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오해로부터 시작되었어.
별이 빛나던 밤에, 어둠이 본격적으로 자신의 시간을 만들어 가기 바로 전이었어. 어둠과 동화되지 못한 풍경들은 흐릿한 경계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지만 곧 닥쳐올 어둠의 시간 속으로 모든 것은 한 덩이가 될 것들이었지. 시간은 모든 것을 모호한 경계를 넘어 구분되지 않는 어둠 속으로 사라지게 할 거야. 그런 밤에 밤하늘의 별은 더욱 또렷하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하늘 위에 떠 있는 별은 밝게 빛나긴 했지만 지상에 다다르기에는 부족해서 그 빛은 하늘 위 그곳에서만 존재하는 반짝임 정도였어.
그 반짝거림이 황홀해서 너는 자꾸만 하늘만 바라봤어. 하늘만 바라보던 너의 눈은 별빛으로 가득해져 어둑해진 거리의 사물들을 구분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렸지. 아무리 새벽의 어두운 거리라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둠에 차츰 눈이 익어 사물의 대강을 구분할 수 있는 정도는 되었지만, 너는 그저 별을 바라보는 데 정신이 팔려 더 이상 거리의 상황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어.
시간이 깊어갈수록 어둠은 점점 명확해지고, 별은 선명해졌어. 어둠이 사라지기 전 너는 떠나야 한다고 결심했지. 서둘러 길을 나서던 너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저 하늘의 별이 빛나는 그곳으로 무작정 걸음을 옮겼어. 별은 너에게 주의의 한 마디 없이 그저 반짝이며 너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어.
떠나온 곳의 밤은 깊어 다들 잠들어 있었기 때문에 너의 갑작스러운 행동을 아무도 알지 못했어. 새벽 2시가 넘은 그 시간은 깊은 고요의 시간이라 어둠조차 잠들어 있을 시간이었지. 바람이 불어와 마음을 실어 날아간 것처럼 너의 걸음은 가벼워서 소리 없이 어둠 속으로 미끄러져 나아갈 수 있었어.
나뭇가지가 헝클어진 숲길에서도, 길이 갈라지는 곳에서도, 너의 걸음은 거침없이 나아가기만 했어. 별은 항상 너의 머리 위에서 반짝이고 있었기에 너는 망설임도 없이, 거칠 것도 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어.
새벽 2시로부터 한참을 지나버린 시간, 이제 어둠이 힘을 잃고 사물의 흐릿한 경계가 살아나는 아침이 오는 시간.
부지런한 새들 몇 마리가 기지개를 켜듯 노래하는 소리가 들렸어. 바람은 때마침 불어와 너의 머리카락을 헤집고, 먼 곳의 햇살 냄새를 너에게 전달하고 있어. 아침이 오려는 것인지, 하늘의 별도 이제는 차츰 빛을 잃어가고 있어. 물론 별이 빛을 잃어가는 것은 아니었어. 사물의 경계가 또렷해지는 햇살에 따라 별빛은 햇살에 잠시 가려지는 것일 뿐이겠지.
어둠 속에서는 모든 것이 한 덩이처럼 보여 모호한 길인데도 거침없던 너의 걸음은, 모든 게 선명해져 또렷한 길이 드러났는데도 왜인지 걸음은 더디어져 갔어. 발밑의 돌부리에 채이기도 하고 나뭇가지에 얼굴도 할퀴어지기도 하며 너의 걸음은 더디고 힘들었어, 그럴수록 너는 더욱 발밑을 조심스럽게 신경 써야만 했어. 밤새 걸어도 힘들지 않았던 너의 다리는 점점 더 무거워져 가는 것을 느꼈지. 지금껏 느끼지 못한 심한 갈증으로 머리가 어질어질해져 몽롱한 현기증을 느끼기 시작했어.
이른 아침 기재개를 켜던 부지런한 새들과 게으른 아침을 시작하는 새들도 이제는 깨어나 더 풍성한 새들의 소리로 소란해져 갔어. 지평선위에 떠오른 햇살은 환하게 세상을 비추고 있지.
사물의 형상이 뾰족뾰족하게 보일 정도로 선명해지고 길의 모든 것이 명확해지는 것이 보였어. 갈림길이 나오는 곳에는 친절한 이정표까지 있는 것을 보았지만 그 이정표가 알려주는 길이 네가 그토록 가려고 하는 곳의 길을 알려 주는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어.
먼 곳에서 아련하게 비추던 별빛이 알려주던 길은 그렇게 명확하게 다가왔었는데 이정표에 쓰인 친절한 길 안내에도 너는 길을 잃고 있다는 생각을 했어.
참 알 수 없는 일이야 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너는 결국 이정표가 알려주는 방향을 무시하기로 했어. 길이 갈라지는 곳을 만나면 그때 기분에 따라 이번에는 오른쪽, 다음에는 왼쪽 이런 식으로 길을 이어가기를 한 참만에 너는 결국 습지에 다다랐어. 그 습지에 풍경이 네가 떠나온 그곳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지. 길을 떠나 한 참을 걸어왔는데 결국 너는 떠나온 그곳으로 돌아온 게 아닐까 하는 착각에 혼란스러워했어.
그러나 그곳의 풍경이 비슷하긴 해도 떠나온 그곳과 달랐지. 왜냐면 그곳의 어떤 사물과도 소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어. 바람이 불어와 머리카락을 헤집을 때에도 바람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고 나뭇가지에 앉은 괭이갈매기와도 아무런 소통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곳이 네가 떠나온 그곳과는 다른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
안개가 옅게 내려앉기 시작한 그곳에 정적과 생명의 소란이 동시에 어우러지기 시작했어. 물결 하나 없이 잔잔한 수면은 마치 거울처럼 하늘과 주변의 나무를 담아내고 있어.
