 특정한 포도 품종들(chardonnay, pinot noir, pinot meunier 등)로 만들 것, méthode traditionelle이라는 발효 방식으로 만들 것 등등의 요건들이죠.


 그런데 프랑스 정부는 애초에 왜 AOC를 만들 걸까요? 와인애호가들이 아름다운 갈리아의 지명을 달달 외우게 하려고? 교황이 Avignon에 갇혀서 마시던 와인에 들어가는 13개의 포도품종들을 암송하게 하려고? 그럴리는 없겠죠.


 사실 AOC는 프랑스 정부가 자국의 포도생산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에요. 20세기 초 프랑스 전역의 포도밭은 포도나무를 갉아먹는 벌레 필록세라에 의해 거의 초토화 됐어요. 이런 포도 농가의 상황과 관계없이 프랑스와 영국의 와인 소비자들은 계속 프랑스 와인을 원했어요. 그러다 보니 공급이 수요를 턱없이 밑도는 상황이 생겼죠. 이런 상황에서 많은 네고시앙들(포도 농가로부터 포도 혹은 포도즙을 사다가 와인을 만들어서 파는 와인 상인들)은 당시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로부터 값싸게 포도들을 사들인 뒤 그것으로 만든 와인을 프랑스 와인으로 둔갑시켜 팔았어요. 이에 분개한 프랑스 포도재배자들은 곳곳에서 격하게 시위를 했고 시위는 곧잘 유혈사태로 치닫곤 했어요. 이에 정부가 대책으로 내놓은 것이 바로 AOC였어요.


 제도와 관습은 시대와 상황의 필요에 맞춰 만들어지지만 시간이 흐르며 현실과 괴리가 생기며 오히려 그것들이 혁신을 짓누르기 시작해요.


 AOC는 당대의 상황에서 프랑스의 와인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였고 그 덕분에 프랑스 와인의 명성이 전 세계적으로 확립되는데 큰 기여를 했어요. 하지만 근래에 급격하게 일어나는 기후 변화로 인해 현재의 포도 재배 환경은 20세기 초와는 상당히 다르죠. 또한 AOC는 사용할 수 있는 포도 품종까지 법으로 정해놓은 탓에 새로운 품종으로 와인을 만들면 AOC에서 제외되고 말아요. 그런데 이 새로운 품종이라는 것이 사실 AOC가 만들어지기 훨씬 전에(이따금 로마제국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는) 특정 지역에서 재배하던 토착 품종들이에요. 제도의 이런 경직성에 염증을 느낀 몇몇 생산자들은 AOC호칭을 포기하고 참신하고 개성 있는 와인을 자유롭게 만들기도 해요.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 어떤 이들은 AOC 호칭에 지나치게 집착하며 ‘나는 샴페인만 마신다’ 거나, ‘샤도네이는 샤블리가 최고다’라는 강한 의견을 표명하기도 해요. 물론 누구나 본인의 의견을 가지고 그것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죠.


 다만 제 생각엔 AOC에 관해서는 한 가지 명심해야 할 부분이 있어요. AOC는 그 자체로 어떤 와인이 좋은 와인인가를 알려주지는 않는다는 점이에요. 또한 AOC는 와인의 신이 내려준 강령이 아닌 정치인들이 당시의 경제적인 상황을 고려해 만든 하나의 제도예요. 그렇기에 경제적인 이유로 Champagne과 Chablis란 이름을 달 수 있는 지역을 점차 넓히기도 했죠. 저 와인들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지자 기존의 생산량으로는 수요를 채울 수가 없었거든요.


 지구온난화와 내추럴 와인의 급부상 등 1930년대와는 상이한 상황에 놓인 작금의 와인계에 새로운 제도가 도입이 될까요? 만일 그렇게 된다면 미래에는 또 고급 와인의 기준이 달라지게 될까요?


저는 열린 마음으로 흥미롭게 지켜보고자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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