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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인사, 진심인가요?

by 봄날의 북극

"좋은 아침입니다."

그러합니까?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좋은 아침입니까?

하늘이 흐려도, 햇살이 눈부셔도 그 모든 날들이 어김없이 ‘좋은’ 아침이라 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식사는 하셨어요?”이 짧은 인사말 속에 담긴 진심은 과연 어디까지일까요?진짜로 궁금해서 묻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저 우리가 익숙하게 건네는 인사의 형식일 뿐일까요?

문득,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코 주고받는 인사말이 궁금해졌습니다. 말이 입 밖을 나오는 순간, 그 말이 관념이 되고, 관습이 되며, 마침내 문화가 됩니다.

“다음에 식사라도 같이 하시죠.”

이 말을 듣고 정말 식사를 함께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은, 아마 없겠지요.

“안녕하세요?”

그 말이 정말로 당신의 안녕을 진심으로 염려하고 묻는 말일까요 아님 형식적인 인사에 불과할까요.

그렇게 우리는 매일, 어딘가 반쯤은 빈 마음으로 인사를 나눕니다.


최근 치매 예방을 겸해, 네 벌써 치매를 걱정해야 될 나이가 되어가네요 ㅎㅎ,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문득 우리나의 인사말과 다른 나라의 인사말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한국어에는 ‘아침’, ‘점심’, ‘저녁’을 구분하는 전통적인 인사말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물론 요즘에는 영어 표현의 영향으로 “좋은 아침입니다” 같은 인사말이 쓰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고유한 인사법은 시간보다 관계에, 순간보다 사람에 더 집중되어 있습니다. "식사하셨어요"와 같은 인사도 그러한 사람에 대한 염려와 걱정이 담긴 인사말이기도 합니다


일본어 인사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언어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습니다.

-아침엔 “おはよう (오하요)”

-낮에는 “こんにちは (곤니치와)”

-저녁엔 “こんばんは (곰방와)”

하루의 흐름에 따라, 인사는 변주되고, 그 시간에 맞는 감정과 태도를 담아냅니다.

물론 그전에도 다른 나라말에는 시간대별 인사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새삼 그 체계가 구체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러고 나니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왜 우리는 그렇지 않았을까?

이럴 때는 AI에게 물어봐야죠.

“왜 한국어에는 시간대별 인사가 없을까?”


한국은 유교 문화의 깊은 영향을 받은 나라로, 시간보다 ‘관계’와 ‘예의’에 초점을 맞춘 인사 문화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아침이든 저녁이든 중요한 것은 시간이 아니라, 당신이 누구인가—그것에 따라 어떤 인사를 건네야 하는가라는 점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친구에겐 “안녕.”

어른에겐 “안녕하세요.”

더 격식 있는 자리라면 “안녕하십니까.”

인사의 형식은 사람과의 거리만큼 변화합니다.


역시 AI다운 설명이고 납득 가능한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설명을 듣고 나니 또 다른 의문이 들었습니다. 유교 문화의 발상지인 중국 역시 시간대별 인사를 하고, 일본을 포함한 많은 동아시아 국가들 역시 현대어에선 서구식 시간 인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왜 유독 한국만은 시간대보다는 관계 중심의 인사법이 남아 있는 걸까요?


그 이유는 어쩌면, 우리의 인사 속에는 진심이 아니라 ‘진심을 표현하려는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진심이 완전하지 않더라도, 상대를 존중하고, 예의를 다하려는 그 마음 자체가 인사가 되는 것이지요.

“안녕하세요?”

이 짧은 인사 속에는 당신의 하루가 평안하기를 바라는 소망이 숨어 있습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자주 스치는 이웃에게도, 그 말 한마디로 우리는 서로를 사람으로서 존중합니다.

때론 형식에 불과한 듯 보여도, 그 형식이 사람을 지켜주는 마음의 틀일 수도 있습니다.


중국 역시 오랜 유교문화의 발상지였고, 일본 또한 예의와 격식을 중시하는 문화를 지녔지만, 이들 나라는 근대화의 물결과 함께 서구적 질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습니다.

‘굿모닝’, ‘굿애프터눈’, ‘굿이브닝’처럼 하루를 시간으로 나누고, 그 시간에 따라 감정과 표현을 달리하는 인사말이 보편화되었습니다. 특히 도시화와 산업화가 빠르게 이루어지면서, 인사는 더 이상 관계보다는 효율과 역할의 코드로 치환되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달랐습니다. 식민지 시대의 단절과 전쟁, 분단, 그리고 급격한 산업화를 겪으면서도, ‘사람 사이의 관계’ 만큼은 쉽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서구 문물이 물밀듯 들어왔어도, 우리의 말은 사람을 중심에 두었습니다. 시간이 아닌 사람, 효율이 아닌 정(情), 형식이 아닌 온기.

그래서 우리는 하루의 시간대보다는 마음의 결을 따라 인사하는 게 아닐까요.

시간이 아닌, 사람에 따라 변하는 인사.

그것은 단지 전통을 지키는 일이 아니라, 이 땅의 마음, 이 땅의 언어가 보여준 관계의 미학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렇게 보니 우리의 인사말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당신의 "안녕",

우리가 그동안 소원했던 "오랜만입니다",

당신과의 첫 만남, "처음 뵙겠습니다."

그래서 더욱 "반갑습니다."

그러니 "잘 부탁드립니다."

돌아가실때에는 "조심히, 잘가요?"

당신 잊지말고, "또 봐요"


브러치 이웃 분들 그리고 구독해주신 감사한 분들,

다들, 안녕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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