수면 위로 드문드문 고개를 내민 수초와 갈대는 바람에 따라 가만히 흔들리며 소란한 노랫소리로 잔잔하게 울렸어. 습지 가장자리에는 키 큰 나무들이 뿌리를 깊게 내리고 서 있었지. 몇몇은 뿌리를 물 위로 드러내며 기괴한 형태로 서 있었어. 나무 사이로는 왜가리와 흰 얼굴 검둥오리, 제비갈매기들이 분주히 날아다니며 먹이를 찾고 사방에서는 새들을 피해 달아나는 벌레들의 날갯짓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어.
내가 떠나온 그곳과는 달리, 이곳은 소란스럽고도 활기찼어. 햇빛이 비칠 때마다 수면 위로 금빛 물결이 일렁였고, 그림자들은 느리게 움직이며 시간의 흐름을 은밀히 드러내고 있었지.
그러나 서둘러 떠나온 너의 걸음과는 달리, 이곳의 시간은 더디고 느렸어. 고요 속에서도 분주한 생명이 살아 숨 쉬고 있었으며, 모든 존재를 감싸는 넉넉한 품이 느껴졌어.
너는 이 낯선 풍경에 압도당한 채 더욱 깊은 곳으로 발을 들였어. 숲은 점점 더 울창해졌고, 한낮의 밝은 햇살도 이내 나뭇잎 사이로 부서져 들어오기 시작했지. 빛은 점점 흐려졌고, 하늘은 잎사귀들에 가려져 흔적조차 희미해져가고 있었어.
그런데도 너는 두려움 없이 앞으로 나아갔지. 알 수 없는 새의 울음소리가 길게 이어지며 섬뜩한 경고처럼 들렸지만, 너는 오히려 더욱 깊숙이 숲 속으로 걸어갔어.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너를 끌어당기는 것처럼.
어느 순간, 발끝이 물컹한 진흙 속으로 파고들었어. 한 걸음, 또 한 걸음. 진흙은 점점 너를 삼켜갔고, 네 몸은 깊숙이 가라앉고 있었지. 발버둥 쳤지만 소용없었어. 빠져나가려 할수록 더 깊이 가라앉을 뿐이었지. 하늘은 온전히 가려졌고, 빛도, 바람도 사라졌어. 시간마저 흐름을 멈춘 듯했지.
밤이 왔는지, 별이 떴는지조차 알 수 없는 암흑 속에서 너는 점점 더 깊이 빨려 들어갔어. 멀리서 들리던 새의 울음이 다시 한번 울려 퍼졌어. 마지막 경고처럼. 그 순간, 세상의 소리들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어. 마치 라디오의 볼륨을 서서히 줄이듯, 모든 소리는 점점 작아졌고, 결국 완전히 꺼졌어.
습지 한가운데에서 너는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침잠하고 있었지. 사라지는 소리처럼, 너도 결국 이곳에서 소멸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죽음이 두려웠을까 아님 누구도 알 수 없는 이곳에서의 소멸이 두려운 걸까 전신의 몸이 떨려오는 공포에서 너는 다시 한번 별을 생각했지. 하나의 음(音)을 얻기 위해 바랬던 너의 작은 바람이 결국 이곳에서의 소멸이었다는 것에 눈물이 흘렀어. 소리가 사라진 이곳에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너 자신 밖에는 없었지만 너는 어떤 음(音)도 낼 수가 없었어. 이미 진흙이 너의 입을 막기 시작했기 때문에 숨조차 쉬기 어려워졌지.
말을 하지 않았도, 굳이 음(音)을 내지 않아도 소통할 수 있었던 떠나온 그곳이었다면 너의 지금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을 텐데. 이제 너는 아무와도 소통할 수 없음을 알아. 소통을 위해서는 이제 언어라고 불리어지는 말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 그러나 말을 걸어볼 누구도 없는 이곳에서는 너는 조용히 잊혀 사라지겠지.
늪은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생명과 평화 그리고 신비로움이 담긴 또 다른 세계로서 너를 품고 조용히 앞으로도 그곳에 존재하겠지. 어쩌면 늪은, 그곳의 진흙은 너의 존재를 기억해 줄지도 모를 거라 생각했어.
이제 너는 숨을 쉴 수가 없어.
생각도 멈추어지겠지.
그러고 나면 너의 존재라는 것은 사라지는 것이겠지.
그 순간 네가 떠나보낸 마음의 존재가 그리웠어.
마음이 내게로 돌아오려고 했던 그 순간을 너는 그제야 어렴풋하게 느껴졌지만 후회는 이미 늦었어.
"이제 끝이야."
그 순간 먼 곳에서 하나의 음(音)이 조용하지만 확실한 존재를 드러내며 들려오고 있어.
"이제 끝이야",라고 경고했던 목소리는 서둘러 달아나 버렸는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아.
하나의 음(音)이 그렇게 먼 곳에서 존재로서 자신을 알리는 그 순간에, 그녀가 너의 손을 잡았어. 이제 끝이야 라고 경고했던 목소리는 완전히 사라지기 전 늪지의 가장자리 나무 사이에서 나를 살피는 기색이 느껴졌지만 어느 순간 숲의 긴 어둠 속으로 완결된 종식처럼 사라졌지.